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 보면 나는 아이들의 장래에 대해서
구체적인 바램이나 충고 따위를 한 기억이.... 전무했던 것 같다.
늘 시어머니가 함께 있었고, 시누이가 철벽을 치고 있어서
감히 내 테두리 안으로 아이들을 끌어들여 엄마의 생각을 온전히 전한 적 또한 없었다.
이제 와서 그 상황들을 되돌릴 순 없지만,
어려운 숙제가 내게 놓였다.
27, 24, 20살.....
누가 뭐래도 나의 자만심은
그럼에도 나를 닮았으면, 다 무난히 지나갈 줄 알았다.
시소 타듯 세월 따위 거뜬하게 물리치고 참 수월할 줄 알았는데,
둘째, 셋째야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니 걱정을 놓아도 되지만
때 아니게 제일 큰 놈이 심장을 벌렁거리게 만든다.
엄마는 정말이지 그들을 다 알 수가 없다.
붙어 앉아 일거수 일투족을 살필 여유도 없었던 시절,
괜한 회한이라면, 진작에 분가를 했었으면 나았을까?
돈벌이에 급급하지 말고 아이들 관리에 좀더 힘썼으면 나았을까?
사무실 자재창고 정리를 어제도 하고, 오늘도 한바탕 뒤집어 재정리를 했다.
만만히 여겼던 자식이 어느새 저리 커 버렸으니
장래를 어떻게 올바로 일러주어야 할까?
알아서 할 줄 알았는데, 아뿔싸, 그건 대단한 오산이었다.
왜 그 아이는 두 동생들이 자신을 향한 틀림없는 지적을
그저 독설에 질투라고 믿게 되었을까?
자신은 늘 피해자인양.....
가족 구성원이 여느 집과는 조금 다른 영향이 있다면 그건 누구의 탓일까?
둘째의 똘똘한 머리를 대입시켜서, 아무리 연구를 해도 엄마인 나는 어리벙벙할 뿐이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하튼 한번 부닥쳐 보자.
집 근처 까페에서 동생들 없이 엄마하고만 말하자는 큰 아이.
아니, 그냥 집에서 엄마 퇴근 길 여섯시.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역할, 자꾸 두려워진다. 자식 일인데 나는 왜 이리 어색하고 모르는 것 투성일까?
큰 결단을 주도해야 하는 역할 말고, 등 뒤에 숨어 볼 일 없는 참견만으론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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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앞에 매주 수요일이면 뽑기 아줌마가 등장한다.
속이 답답해서 기웃거렸더니 아줌마가 서비스 하나 먹으려나고 묻는다.
"아니요. 하나에 얼마씩이예요.?"
- 사게요? 큰 건 천원, 작은 건 오백원...
"네. 그럼 네 개 주세요."
- 누구 주게?
"네, 대학생 막내.... "
- 오늘 많이 파셨어요? 아침부터 이제껏 이천원 팔았어.
그리고 초등생들은 얼마나 잘 뽑는지, 그만 왔으면 좋겠어.
"네 개 주세요. 그럼 2천원이네요."
판교 집으로 갈 때,
아직 순수했던 아이의 반가운 얼굴을 마주하고 싶은 간절함이 뽑기에 꽂혔다.
아줌마는 덤으로 서 너개를 더 주었다.
2017년 9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