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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라디아서 5장 22-23절 성령이 맺게 하시는 열매들4-오래참음의 열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맺는 네 번째 열매는 오래참음의 열매입니다. 우리 갈라디아서 5장 22-23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여러분은 이 말씀을 외우실 수 있으십니까? 이 성령이 맺게 하시는 열매들의 설교를 들으시면서 이 구절을 외우시고 또 성령의 멸매를 맺는 여러분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놀랍게도 사도 바울은 우리가 사랑장이라고 부르는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이 무엇이냐를 말씀하면서 제일 먼저 말씀한 사랑의 특징을 오래참는 것이라고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참고”입니다. 왜 사도 바울이 오래참고를 그 다음에 나오는 모든 사랑의 특징들보다 앞에 두었을까요? 아마도 사도 바울은 사랑에 대하여 쓰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수천년동안 참고 인내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린도교회의 현재 모습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처럼 자유분방하고, 아직도 어린 아이같아서 사리분별력도 없고, 수많은 경쟁심과 죄악에 노출되어 율법의 척도로 따지면 금방 심판해야할 대상에 들어가있는 교회조차 자신의 몸인 교회요 자신이 택하신 성도로써의 사랑을 보이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더 성장하고 성숙하며 나아질 고린도교회의 보시면서 오랫동안 참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참습니다. 여러분들 역시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 이루어질지라도 오래 참고 기다리고 있으며, 또 여러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잘못에 대하여서도 오래 참으십니까?
사실 오래참는 사랑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자식을 향한 부모들의 삶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식들의 불의를 보면서도 그래도 언젠가는 정신차리고 돌아올 것을 기대하며 당장 화가 나도 참습니다.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도 인내하면서 자신이 부모로서 해야할 일을 다해줍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비난해도 부모만은 지금은 그렇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좋은 사람이 될거라고, 바뀔거라고 생각하는 믿음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식이 짓는 죄로인해 당하는 모든 어려움과 고통들을 다 참아냅니다. 부모님의 이런 일방적인 사랑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 아닙니까?
그런데 죄인들의 특징은 그 사랑으로부터 나온 오래참음의 열매를 대부분 무시하고 멸시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 4절은 그것을 잘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자식들이 자기들의 죄를 알면서도 그것을 참으면서 부모로서 마땅히 해야할 것을 다 해주는 부모를 우습게 여기면서 함부로 대하듯이 죄인들 역시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합니다.
여러분에게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맺는 열매인 오래참는 모습이 나타날 때 어쩌면 그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받고 멸시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죄인들이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을 무시하고 멸시했다면 인간인 여러분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하겠습니까?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에게는 어떠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따랐지만 그 당시에 지식층이라고 하는 사두개인들이나 서기관들, 그리고 바리새인들, 관직에 있는 사람들 등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무시하고 멸시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본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 9-11절에 이렇게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세상은 자기들을 어두운데서 구원하여 밝은 빛으로 옮기고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였을 뿐만아니라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아는 사람들은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땅에 오셨는데도 영접하지않은 것입니다. 이런 고질적인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거부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23장 37절입니다.“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이 번번히 무시받고 거부당하신 일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거기다가 하나님께서 아들까지 보내셔서 산제물로 삼으셔도 그들은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보다 자기들의 의를 더 중요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참으시고 또 참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고 오직 눈에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하여 참고 계십니다.
