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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코스 호국돈대길 시작점 스템프함
언제:2018년 6월 9일 토요일 날씨:흐리고 박무 기온: 27도C 어디를: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약<20km> <갑곶돈대-용진진-용당돈대-화도돈대-오두돈대-광성보-용두돈대-덕진진-초지진> 누구와:아내와 둘이서 트레킹시간:6시간 30분<놀멍 쉬멍> ▼길가에 금계국이 만발하여 길손을 반겨주고 ▼염하강을 따라 착한길은 계속이어지고... ▼꽃양귀비도 이쁘고 ▼초롱꽃이 아직도 피어있어 반겨준다. ▼구 강화대교를 뒤돌아 보고. ▼용진진 ▼잠시 산길을 오르기도 하고. ▼타래붓꽃이 갯둑에 군락을 이루고 무리지어 살고있다. ▼망종이 지나니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인증샷도 남기고. ▼강화나들길 표지판 ▼분홍색 코스모스도 피어있고. ▼복숭아 과수원에 유독 요놈만 붉은색 복숭아가 달렸는데, 천도 복숭아인가? ▼길 섶엔 온통 금계곡이 활짝피어 황홀한 기분으로, 최고의 힐링이다. 돈대 여기서 돈대(墩臺)라 함은 성곽 평지에 있는 성에서는 보통 가장 높은 평지에 높게 축조했으며, 해안에 있는 성에서는 적들이 침입하기 쉬운 요충지에 주로 설치했다. 외부는 성곽으로 축조되어 있으나 보통 내부에는 군사 시설이 들어서서 포를 쏘거나 사방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오두돈대 모습 ▼봄철이 지났는데도 온통 꽃길이다. ▼광성보에 도착 광성보 조선 광해군 10년(1618년)에 고려시대의 외성을 보수하고, 1656년 광성보를 설치했는데, 이 보의 돈대는 1679년에 축조된 것이며 오두, 화도, 광성의 돈대와 오두정 포대가 이 보에 소속되었다. 1745년 완전한 석성으로 개축되어 당시 성문도 설치되었다. 광성보는 신미양요 당시 가장 격렬했던
격전지로서, 1871년 4월 24일 미국의 로저스가 통상을 요구하면서 함대를 이끌고 1,230명의 병력으로 침공하였을 때, 상륙부대가 초지진, 덕진진을 점령한 후 광성보에 이르러 백병전을 전개하였다.
당시 조선군 지휘관 어재연 장군 이하 전 용사가 열세한 무기로 용감하게 싸웠는데, 포탄이 떨어지면 칼과 창으로 싸우고 칼과 창이 부러지면 돌과 맨주먹으로 싸워 한 사람도 물러서지 않고 장렬히 순국하였다고 한다. 용두돈과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묘, 그리고 어재연 장군의 쌍충비각 등이 모두 보수 정화되었으며, 이 때 세운 "강화 전적지 정화기념비"가 용두돈대 위에 서 있다. 1998년에는 해변쪽으로 넓은 휴식공간을 조성하여 관광객들에게 이용 편의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광성보는 현재 사적 제 22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매년 음력 4월 24일에는 어재연 장군을 비롯하여 장렬하게 전사한 무명용사들에 대한 광성제가 11:00부터 봉행된다. 이 광성보는 당시에 사용한 대포와 포대, 성이 잘 남아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답사 오기에 좋으며, 바다를 내려다보는 전망과 돈대의 곡선 모양이 인상적이다. ▼광성보 입구 도로 로타리에 세워진 장군동상 ▼신미양요 당시 선조들이 사용하든 화포 * 좌 홍이포 - 포구장전식 화포로서 사정거리 700m이며 조선영조때 부터 주조하여 사용하였다. 폭발하는 힘으로 포탄은 날아가나 자체는 폭발하지 않아 위력이 약하다. 우리나라 재래식 화포중 가장 발달된 형태를 갖추고 있다. 포1문에 다섯개에서 아홉개의 자포를 결합하여 연속 사격 할 수 있는 발달된 화기이다. 어영군 4,300명이 40일만에 완공하였다 한다. 1977년 포좌 4개소와 포 3문이 복원 설치되었다. ▼용두돈대로 가는길 ▼문화관광 해설사가 관광객들에게 열심히 설명을 하고있다. ▼김포시 평화누리길 방향의 부래도
원래 돈대 중앙에 3칸의 무기고가 있었고 포좌 3개처가 있었다. 손돌목돈대는 성곽 길이가 108m이고 고종 8년(1871) 신미양요때 미국 해군과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던 현장이다. ▼천혜의 요새, 용두돈대 ▼마침 밀물때라서 손돌목의 소용돌이치는 바닷물의 위력을 실감한다. 밀물이 엄청 사납게 밀려 흐른다. 물속에 바위도 없는데... ▼사나운 바닷물이 소용돌이치며 북쪽방향으로 빠르게 흘러 보기에도 겁이난다. 전남 진도쪽에만 (울돌목)이 있는줄 알았는데, 강화 해협에도 이런 무서운 곳이있어 슬픈 역사가 서린곳이다. ▼용두 돈대를 나서며, ▼멀리 초지대교를 당겨서... ▼덕진진 ▼광성포대 ▼운좋은 강태공이 팔뚝만한 숭어를 낚아 올렸다. ▼요놈들은 간이 커서 가까이 가도 사람을 무서워 않는다. ▼초지진 종점, 관광안내소와 포탄맞은 소나무 여기서 스템프도 찍고. ▼신미양요 당시 포탄을 맞은 노송 두 그루가 힘겨워 하고 있다. 아직도 성벽과 소나무에 포탄 자국이 선명하다 초지진 초지진(草芝鎭)은 병인양요, 신미양요, 일본 군함 운양호 침공 등 근대 외침에 줄기차게 싸운 격전지이다. 