◆ 상징의 미학
-<태양>을 상징으로 제시하면 어떤 사람은 빛을 떠올리며 밝은 태양을 연상하고, 어떤 사람은 열을 생각하여 뜨거운 태양을 떠올리며, 어떤 사람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태양신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나의 상징으로 다양한 연상이 가능한 것이 바로 상징의 미학(aesthetics)이며, 이는 문학 뿐 아니라 미술과 음악 등 모든 예술에서 상징을 즐겨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상징은 일반의 상징과 달리 다양한 해석을 용인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불변의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텍스트에서 드러나는 특정한 의미가 바로 상징의 실제 의미입니다.
성경 묵상은 문학 작품의 다양한 감상이 아닙니다. 독자 개인의 미학적 관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자의 분명한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글을 쓰더라도 독자의 감성으로 다양한 느낌을 말하는 것이 문학이며, 각자의 주관적인 주장을 표현하는 것이 평론입니다.
그러나 성경 해석에서는 독자의 느낌과 판단이 기준이 아닙니다. 독자의 바른 깨달음이 중요하며, 원저자이신 하나님의 메시지를 <말씀하신 대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의 원저자는 하나님이시며, 그의 메시지는 미학의 대상이 아니라 생명의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잘못 다루는 것은 생명을 해치며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성경의 미학(美學)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되며, 언어의 미학이 아니라 생명의 미학입니다. 세상의 물리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영적 아름다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 해석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분명한 이유이자 근거입니다. 성경에서 상징의 메시지를 파악할 때, 상징의 의미는 개별적인 연상이 아니라 성경이라는 구체적인 텍스트에서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텍스트는 콘텍스트(문맥)를 통하여 분명한 의미가 드러납니다. 말씀의 의미를 깨달아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것이 바로 신앙의 요체(要諦)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린도후서 2 : 17)
◆ 상징의 다의성(多義性)
-예를 들면, 성경에서 씨의 상징성은 씨의 뿌림과 성장, 썩음과 결실 등과 연관하여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씨가 뿌려지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 속성 때문이며,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 백배의 결실을 맺는 것을 독자들이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물은 사물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일반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에 따라 사물은 보편적인 상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불의 상징성은 태우고 소멸시키는 이미지를 통하여 깨끗하게 하는 정결과 회개의 의미를 나타내기도 하고, 죄를 소멸하는 ‘죄사함’의 뜻을 지니기도 합니다.
성령의 불을 떠올리며 구원과 생명의 이미지를 연상하는가 하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로 때로는 불의 심판을 연상합니다. 하나의 상징이 구원과 심판으로 서로 대립되는 의미를 나타내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창세기19: 24-25).
물의 상징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아의 홍수처럼 세상을 심판하는 이미지를 지니는가 하면, 요한의 세례에서 보는 것처럼 회개의 도구로 쓰이기도 하고, 깨끗하게 씻는 물의 성격으로 제사장의 정결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제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여호와 앞에 화제를 사를 때에도 그리 할지니라 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지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출애굽기30:19-21)
첫댓글 생명의 미학~
생명의 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