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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에 따른 전례] 스콜라 칸토룸의 발전(4-8세기)
스콜라 칸토룸(Schola Cantorum)은 본디 성가나 합창곡을 가르치거나 훈련시키는 학교를 뜻하며, 전례 음악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고자 설립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자들의 선두에서 노래를 이끌어 주며, 특별한 노래들을 공동체와 함께 또는 공동체의 능동적 참여 없이 번갈아 가며 선도하는 성가대를 주로 의미한다.
4세기에 설립된 스콜라 칸토룸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고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후원으로 대성당에서 전례를 거행할 수 있게 되면서 음악은 전례의 한 부분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스콜라 칸토룸은 314년 실베스테르 1세 교황이 설립했다고 한다. 367년 시리아의 라오디케이아 지역 공의회에서는 회중 노래를 금지하고 훈련된 성가대에게 전례 음악을 맡겼다. 전례의 음악적 부분을 위해 훈련된 성가대원들과 함께, 성직자들은 가장 중요한 전례 거행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으나 회중은 전례 음악에서 멀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590년에 교황으로 선출된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한동안 없어졌던 스콜라 칸토룹을 다시 설립한다.
이 성가대 학교는 유럽에 성가를 보급하는 중심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20-30명의 소년 또는 남성으로 구성되었으며 노래에 능숙한 사람만이 여기에 참여할 수 있었다. 가장 재능 있는 성가대원은 파라포니스타(paraphonista)라고 불렸고, ‘알렐루야’의 솔로를 담당했다.
스콜라 칸토룸에서의 학습 기간은 9년이고 학생들에게 성가를 외우도록 의무화했다. 성가 봉사를 하는 동안 감독이나 파라포니스타만이 책을 소유할 수 있었다.
중세 시대 초기에 서방 교회의 학문적 중심지로 기능했던 곳은 대수도원이었다. 또한 당시 전례 음악이 발전하는 고향이기도 했다.
카롤링거 왕국과 스콜라 칸토룸의 발전
피핀 3세와 그의 뒤를 이은 샤를마뉴는 그들의 왕국 전역에 로마 전례를 따르라고 명령했으며, 로마의 공식적인 전례 음악도 사용하라고 요구했다. 이 일을 완수하고자, 로마의 음악가들을 프랑크 왕국으로 데려와 성가를 가르치게 했다. 당시에 이러한 음악적인 목표를 이루려면 당연히 성가대를 보내야만 했다. 정확한 기보법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샤를마뉴의 요청에 하드리아노 1세 교황은 두 명의 성가대원, 베드로와 로마누스를 789년에 프랑크 왕국으로 보냈다. 불행하게도 로마누스는 병에 걸려 갈 수 없었고 베드로는 메츠로 가서 그레고리오 성가 학교를 설립한다.
메츠는 로마 성가와 프랑크 왕국의 성가가 만나는 지점이 되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성가를 오늘날 ‘그레고리오 성가’라고 부른다고 미국의 저명한 중세 음악 학자 맥키넌은 그의 저서 「대림 프로젝트: 7세기 후반 로마 미사 고유문의 형성」에서 말한다.
다성 음악과 네우마 시스템의 발전
알프스 북쪽의 재능 있는 음악가들은 그레고리오 성가뿐만 아니라 다성 음악도 발전시킨다. 다성 음악은 두 개 이상의 성부가 동시에 소리 내는 음악이다. 오르가눔(organum)으로 알려진 다성 음악의 최초 형태에서는, 음악의 두 번째 성부(聲部)의 음이 본디의 성가 성부음에 맞춰졌다.
오르가눔의 가장 초기 유행은 병행 음조에서 동시에 노래되는 하나의 텍스트를 활용했다. 이후의 유형은 서로 다른 음조에서 동일한 텍스트를 동시에 노래하는(자유 오르가눔) 부분을 포함했다. 다성 음악은 복잡한 여러 개의 성부와 더욱 복잡해진 리드미컬한 패턴으로 발전하여, 전례 테스트를 이해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레고리오 성가는 말 중심의 음악으로, 기도문을 지원하고 강화했다. 이러한 점에서 그레고리오 성가는 초창기 교회 음악 전통과 연속성을 지녔다. 그러나 그레고리오 성가는 일반 사람들이 더는 이해하지 못하는 라틴어로 불려졌다.
