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혼다 어코드의 시승회가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아주 인상적인 모델이었습니다. 저는 아주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서, 동시에 살짝 걱정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긍정적이라는 것은 어코드를 포함하여 최근 일본 브랜드들의 긍정적인 변신이 제대로 된 방향을 정확하게 잡았기 때문이고, 살짝 걱정스럽다는 것은 현대 쏘나타와 기아 K5로 대변되는 국산 토종 세단들에게 적잖은 부담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시작한 것은 쏘나타와 K5였기 때문에 아예 주도권을 빼앗길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걱정까지 들었습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쏘나타나 K5는 미국 시장에서 토요타 캠리, 혼다 어코드, 닛산 알티마 등과 경쟁하는 관계입니다. 이 시장은 중형 패밀리 세단 시장입니다. 제가 사석에서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만 오늘은 속 시원하게 써 보죠. 중형 패밀리 세단은 미국 대중들에게 가장 믿음직하면서도 무난해야 하기 때문에 저는 ‘슬리퍼 같은 차’들이라고 정의했었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학교에서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항상 사용하는, 그런데도 잘 망가지지도 않고 거의 모든 상황에서 큰 문제가 없는 ‘삼선 슬리퍼’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미국 시장의 중형 패밀리 세단은 고장이 없는 신뢰성과 저렴한 유지비, 넓은 실내와 일상생활에서 다루기 쉬운 조작성 등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가져온 것이 바로 현대의 YF 쏘나타였습니다. 바람이 휘몰아치는 듯한 캐릭터 라인이 현란한 플루이딕 스컬프쳐 디자인을 처음 적용한 YF 쏘나타는 디자인으로 시선을 확 끌었습니다. 좋고 싫고의 의견은 확연히 갈라졌지만 쏘나타가 주목을 받는다는 것 만으로도 효과는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효과가 있었는데, 지금까지 아주 잘 팔리고 있던 미국 패밀리 세단 시장의 경쟁자들이 마치 늘어난 남편의 티셔츠를 대충 걸친 긴장감 없는 아줌마처럼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산 일본 브랜드의 경쟁자들도 디자인에 신경을 쓰기 시작합니다. 토요타 캠리는 ‘킨 룩’이라는 공격적인 – 다소 과격한 – 디자인을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통하여 앞 얼굴에 적용했는데 무난하고 평범한 옆모습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오히려 어색했습니다. 어코드는 살짝 방향을 바꿔 고급화 전략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기본 틀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의 고급화는 자칫하면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인상을 줄 위험이 컸습니다. 원래도 가장 스포티했던 알티마는 얼굴의 모양을 좀 더 공격적으로 바꾸는 등으로 대응하며 그나마 이질감은 덜했지만 오히려 신선한 맛은 덜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결정적인 한계는 앞 얼굴을 중심으로 한 디자인 변경에 대부분 머물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일본 브랜드들의 본격적인 역습이 시작되었습니다. 디자인도 정리가 되어갑니다. 지난해에 선보인 신형 토요타 캠리처럼 호불호가 확실하게 나뉘는 경향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YF 쏘나타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변화는 기본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차를 만드는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캠리, 어코드, 알티마 세 모델이 주행 성능과 조종 성능에 진지하게 접근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세 모델 모두 휠 베이스가 5cm가량 길어졌다는 것도 큰 변화입니다. 그것은 일본의 차량 등급을 정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인 휠 베이스의 굴레가 해외용 모델에도 살아남아 있었던 흔적이었기 때문에 이를 벗어던진다는 것은 큰 변화의 시작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길어진 휠 베이스를 사용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세 브랜드 가운데에서도 가장 합리적이어서 교만하다고까지 느껴졌던 토요타가 캠리의 길어진 휠 베이스를 실내 공간을 만드는 데에 사용하지 않은 겁니다. 운전석 시트 위치가 정확하게 그만큼 뒤로 갔습니다. 즉, 마치 후륜 구동 차량처럼 운전석이 휠 베이스의 중앙 쪽으로 가까워진 겁니다. 그리고 세 모델이 모두 운전석 시트의 위치가 20~30mm 낮아졌습니다. 도로의 감각을 더 잘 느끼게 하겠다는 뜻입니다. 이런 태도는 실내 공간을 넓히는 데에만 집중했던 그들에게는 완전한 방향 전환인 것입니다.
실제로 달리는 감각이 놀랍게 발전했습니다. 캠리는 무게보다도 더 중후한 느낌과 안정감으로 노면을 붙잡는 느낌이 강해졌습니다. 어코드는 더 놀라웠습니다. 고급스러움을 추구했던 이전의 어코드가 마치 어큐라 레전드의 동생 같은 분위기였다면 이제는 완벽하게 시빅의 형같이 느껴집니다. 이것은 절대 다운그레이드를 뜻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했지만 전 세계에서 혼다 시빅은 컴팩트 스포츠 세단에서 대성공을 거둔 모델이고 신세대 모델의 반응은 더욱 뜨거웠습니다.
어코드는 대성공을 거둔 시빅의 디자인을 많이 닮았습니다. 그 자체로 이미지는 분명해졌습니다. 역동성을 강조하겠다는 것입니다. 세계적 성공의 기운을 그대로 이어받겠다는 것입니다. 대중 브랜드에게는 캐릭터나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잘 팔린다’는 팩트를 십분 활용하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실제 주행 감각도 정확하게 일치했습니다. 낮게 깔린 운전석의 포지션이 전달하는 도로의 명확한 감각, 대중적 패밀리 세단의 승차감과 스포츠 세단의 조종 감각의 절묘한 밸런스, 조금 시끄러운 듯 했던 도로 소음이 고속에서도 더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은 스포츠 세단의 요건인 운전자와의 적절한 교감은 남겨놓겠다는 의도적 설정임을 증명합니다.
앞좌석 통풍 시트가 없다든지 가죽의 재봉 상태가 아쉽다든지 여전히 미국형 패밀리 세단이 보이는 품질의 허술함은 다소 아쉽지만 기본부터 다시 쓰고 목표를 정확히 잡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 브랜드들의 진지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YF가 일으킨 태풍에 제 풀에 놀라서 다시 보수적인 디자인으로 되돌아온 LF 쏘나타는 대폭 향상된 기본기에도 불구하고 진부하게 보였습니다. 더 이상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최대한 많이 바꿔라!’라는 명령에 따라 쏘나타 뉴 라이즈가 태어났지요. 하지만 이 또한 일본 브랜드들이 페이스리프트에서 느꼈던 한계를 보였습니다.
내년에 신형 쏘나타가 나옵니다. 다시 한 번 일본 브랜드들을 놀라게 만들며 시장의 분위기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현대차의 세계적 대표 모델인 쏘나타의 어깨가 무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