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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1. 창조절 첫째주일
예배 시편 / 시편 103편 8-18절
찬송 / 312장 · 묘한 세상 주시고
성서 / 시편 19편 1-14절, 골로새서 3장 10-17절
말씀 /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김윤식 목사
Ⅰ
오늘은 9월의 첫날이고, 창조절 첫 주일입니다. 창조절은 9월에 시작되어서 대림절 전까지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와 은총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성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창조를 담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성서의 첫 구절인 창세기 1장 1절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고백으로 시작하지요. 그리고 성서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라는 주님의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계 21:5).
그런데 이제 창조신앙은 낡은 골동품처럼 오래된 고백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신앙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목도하는 자연의 위기 때문입니다. 성서의 첫 구절인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라는 장엄한 선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고백이지요. 이 구절은 또한 하나님의 창조는 우리 인간만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고백하는 신앙을 답고 있습니다. 여기서 천지란 ‘하늘과 땅’을 가리키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으셨다”라는 고백은 ‘하늘과 땅’만을 지으셨다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셨다”는 문학적인 표현(merism)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그 안의 만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고백은, 하늘과 땅 안에 있는 만물을 인간들이 전유물인 양 함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나님의 피조물’로 바라 보아야 한다는 고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신 인간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신 것일 뿐이지요(창 1:26). 그리고, 계시록의 “주님께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창조를 하신 후에 뒷짐을 지고 세상을 관망하거나 무관심하신 것이 아니라는 고백입니다. 창조의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변함없이 친히 만드신 세상을 사랑하셔서, 돌보시고 인도하시며, 새롭게 하신다는 고백이지요. 한 마디로 하나님의 계속적인 창조요, 새 창조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새 창조를 우리는 뒤틀린 역사와 파괴된 자연을 새롭게 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함께하시고, 인도하시며, 새로이 빚어 가시는 은총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창조의 절기 가운데 우리를 지으시고, 지난 시간 동안 우리와 함께하시며 인도해 주신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미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파괴되어 가는 이 세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오늘도 피조물의 신음에 귀 기울여 주시고, 땅과 하늘을 새롭게 하시고 살리시는 하나님의 새 창조의 뜻과 섭리를 믿고 기도하며, 바라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뜻과 섭리에 겸허히 순종하며,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 자녀의 소명을 우리가 믿음 안에서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용기를 가득하게 하시길 기원합니다.
Ⅱ
오늘 우리는 구약 말씀으로 시편 19편의 말씀을 받아 읽었습니다. 시편을 읽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학자들은 시편을 읽고 이해할 때 무엇보다 먼저 시편의 양식과 장르를 구분합니다. 이 시가 찬양을 하는 찬양시인지, 왕이 왕좌에 오를 때 사용하는 대관시인지, 아니면 지혜시인지, 감사를 드리는 감사시인지, 또는 탄원을 드리는 탄원시인지 등 여러 가지 양식에 따라서 시를 분류하는 것이지요. 시를 읽기 전에 그 시의 배경과 삶의 자리를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19편은 오래전부터 이 양식을 나누는 데 학자들에게 어려움을 주었습니다. 하나의 시 안에 너무도 다른 두 가지 시가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19편의 전반부인 1-6절에서 시인은 자연 속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그 위엄을 찬미하지요. 그래서 학자들은 대부분 이 시의 전반부를 창조시라고 분류했습니다. 그리고 7절부터는 하나님의 가르침인 율법, 곧 토라에 대한 노래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7절부터 이어지는 부분을 학자들은 ‘율법시’나 ‘토라시’ 또는 ‘지혜시’로 분류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분류에 따라서 학자들뿐만 아니라 이 시를 읽는 사람들은 시편 19편이라는 하나의 시를 두 개로 나누어 읽고, 연구해 왔지요. 그렇지만, 왜, 두 가지 다른 본문이 하나의 시로 되어 있을까요? 만약 이 시를 하나의 시로 읽고, 하나의 노래로 부를 수 있다면, 어떤 노래로 이해하고 부르면 좋을까요? 저는 오늘 이 시편 19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창조’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 하나의 시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창조’를 노래하는 하나의 ‘창조시’로 이해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시인은 1절에서 하늘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창공이 하나님의 솜씨를 나타낸다는 것이지요. 하늘은 낮에는 태양이, 밤에는 달과 별들이 가득합니다. 낮에는 태양으로 인해 온 세상에 빛이 가득하고, 밤하늘에서 우리는 보다 크고 넓은 우주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높고도 넓은 낮과 밤의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생각하며, 찬미합니다. 이어서 시인은 3절에서 비록 자연의 소리가 말소리처럼 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온 누리 구석까지 울리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그러면서 저 높은 하늘을 운행하는 태양의 질서와 그 태양의 빛과 뜨거움이 온 땅에 미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영광이 하늘과 땅에 가득 찬 것을 깨닫지요. 저 태양이 온 누리를 비추는 것과 저 태양의 뜨거움이 온 누리에 미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노래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어지는 7절부터 시인은 주님의 교훈과 말씀을 찬미하지요. 주님의 교훈은 완전하여서 생기를 북돋우어 주고, 주님의 증거는 참되어서 어리석은 자를 깨우쳐 주고, 주님의 교훈은 정직하여서 마음에 기쁨을 주고, 주님의 계명은 순수해서 사람의 눈을 밝혀 준다는 것이지요. 주님의 말씀은 티 없이 맑아서 영원토록 흔들리지 아니하고, 주님의 법은 참되어서 한결같이 바르다고 노래합니다. 금보다 더 사랑스럽고 꿀보다 더 단 말씀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창조의 섭리를 통해 온 누리를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에게 힘이 되어주고, 생기를 주며, 삶의 방향이 됨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다시 새롭게 하는 말씀, 곧 사람을 새롭게 창조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제 시인은 자신을 ‘주님의 종’이라고 겸허히 부르며, 사람을 새롭게 창조하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 앞으로, 자신에게로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경고를 받고, 그것을 지키면 풍성한 상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고백하지요. 그리고 그 말씀 앞에서 자기가 미처 깨닫지 못한 잘못과 일부러 지은 죄가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마지막으로, 반석이며 구원자이신 주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리지요. 나의 말과 생각이 언제나 주님의 마음에 들기를 바란다는 고백입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그 말씀의 빛 안에서 말과 생각이 새로워지기를 주님께 겸허히 의탁하는 순전한 기도입니다.