북방의 수도원 중심지에서 음악을 기보하는 시스템이 개발되었다. 그 전에는 성가의 텍스트 부분만 기록되었고, 음악은 암기되어야 했다.
9세기 중엽에, 비교적 효과적이었던 기호 또는 ‘네우마’(neumes) 시스템이 개발되어 성가대들이 이전에 배웠던 성가를 기억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네우마 시스템은 11세기 중엽에 매우 정교해져서, 악보만 갖고도 음악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회중의 창미사 참여는 제한적이었다
중세 시대 초기에, 적어도 주교좌 성당들과 유명한 전례 중심지에서는 회중이 여전히 미사 통상문의 일부를 함께 노래했다. 그러나 미사 고유문에서는 음악적인 역할이 거의 공유되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특별한 경우에 입당 예식의 일부로 영광송을 가끔씩 노래했을 뿐이다.
예컨대, 최초의 「로마 예식」(Ordo Romanus, 700년 무렵)은 스콜라 칸토룸이 노래하는 ‘키리에’(자비송)를 언급하지만, 프랑크 왕국에서는 9세기 말에도 사람들이 ‘키리에’를 함께 노래했다는 증거가 있다. 그러나 통상문의 어떤 부분보다도 ‘상투스’(거룩하시도다)는 회중이 함께 부르도록 보장되었고 어떤 지역에서는 12세기까지 잘 지켜졌다.
그러나 결국에는 통상문의 다성 음악곡이 급증하고, 이에 더해 미사 전례문을 조용하게 낭송하는 경향이 커지면서, 사실상 회중은 ‘상투스’를 부르는 동안 조용히 있는 상황이 되었다. 성찬 전례에서 회중의 목소리는 더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공동체가 이 전례 동안에 음악적인 목소리를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었다.
미사에서 자국어 노래를 허용하였던 부분은 로마의 교황이 하는 순회 미사(Missa stationalis)의 행렬 때 성인 호칭 기도들(litaniae)이나 화답 시편들(psalmus responsorius)로, 회중이 함께 불렀다. 프랑크 왕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행렬을 할 때 자국어로 된 종교적인 노래를 사용했으며, 미사에서는 강론 뒤 보편 지향 기도 다음에 회중이 다양한 형태의 ‘키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으로 응답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스콜라 칸토룸은 더욱 전문화되었고, 라틴어로 그리는 미사에서 회중이 노래로 참여하는 정도가 축소되어 미사를 그저 ‘보러’ 가는 관객으로 점점 바뀌어 간다. 그래서 회중은 자국어로 편하게 부를 수 있고 찬미할 수 있는 대중 신심에 점차 눈을 돌리게 되었다.
[문화사에 따른 전례] 4세기에 마련된 전례주년의 두 신비 기념
오늘날 거룩한 교회가 한 해의 흐름 안에서 날들을 정하여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을 경건하게 기념하고 경축하는 전례주년은 어느 한순간, 어느 한 사람이 체계를 이룬 것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되었다. 오늘날 전례주년이라 알려진 것은 4세기까지 그 흔적도 없었다. 초기 3세기 동안 교회에는 연례적으로 파스카를 기념한 흔적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주일을 제외하면 시간 주기로 표시된 어떤 다른 전례 거행도 없었다.
