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3:28 – 13:37 때를 분별하는 지혜로 깨어 있는 충성된 삶
무화과나무 비유(28-31)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오셔서 3년 동안 복음을 전파하셨지만, 이스라엘은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하며 구원의 백성이라 생각했지만, 열매 없는 과실나무처럼 영적으로 아무런 열매가 없었던 것입니다.
28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29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0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1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28-31)
앞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두 가지를 질문했습니다. 하나는 ‘성전 파괴 전에 있을 증조’였고, 다른 하나는 ‘인자의 재림’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인자의 재림에 대해 말씀하실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 파괴는 이 세대에 일어나겠지만, 예수님의 재림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어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문 앞에 이른 것을 알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이런 일들’이란 13-24절에 기록된 현상을 말합니다. 또한 인자가 가까이 문 앞에 이르렀다는 것은 인자의 통치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성전 파괴 및 인자의 통치가 가까이 왔음을 알리고 계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언급하고 계시다는 사실은 이 비유가 예루살렘 성전을 암시하고 있다는 매우 구체적인 힌트가 됩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에서 무화과나무가 마가의 내러티브 안에서 성전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밝히셨습니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이 모든 일’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문맥에서 ‘이 모든 일’은 성전 파괴 및 이와 연관된 징조들을 가리킵니다. 이 모든 일이 ‘이 세대’, 즉 예수님의 동시대 사람들이 살아 있는 동안 발생할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예수님의 새로운 성전이 세워져서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일이 이 세대 안에 일어날 것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자신의 말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확증하고 있습니다.
‘깨어 있으라’(32-37)
진심으로 주님을 믿는 모두 말세에 예수님의 재림을 맞을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처럼 주님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소망합니다. 삶 속에서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는 삶입니다. 그래서 종말론적인 삶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지만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갈 때, 천국의 소망과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32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34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35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6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32-37)
마가는 이 시점에서 재림에 대한 주제를 처음으로 언급합니다. 여기서 ‘그 날과 그 때’라는 표현은 명시적으로 마가복음에서 처음 재림에 대한 주제가 등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앞 단락 17, 19, 20, 24절에는 ‘그 날들’이라는 복수 형태를 사용해서 성전 파괴와 관련된 징조들이 나타나는 날들을 복수형으로 나타냈는데, 여기서는 단수 형태의 ‘그 날’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32절의 ‘그 날’이 이전에 언급되었던 성전 파괴와 관련된 징조의 날들과 명시적으로 구분되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재림의 시기는 하늘에 있는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날이나 시각을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태도는 깨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깨어 있음을 비유를 통해서 설명하십니다. 주인은 타국으로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맡깁니다. 따라서 종들은 주인이 맡기신 사무를 감당해야 하며 문지기들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 나타난 강조점은 파루시아의 때가 드러나 있지 않다는 점과 가장 예기치 않던 때에 임하리라는 점입니다. 성전 파괴의 때에 관해서는 분명한 징조가 주어지고 이 세대 안에 발생하리라고 말씀하셨지만, 파루시아에 관해서는 어떠한 징조도 없을 것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시에 심판의 때를 맞이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
다가올 미래도 준비가 안 된 마당에 무슨 재림의 때냐며 사람들은 인자의 날에 대해 시큰둥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예외가 아닌 상황에서 어느덧 재림은 우주여형보다 먼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미래를 향해서 빠르게 돌진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열망과 신앙에는 여전히 버퍼링만 반복하진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