로마서 9장 22-24절을 보면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더 이상 참을수 없는 진노의 그릇인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 대하여 하나님은 지금도 역시 참고 또 참으시면서 관용하십니다. 관용이 뭡니까? 관대한 마음으로 베푸는 용서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사람들에 대하여 안 참아도 되시는 하나님이 관용하시면서 오랫동안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지옥에 갈 죄인들에 대하여 참으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참기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구원의 기회를 주십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듯이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참으시고 또 참으시며 사사들을 세우시던 날부터 계속해서 자신이 세우신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또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일깨우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거부였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 37절에 그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때보다는 의로울까요? 많은 교회의 교인들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보인 반응들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죄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은 이스라엘 백상들과 같이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절에가서 불상에서 절하지 않고 천주교에 가서 마리아상에게 절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상숭배를 안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의 우상은 옛날과 다르게 형태만 변했을 뿐 우상에 대한 마음들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제일 먼저 맘몬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돈이나 재물에 빠져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보다 돈의 힘을 더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같은 생각을 가질 수가 있지만 부자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사고입니다. 그들은 돈으로 말미암아 누릴 수 있는 수많은 혜택을 누리면서 삽니다. 그리고 돈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양심의 가책조차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구조가 원래 그렇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얻는 자가 있으면 잃는자도 있고, 빼앗는 자가 있으면 빼앗기는 자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모은 돈을 가지고 자기들은 온갖 호화를 누리면서 살지만 주변에 마땅히 도와야 할 사람들에 대해서는 조금의 긍휼의 마음을 갖지 않습니다. 그들은 생각합니다. “저 사람들은 다 게을러서 가난한 거야. 내가 애써서 모은 돈을 왜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써?” 이것이 돈을 믿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죽을 때 모든 것을 놓고 가야한다는 사실에 대하여 무감각합니다. 그 후에 심판이 있다는 것도 모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잘 아실 것입니다. 부자는 날마다 자기 형제들과 친구들을 모아놓고 호화로이 연락을 즐겼습니다. 그들을 위한 잔치를 열었습니다.하지만 자기 집 앞에 있는 거지 나사로를 긍휼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긍휼없는 자는 긍휼없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심판 때까지 그들에게 돌이켜 회개할 기회를 주시면서 기다리시고 또 기다리십니다.
하지만 부자는 끝끝내 거지 나사로를 돌아보지 않고 살다가 죽었을 때에야 이 세상의 호화로운 연락이 얼마나 부질없고 쓰잘데기 없는 것인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늦었습니다. 다시는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부자에 대하여 기다려주시지도 않습니다. 이미 음부로 떨어진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이나 긍휼은 없습니다.
돼지가 아무리 음식을 맛있게 먹고 살찌더라도 돼지는 돼지입니다. 그래서 죽음의 날에 돼지는 다른 사람들의 식탁에 음식이 되기 위해 죽임을 당하는 날이 옵니다. 그 돼지가 먹은 음식이 돼지의 일생의 구원을 위해서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이 세상의 권세자들이 누리는 권세나, 이 세상의 부자들이 누리는 돈의 힘도, 자기의 얼굴이나 몸매를 사람들의 우상으로 내세워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나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우상이 된 잘나가는 운동선수들 역시 예수님을 자신의 주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는 한은 하나님의 진노의 날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메스콤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수입이 얼마며 어떤 집에서 살며, 무슨 차를 끌고 다니며, 얼마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느냐를 보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경하는 삶이 바로 그런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사람들이 재물에 관심이 없다면 기자들은 그런 이야기를 보도 해봐야 아무도 흥미를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더 이상 그런 기사를 쓰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해와로 나가서 축구를 하고 야구를 하고 배구를 하는 선수들에 대한 관심은 그들이 얼마나 그분야에 특출난 성적을 거두느냐와 그로인해 그들이 받는 연봉이 얼마냐에 초점을 맞춥니다. 연봉이 저조하다면 그들의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별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 사람들이 돈을 우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에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조자 이 말씀을 마음에 두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오직 성령이 전해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돈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데 사용할 도구로 여길 뿐입니다.