연례적 파스카 기념이 정례화되고 이를 준비하는 사순 시기와, 부활의 연장으로 성령 강림까지의 오순절, 성탄과 대림 시기가 형성되어 이런 시기에 맞게 형성된 미사 기도문들을 모아 놓은 성사집들이 형성되어 퍼진 8~9세기를 지나서야, 연중 전례 구조를 말할 수 있었다. 전례주년의 가장 중요한 두 축인 부활과 성탄에 대한 기본적인 틀이 형성되는 4세기는 전체적인 전례주년 구조의 바탕을 만든 시기라 할 수 있다.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는 부활 날짜의 기준
2세기 초반에는 아직 그리스도교적 의미의 파스카 축제를 지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빅토리오 1세 교황(재위 189-199년)이 개입하기 전까지는 파스카를 지내는 날짜에 대한 두 가지 관행이 공존했다. 아시아의 교회들이 유다인 파스카 날, 곧 니산달 14일에 단식하지 않으면서 그날을 그리스도교화한 반면에, 다른 교회들은 주간 첫날, 곧 니산달 14일 다음에 오는 주일을 파스카 날로 정하였다. 이런 차이는 파스카 양을 잡는 날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에서 유래
한다.
로마 교회는 니산달 14일 다음에 오는 주일을 파스카 날로 정했으나 음력인 니산달 14일이 태양력의 언제에 해당하는지는 이견이 있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는 모든 교회가 알렉산드리아 책력 계산법을 따르도록 하였으며, 이에 춘분 다음의 만월 뒤에 오는 주일(3월 22일~4월 25일)에 파스카를 지내게 되었다.
오순절과 사순 시기의 형성
3세기 초반부터 그리스도의 부활 개념은 50일 동안 연장되었으며, 4세기 말 무렵에는 부활 50일째 되는 날인 오순절(성령강림)을 성대하게 지냈다. 이는 성 대 레오 교황(재위 440-461년)의 강론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파스카 성삼일의 개괄적인 틀이 형성되는데, 이 흔적은 381년 부활절과 384년 부활절 사이에 예루살렘을 순례한 에게리아가 쓴 「에게리아의 순례기」(384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파스카 전례는 아주 일찍부터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의 날에 단식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파스카 단식과는 별도로 40일 동안의 단식이 3세기 말 또는 4세기 초에 이집트에 나타났다. 이 단식은 예수님께서 세례 뒤 40일 동안 광야에서 단식기도하신 것을 기억하며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지내고자 참회하며 준비하는 형태를 띠게 된다. 그리고 예비 신자들의 신앙 성숙을 돕는 기간이기도 했다.
육화 신비를 기념하는 성탄에 대한 기록
십자가와 부활의 파스카 사건은 기본적으로 육화를 전제로 한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그리스도인에게 동시적 사건이자 인간을 죽음으로 상징되는 과거에서 벗어나게 하고 현재와 미래를 열어 주는 사건이다. 그래서 부활을 체험한 사도들의 전승을 계승한 교회 공동제는 예수님께서 육화하신 구체적인 역사를 기념하기 시작했다.
육화 신비를 기념하는 성탄과 공현 축일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4세기 초부터 그리스도교 달력에 기록된다. ‘성탄’ 역사의 첫 번째 기록은 푸리오 디오니시오 필로칼로의 「연대기」 필사본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로마 교회의 ‘순교자 달력’과 ‘주교 달력’에는 336년부터 기록되어 있다. 순교자 달력에는 12월 25일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심’(VIII Kal.lan.natus est Christus in Betlehem Judeae)이라고 적혀 있다.
성탄 날짜에 관한 가설들
예수 성탄 축일의 날짜가 12월 25일로 정해진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기에 여러 가설이 생겼는데 그 가운데 세 가지만 살펴본다.
먼저 12월 25일은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275년에 동짓날로 정한 ‘불멸 태양신의 탄생’(Natalis solis invicti)에 대한 이교 축제와 같은 날이다. 이 점이 그리스도교에서 참된 ‘의로움의 태양’(말라 3,20; 루카 1,78 참조)이신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전례를 제시하여 이교 축제를 약화하고자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게 한다.
두 번째 가설은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결하면서 산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프리카의 교부 테르툴리아노(150-207년?)는 그리스도께서 3월 25일에 십자가에서 고난을 겪으셨다는 사실을 전제로 삼았다.