정리해 보자면, 시편 19편은 하늘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의 크심과 온 누리에 가득한 빛과 뜨거움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을 비교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를 노래하고, 말씀으로 우리를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창조의 섭리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자신 앞으로, 자신 안으로 가져오면서 자기가 알지도 못하고 지은 잘못과 고의로 저지른 잘못 모두 돌아보았지요. 그러면서 다만 하나님께 모든 말과 생각이 언제나 주님의 마음에 들기를 바란다고, 창조주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섭리에 따라 빛과 그 열기로 온 누리에 역사하시듯,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하나님께 그 생각과 말을 의탁하는 사람을 다시 뜨겁게, 순전하게, 새롭게 하여 주십니다. 그러니까, 율법과 주님의 종의 고백은 이 시의 앞부분과 분리된 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말과 생각을 붙들어 주시는 사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그 말과 생각을 새롭게 하시는 사람!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당신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하여 주시는 새 창조의 사람을 노래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19편의 아름다운 시를 하늘과 그 아래 자연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찬미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의 잘못을 돌아보게 하시며, 날마다 그 말씀 안에서 우리를 다시 새롭게 창조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찬미로, 하나의 아름다운 창조의 노래로 읽을 수 있을 겁니다.
Ⅲ
오늘 우리는 신약 말씀으로 골로새서의 말씀을 받아 읽었습니다. 골로새서의 기자는 그리스도인에게 옛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합니다. 새 사람을 입는 것, 이 말은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형상을 회복해 가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기자는 새 사람을 입는 일을 설명하면서, 새 사람을 입은 사람은 주님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서 참된 지식에 이른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참된 지식은 무엇일까요? 바로,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골 3:11). 즉, 참된 지식이란 모든 이의 얼굴에서 주님을 보는 것이고, 더 나아가 모든 만물 안에 계시는 주님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셨음을 고백하며, 그 만물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지요. 새 사람이란 하나님의 마음으로 만물을, 모든 피조물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우리의 가족과 이웃을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새로워지지 않을까요?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도 새로워지지 않을까요?
골로새서 기자는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 곧 새 사람을 입은 사람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람, 사랑받는 사람, 거룩한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사랑을 받는 사람은 복된 사람, 곧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골로새서 기자는 새 사람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한 사람다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거룩한 사람다운 것, 새 사람을 입은 사람다운 것은 또 무엇일까요? 골로새서 기자는 동정심과 친절함으로 겸손함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옷 입듯이 입으라고 권면합니다.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를 용납하여 주고, 용서하여 주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모든 일에 사랑을 더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 평화 안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지요(골 3:12-15). 새 사람이란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께 마음을 다해 찬양하는 사람, 무슨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사람, 다만 그분에게서 힘을 얻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래전 호세아 선지자는 땅에 진실이 없고, 사랑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음을 탄식했지요. 있는 것이라고는 저주와 사기와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라고, 살육과 학살이 그칠 새가 없다고 한탄했습니다. 그런데 호세아 선지자는 사람들의 부패 때문에, 땅이 탄식하고, 들짐승과 하늘을 나는 새들도 다 야위고, 바닷속의 물고기들도 씨가 마를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호 4:1-3). 우리는 이제 인간의 탐욕과 폭력이 온 생명을 멸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선지자의 오래된 경고가 현실이 되어가는 것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도 모든 피조물이 함께 신음하며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지요. 그런데 바울은 피조물이 신음하는 현실을 그저 비관한 것이 아니라,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롬 8:18-22).
오늘 우리는 시편 19편과 골로새서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시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시편 19편의 시인은 하늘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면서,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새롭게 한다고, 그 말씀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며 그 말과 생각을 창조주 하나님께 의탁했지요. 또한 골로새서 기자는 그리스도인을 새 사람을 입은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새 사람이란 모든 것 안에서 주님을 보는 사람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새 사람을 입은 사람들, 모든 말과 생각과 행동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사람, 그분에게서 힘을 얻는 사람, 바로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 창조의 절기에, 우리가 다만 겸허한 마음으로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빚어감을 믿고,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말과 생각과 행동을 의뢰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밝고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함께 마음 모아 기도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마음으로 서로에게서 또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 안에서 하나님의 새 창조의 섭리를 바라보며,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날마다 빚어 가시는 주님의 놀라운 은총을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