이 외에도 사람들이 마음에 우상으로 삼는 것은 많지만 대부분은 이 돈과 연관이 되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권력자도 얻는 돈이 없다면 권력을 잡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연기자들이나 가수들도 돈이 없다면 더 이상 연예인 활동을 하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대부분의 성공이라고 말하는 부분의 뒷면에는 돈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인 여러분이 예수님을 돈과 바꾸는 행동을 아무런 마음에 거리낌도 없이 행하고 있다면 그는 육에 속한 사람으로써 이 사람은 아직도 거듭났다고 볼수가 없습니다. 아니면 그는 시재물이냐 돈이냐에 대한 시험을 당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것, 하늘에 속한 것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죄인들에 대하여 오래 침으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있습니다. 서로돕고 서로 섬기면서 자신 안에와 상대방 안에서 일하고 계신 하나님을 보면서 서로를 지으신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또 찬송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며 이것을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보이고 계십니다.
여러분! 성령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성품인 오래참음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 오래참음이 아무것도 안하면서 오래 참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맡겨주신 선한 일을 행하면서 오래 참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편으로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관용의 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시한번 반복하지만 관용은 관대한 용서입니다. 관대함이라는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넓은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용의 사람은 오래 참게 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용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9장 22절을 보면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진노를 받아야 마땅한 그릇, 깨뜨러져야 마띵힌 그릇인데 깨뜨리시지 않으시고, 또 진노를 내리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면서 관용하신 것입니다. 이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셨고 또 성령 안에서 자신의 몸인 교회에 주심으로 세상이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관용을 통해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을 따라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려면 고난이 따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한 일을 행하셨다고 해서 이 세상이 금방 바뀌었습니까? 죄인들이 자신들의 죄를회개하고 돌아섰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소수의 은혜를 받은 자들만이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회개하면서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가겠다고 나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육체로 사실 때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녔지만 결국 오순절에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마가의 다락방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하며 기다린 사람은 120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오래 참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그들 모두에게 불의 혀같이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에게서도 역시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들에 대하여 오래 참으신 것처럼,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에 대하여 오래 참으신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연약하거나 무지한 행위에 대하여 오래 참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그들 안에서 자라갔습니다. 이로인해 교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자라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은혜와 진리로 충만해 있다면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연약함이나 무지에 대하여 오래 참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여러분들에 대하여 잘못했거나 혹은 교회에 대하여 잘못했을지라도 그것이 모르고 행한 죄라면 다 용납하고 용서하면서 기다릴 것입니다. 설사 어떤 사람이 일부러 어떤 자기 이익을 얻기 위해 죄를 범했을지라도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들의 죄를 깨닫고 돌아오면 기꺼이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래참는 아버지의 마음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어두운 죄악이 관영하는 이 세상에 밝히 드러내 보일 것입니다.
여러분! 이와같이 여러분들이 오래 참는 다는 것은 상대방의 반응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여러분 안에서 주시는 성품에 연관된 것입니다. 성령은 여러분들 안에 예수님으로부터 온 사랑의 마음을 넣어주시고 오래 참는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이 오래 참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랜 기다림에 대한 것으로 나타나며, 또한 여러분들이 오랫동안 기도했던 어떤 사람에 대한 응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 사랑의 씨앗을 뿌릴 때는 눈물로 뿌렸을 테지만 거둘 때는 기쁨으로 그 단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개의 씨앗이 한 단으로 거두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오래 참으면서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맡겨주신 일을 계속하십시오 반드시 기쁨의 단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죄악으로 관영한 이 세상에 여러분들은 자신의 종이요, 일꾼이요, 사신으로 보내셨습니다. 세상은 여러분들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들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영광으로 나타납니다.
여러분!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구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충만하고 그것이 밖으로 흘러나올 때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이전에 이런 것들이 나타나다가 지금은 맺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면 실망하지 말고 예수님께 나와서 구하십시오. 그러면 자신에게 꽉붙어 있는 여러분들에게 자신의 진액이신 성령을 여러분들에게 충만하게 흘려보내셔서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들을 풍성하게 맺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보이신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이 축복이 제석교회를 통해 증거됨으로 인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일이 일어나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