아프리카 또한 243년에 작성된 부활 대축일의 날짜 계산에 대한 다른 문헌에서 3월 25일을 천지 창조의 날로 해석해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정하는 독특한 계산법을 볼 수 있다. 창세기에 따르면 해가 만들이진 것은 창조 나흗날, 곧 3월 28일이다. 따라서 이날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역사의 진정한 태양이 떠오른 날이라는 뜻으로 말이다.
이러한 견해가 그리스도의 수난일과 수태일을 같은 날로 보게 하였고, 3월 25일에 천사가 주님의 탄생을 예고하고 주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 마리아의 태내에 잉태된 것을 찬양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3월 25일에서 9개월 뒤인 12월 25일을 성탄 대축일로 정하는 것이 서방 교회에서 3세기에 진행되어 자리를 잡았다는 추측이다.
세 번째 가설은 성탄의 본디 의미를 더 명확하게 하고 로마에서 특이하게 빠르게 확산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성자의 신성과 인성에 대해 이견을 제시한 아리우스 이단과 논쟁하면서 성자께서는 참 하느님이시며 참인간임을 고백한 니케아 공의회의 믿음을 강하게 드러내고자 성탄 축일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의견이다. 이후 4세기 중엽의 성 대 레오 교황의 성탄 강론에서 이러한 의미를 아주 잘 드러냈다.
이교 문화를 그리스도교화하며 발전한 전례주년
시대와 문화에 따라 조절과 적응을 하며 그리스도교는 복음 선포와 그리스도의 현존을 세상에 드러내야 하는 자신의 사명을 수행해 왔다. 전례주년의 측면에서 이런 그리스도교화 노력은 유다교 문화에서 형성된 안식일 예배를 주님의 부활에 맞추어 ‘주일’(묵시 1,10) 전례로 바꾸고, 구약의 파스카 축제를 주님 부활 기념의 파스카 축일로 전환하였다.
또한 우주론적 시간에 맞추어 지냈던 절기들(동지와 춘분)을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들, 곧 부활과 육화 신비에 적용하여 날짜를 정하는 지혜로운 교회의 모습이 4세기에 뚜드러졌다.
전례 탐구 생활 (35) 제대에 예물을 바친다는 것
성찬 전례의 시작에서 교우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될 빵과 포도주의 예물을 제대로 가져옵니다. 빵과 포도주의 봉헌은 유다교 전례의 베라카(berakah)라는 축복 예식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베라카 축복은 물건에 대한 단순한 전례적 축복이 아니라, 하느님 은총과 그분께서 당신 백성에게 내리신 기적들에 대한 감사와 찬미, 믿음의 표현입니다.
초기 교회는 베라카 축복이라는 틀 속에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이라는 알맹이를 채워 넣었습니다. 교회의 전례에서 빵과 포도주는 하느님 사랑의 표징인 기본 요소들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가 노력과 창의력으로 일구어낸 창조의 선물을 축약하여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제대에 예물을 바치는 것은 “창조주께서 주신 선물을 그리스도의 손에 맡겨드리는 것”이 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350항).
미사의 이 순서에서 빵과 포도주를 바치는 예식을 단순히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 사이에 있는 일종의 ‘막간’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 소박하고 단순한 행위는 사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준비하라는 강력한 표징이 됩니다. 인간의 손으로 바치는 초라한 예물인 빵과 포도주를 이제 곧 하느님께서 몸소 성자의 영광스러운 몸과 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성자의 영광스러운 생명이 음식과 음료의 형태로 전해져 우리에게 힘을 주고, 우리를 공동체로 결합시켜 줄 것입니다. 영성체 예식 때 우리는 천상의 양식으로 변한 빵을 받아먹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대에 바치는 빵과 포도주 안에서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피조물을 받아들이시어 변화시키시고 하느님께 바치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모든 것이 가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우리도 세상의 모든 고난과 고통을 제대에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예물 준비에서 우리는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행위에 우리를 내어드릴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 친교의 도구로 변하도록 맡겨드립니다.