위의 내용 중 "1871년(고종 8) 4월 23일 미국 해병 450명이 함포의 지원을 받으며 초지진에 상륙하였다. "라는 것은 신미양요(辛未洋擾)이다. 신미양요(辛未洋擾)는 1871년(고종 8) 미국군함이 강화도에 쳐들어옴으로써 일어난 사건이다. ▼바다건너 김포시 대명항 모습과 함상공원, ▼초지진 성벽과 노송 ▼초지진 포대 ▼2코스 종점 ▼김포시와 강화군을 이어주는 가야할 초지대교 모습 ▼대명항의 갈매기들, 트레킹을 마치고 ... 아내가 이번주는 강화 나들길 2코스를 걷자고... 오늘도 변함없이 이른새벽 강화로 출발이다. 강화로 가는 88번 첫차는 영등포에서 05시30분이라니 일산에서 오는 96번 버스를 20여분 기다려 06시가 넘어 버스에 오른다. 기사에게 물으니 버스는 차고지에서 서있는데도 기사가 부족하단다. 다음달부터 주 52시간이 강제 실행되면 대중교통 여건은 더욱 나빠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한 시간여만에 강화대교를 건너서 하차하여 갑곶돈대 방향 2코스를 걷는다. 전쟁기념관 앞에서 스템프도 찍고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출발이다. 싱그런 아침 바람이 갯내음과 함께 시원하고 길가 주변엔 금계국과 꽃양귀비 장미 인동초 으아리 일본 조팝나무 분홍빈도리 등등이 만개하여 반겨주고 싫지않은 갯내음이 걷는이의 마음을 흥분시킨다. 길은 강화의 격전지였든 여러 돈대를 밟아볼수있고 중학교때 배운 신미양요 병인양요등등 강화의 아픈 역사가 숨어있는 즐겁지만은 않은 길을 걷게된다. 한많은 우리민족은 수천년 동안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 노출되에 피곤하고 너덜너덜한 나라를 이끌고 왔는데. 지금까지도 휴전중인 국가로 남아 있으니 동방의 작은 나라가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국가라 하겠다. 그래도 우리민족은 우수한 DNA를 가지고 있기에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세계경제12위권이라 하니 우리민족의 위대함은 가히 세계최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광성보를 지나 울창하고 시원한 소나무 숲길을 넘어가 손돌목 돈대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니 때마침 밀물이 엄청 밀려드는데 김포시에 위치한 손돌목의 묘 앞쪽 곶부리와 손돌돈대 사이의 좁은 바다길에 움직이는 바닷물은 물살이 거세다는 말이 두눈으로 확인이 된다. 이런 광경은 처음본다. 용두돈대로 이동하니 소용돌이치는 바다건너 손돌의 묘를 다시한번 바라보고 서글픈 역사를 떠올려본다. 용두돈대를 나와 정자로 이동하여 이른 점심을 맛있게 먹고 산길을 올라 덕진진으로 향한다. 덕진진과 남장 포대를 구경하고 초지진으로 이동하여 관광안내소에서 스템프를 찍고 당시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 보호수, 400년된 노송 두 그루를 만나본다. 신미양요 당시 미군의 포탄을 맞고도 꿋꿋하게 살아서 후손들에게 역사를 증언해주는 고마운 노송이다. 포탄맞은 자국이 선명하고 가지는 모두 아래로 늘어져 힘겨운 모습을 하고 있다. 강화도 여행을 몇번째 하면서 많은 역사공부와 잊지 말아야할 우리선조들의 아픔이 곳곳에 배어있는 현장이 산재해 있음을 몸소 체험하는 그런 트레킹이다. 초지진을 구경하고 나와 초지대교를 건너 대명항으로 이동하는데 초지대교를 건너는데 17분이 걸린다. 차타고 다닐땐 몰랐는데 걸어서 이동 하려니 상당히 긴 다리다.대명항 어시장에 들어가 생선들도 구경하니 무엇 하나 구입할게 없다. 병어는 제철이라고 마리당 이만오천원. 민한 밴댕이도 kg에 2만원 여기서는 돈이 돈 같지 않게 보인다.ㅎ 물량이 많은지 흔한 광어만 조금 가격이 저렴한편이 였다. 시간은 어느덧 15시가 넘었다, 대명항에서 갈매기와 잠시 놀다 오늘의 일정을 모두 마무리 한다. 여기까지... 2018.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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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삶의 질을 높이려는것은 좋은데...현실은 더욱 살림을 어렵게하고 서민들만 힘드니 수고하셨습니다 ^^**
맑은날씨속의 강화도 둘레길이 바다와 성이 연결된 코스라 조망도 좋고 아픈 역사의 향기와 우리민족의
기상을 느낄수있는것이 ...남한산성 걸을때와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강화 나들길을 걸어보니 역사공부도 되고 좋더군요.
우리들의 아픈 역사의 흔적들이 산재해있지요.
볼거리가 많은 강화더군요.
요즘 시장이나 상가나 모두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서민 경기는 완전히 죽었어요.
큰일 입니다.
참모들이 잘해야 되는데 정말 걱정 입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