신자들의 대표가 빵과 포도주를 봉헌할 때 다른 교우들도 종종 헌금이나 자선 예물을 제대 앞으로 가져오기도 합니다. 이는 성찬례와 이웃 사랑의 계명이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처음부터 신앙의 사회적 영향에 관심을 두었기에, 친교의 삶을 드러내는 표현으로서 그들이 가진 것을 나누고(사도 4,32 참조), 가난한 이들을 도와왔음(로마 15,26 참조)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2세기 중반의 성찬례에 대한 설명에는 고아, 과부, 질병이나 다른 이유로 곤궁한 이들을 위한 헌금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뜻이 있는 부자들은 자신이 정한 대로 내놓습니다. 그렇게 모은 것은 집전자에게 전달되어 고아, 과부, 병이나 다른 이유로 돈이 없는 이, 수감자, 이민, 한마디로 모든 곤궁한 이를 위하여 쓰입니다”(성 유스티노, 「호교론」 제1권).
사실 하느님께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부족한 게 없는 하느님께는 우리의 예물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통해서 성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이 작은 봉헌은 우리가 ‘희생하는 사랑’ 안에서 성장하도록 도와줍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봉헌이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에 결합된다는 사실이 그것 자체로는 별 가치가 없는 예물에 아주 커다란 의미를 부여해줍니다. 예물을 봉헌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과(예물로 상징되는) 보잘것없는 우리의 모든 희생을 (사제로 대표되는) 예수님 손에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제가 성부께 바쳐 올리는 그리스도의 봉헌에 대한 일치의 표시로 우리가 바친 예물을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가 재현되는 제대로 가져갑니다.
[미사의 모든 것] (27) 감사송
하느님의 구원 업적에 감사드리는 찬양 기도
나처음: 새해 들어 성경 통독을 시작했어요. 새해 첫날 우연히 성경을 펼쳤는데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1베드 1,15-16)는 말씀이 눈에 확 들어왔어요. 그래서 올 한 해 성경을 통독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조언해: whyrano(와이라노)! 나는 새해 첫날부터 성경 필사를 시작했는데. 완불소(완전히 불타는 소통).
라파엘 신부: 뭔 말인지 못 알아들어도 새해 할 일로 성경 읽기와 쓰기를 시작했다니 칭찬하마. 우리가 하느님을 닮아 거룩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란다. 하느님께서 무엇보다 바라시는 일이기 때문이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너는 내 앞에서 살아가며 흠 없는 이가 되어라”(창세 17,1)고 당부하셨지.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시어 사랑으로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단다.(에페 1,4 참조)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생활 신분이나 처지에서든, 하느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한 성덕에 이르도록 저마다 자기 길에서 주님께 부르심을 받는다”며 “이웃에게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거룩한 사람이 되자”고 권고하셨지.(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0항 참조)
나처음: 성경을 읽고 미사에 참여하는 것도 거룩한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이 되겠죠?
라파엘 신부: 허허! 안 된다면 그만둘 거니. 신앙생활 특히 성사생활은 생각보다 현실적이란다. 과거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새로운 현실, 지금 이 자리에서 구현되고 있는 현실이지. 비록 우리가 주님의 모습을 눈으로 확연하게 볼 수 없고, 전례 안에 숨겨진 형태로 주님의 실체가 드러난다 해도 그것은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현실이지. 우리가 몸을 보고 영혼을 알고, 지상에서 행해지는 것을 보고 영적이고 숨겨진 것을 깨닫듯이 전례의 거룩한 표징, 특히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현존을 경험하지. 그래서 미사에 참여하고 성경을 읽는 것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데 큰 도움을 준단다. 지금 우리가 미사에 관해 공부하는 것도 거룩하신 하느님을 체현하는 데 길잡이가 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지.
조언해: 감사 기도가 미사의 가장 거룩한 부분이죠. 저는 감사송을 시작할 때 사제가 양팔을 들어 올리며 “마음을 드높이” 할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껴요.
라파엘 신부: 나도 그래. 사제가 성찬 기도를 바치기 전에 감사송을 하는데 라틴말로 ‘프레파시오’(Praefatio)라고 해. 이는 ‘서문’이라는 뜻이야. 그래서 옛 미사 경본에는 ‘감사 서문경’으로 번역했지. 하지만 이 기도는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거룩한 하느님의 백성 전체의 이름으로 하느님을 찬양하고, 구원 업적 전체에 대해 감사를 드리는 기도이기에 현행 미사 경본에서는 ‘감사송’이라고 해.
나처음: 감사송을 자세히 새겨들으면 주일과 축일, 평일 때마다 내용이 다른 것 같아요. 감사송이 여러 개가 있나요.
라파엘 신부: 감사 기도 전례문은 전례 시기와 축일에 따라 변하는 부분과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었지. 변하지 않는 부분을 ‘카논’이라고 한다고 말이야. 변하는 부분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감사송’이야.
감사송 내용은 주님의 구원 업적을 드러내고 있단다. 그래서 대림 시기에는 구세주를 기다리는 내용을, 성탄 시기에는 그리스도의 탄생이 모든 인간에게 하느님의 영광으로서 드러난 사실을, 사순 시기에는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를, 부활 시기에는 십자가를 통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상세하게 진술하고 있지. 또 각 대축일과 축일, 기념일에는 해당 주제를 상세히 진술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현행 로마 미사 경본에는 82개 감사송(통상문 감사송 부분에 51개, 시기 고유 부분에 31개)이 수록돼 있단다.
조언해: 감사송 내용이 전례 시기마다 달라져도 마지막에는 늘 ‘거룩하시도다’로 끝나는 것으로 보아 특별한 구성 요소로 짜여 있는 듯해요.
라파엘 신부: 냉철한데. 언해 말대로 감사송은 시작과 본문, 마침 부분으로 구성돼 있단다. ‘거룩하시도다’는 감사송의 마침 부분이 아니라 감사송에 대한 신자들의 화답이란다.
하느님의 자비와 은혜에 감사하는 것은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그래서 감사송 시작은 일반적으로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옵니다”라는 감사의 찬미로 시작하지. 모든 인간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되었기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기도를 바치는 것이야. 이 감사송 시작 부분은 거의 변하지 않아요.
본문은 전례 시기와 축일에 따라 그 내용이 변해. 내용은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선포하고 있단다. 그래서 전례학자들은 모든 감사송의 본문 내용을 종합하면 한 권의 훌륭한 가톨릭교회 교리서, 구원의 역사서가 될 것이라고 말하지.
마침은 천상 영들의 이름이 다소 바뀌는 것 외에는 시작 부분처럼 거의 내용이 변하지 않는단다. “그러므로 저희는 놀라움으로 가득 차 아버지의 크신 사랑을 찬양하며 구원의 기쁨을 고백하고 하느님의 수많은 천사와 함께 입을 모아 끊임없이 노래하나이다”라며 하느님 나라의 천사들과 성인들을 하느님 찬양에 동참시킨단다. 이는 지상 교회의 미사 전례가 언제나 천상 예루살렘에서 거행하는 전례에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란다. 지상 교회와 천상 교회가 하나가 되어 하느님의 영광과 구원의 은혜를 찬미하고 감사하는 현실이 바로 미사야. 이제 신앙생활이 현실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겠니?
나처음: 예! 그래서 저도 거룩하시도다를 노래하면서 거룩한 사람이 될래요.
라파엘 신부: 하하! 그래 너희도 미사를 통해 하늘의 천사와 성인들처럼 거룩한 사람이 되어 끝없이 하느님을 찬미하길 진심으로 바란단다. 다음번에는 거룩함과 미사의 ‘거룩하시도다’에 관해 알아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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