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편지 35신]소설 『난설헌』에 울어버린 60대 남자
이 시대 ‘조선朝鮮의 여인’이신 ‘혼불누님’께.
조선의 여인이라니 낯선가요?
혼불누님은 어떤가요?
생활한복을 즐겨 입고, 명절이면 유과를 직접 만들며,
편강과 메밀묵을 잘 만드는 누님을 보면,
꼭 100여년 전 사대부집 여성들이 꼭 그랬을 것같더군요.
또한 대하예술소설 『혼불』10권을 스무 번도 넘게 통독하여
‘혼불박사’가 되었기에 혼불누님으로 부르는 까닭입니다.
벌써 누님을 친누나처럼 사귄지도 15년이 넘었습니다.
이제 칠십 고개를 막 넘어섰지요.
저와의 인연으로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큰딸’을 자청하여
명절때마다 인사를 오고, 수시로 안부전화를 묻는 등
친정으로 여겨주시는 누님에 대한 고마움을
어찌 말로 다 하겠습니까? 또한 저를 아우로 사랑해주시니 말입니다.
고맙습니다.
블로그를 찾아보니,
오래 전 누님께 쓴 편지들이 몇 통 있더군요.
http://yrock22.egloos.com/4133
http://yrock22.egloos.com/2073827. 재미로 한번 다시 읽어주세요. 흐흐.
한 달 전쯤, 누님은 2011년부터 시작한 <혼불문학상> 수상작품을
다 가지고 계실 것같아 몽땅 빌려달라고 했지요.
요즘 9회까지의 수상작품 아홉 권을 읽는 재미에 쏙 빠졌습니다.
1회 최문희 지음 『난설헌』
2회 박정윤 지음 『프린세스 바리』
3회 김대현 지음 『홍도洪度』
4회 박혜영 지음 『비밀정원』
5회 이광재 지음 『나라없는 나라』
6회 박주영 지음 『고요한 밤의 눈』
7회 권정현 지음 『칼과 혀』
8회 전혜정 지음 『독재자 리아민의 다른 삶』
9회 서철원 지음 『최후의 만찬』
지난해 10회는 수상작품을 끝내 정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모두 ‘다산북스’라는 출판사에서 펴냈더군요.
지금까지 5권을 통독하고 6권째를 읽고 있는데,
그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습니다.
모처럼 독서삼매경讀書三昧境에 흠뻑 빠져 있습니다.
MBC 방송의 ‘제11회 혼불문학상 공모전’과 ‘혼불문학상 수상작품 감상문 공모전’안내를 보고,
불현듯 이번 기회에 수상작품들을 다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당선작 1편에 상금 7000만원.
아마 국내 문학상 공모전에 최다 상금이 아닐까 싶습니다.
해마다 200∼300편(200자 원고지 1000장 이상)이 응모한다는데,
심사위원들도 고역이겠더라구요.
언감생심, 제가 소설을 써 공모전에 응모하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떠한 주제와 내용으로 소설을 써 그 어려운 경쟁률을 뚫고
당선이 되었을까, 궁금했던 것이지요.
70년대 후반 대학시절에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을 비롯하여 시대적으로
반짝반짝하던 소설(최인호, 한수산, 윤흥길, 박범신, 양귀자, 조선작, 조세희 등등)들을 읽은 후
이렇게 한순간에 많은 소설을 읽은 것은 처음입니다.
첫 번째 놀란 것은 최문희님의 『난설헌』이었습니다.
조선의 천재 여성문인이었던 난설헌蘭雪軒 허초희許楚姬의 비극적인 삶을
어쩌면 그렇게 고스란히 재현해 놓았는지,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너무나 가슴이 먹먹하여 눈시울이 뜨거워지다 못해
한참을 울었겠습니까?
소설을 읽으며 이렇게 울어보기는 처음, 저도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울었다는 게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흐흐.
감수성이 풍부해서 그렇다구요?
아니요. 그보다 감정이입이 너무 쉽게 된 때문이었습니다.
77세의 할머니가 쓴 소설이 저를 울렸습니다.
독후감을 쓰자면 가히 ‘미니 혼불’이라고 할 만했습니다.
어쩌면 이름조차 ‘최문희’였을까요?
『혼불』의 작가 ‘최명희’와 자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무척 섬세한 심리 묘사가 두드러지더군요.
‘혼불정신’이 정확히 무엇을 뜻한다고 적시하지는 못하겠으나,
최명희 작가의 혼불의 정신을 이어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난설헌의 불우한 결혼생활에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도 난설헌의 강릉 생가와 기념관도 가보았고,
그녀와 관련된 몇 가지 일화도 알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직후 명나라 사신 주지번에게 막내동생인 허균이
누님의 시 몇 편을 주었다지요.
『난설헌 시집』은 중국에서 처음 펴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어서 조선에서 출판하였고, 일본으로도 수출되었다지요.
요즘말로 하면 ‘문학의 한류韓流 원조’라 하겠습니다.
난설헌을 흠모하다 못해 아바타로 생각했던
중국의 허소설헌許小雪軒 이야기도
언젠가 제가 졸문으로 엮어놓은 적이 있습니다.https://cafe.daum.net/jrsix/h8dk/742.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들 딸을 먼저 앞세우고, 남편과 금실도 나빴던 결혼생활로 인해
불과 27세에 세상을 뜬 천재문학가였던
난설헌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연유입니다.
수상작품은 편편이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433살 먹은 조선의 여인 『홍도洪度』의 소름 끼치는 흡입력에 놀란 데 이어,
녹두장군 전봉준의 실패를 다룬 『나라없는 나라』,
기록을 둘러싼 권력세계의 파워게임을 밀도있게 그린
『독재자 리아민의 다른 삶』등을 읽으며,
우리나라 문학도文學徒와 작가들의 저력을 엿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주제와 내용도 좋고 구성도 탄탄한 듯했습니다.
『혼불』과 혼불문학상 수상소설들이
우리에게 안기는 의미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아, 어찌 젊은 시절 소설공부를 하지 않았던가? 한탄도 했습니다.
상금이 욕심나서가 아니고,
이런 소설 한 편 죽을둥살둥 매달려
완성한다면 무슨 원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한 것이지요.
치열하지 못했던 저의 삶을 되돌아보기도 했습니다.
아홉 권을 다 읽고 뭔가 저의 느낌을 누님께 전하려 했는데,
인내심이 다해 편지를 쓰고 맙니다.
10권 통독하기가 너무나 힘든『혼불』도 다시 읽어보고 싶습니다.
바위에 손톱으로 한 자 한 자 꾸우꾹 눌러 쓴 것처럼
소설을 썼다는, 치열했던 문학인 최명희님이 남기려 했던 것은,
우리에게 주려고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미완이랄 수 있는 『혼불』한 편을 쓰려고
이 세상에 잠시 다녀간 고왔던‘불꽃여인’을 기리며,
오늘밤도 수상작품에 빠져보렵니다.
누님, 올해도 맡을 사람이 없어 동네이장을 또 떠맡아
7년째 하고 있다구요.
읽을 책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앞으로 3년 더 할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구요.
27년 동안 이장을 한 남편의 뒤를 이은 ‘부부이장’으로
한 세대를 훌쩍 넘는 기록을 세우는군요.
좋은 일입니다.
동네 주민들을 위한 봉사는 힘들어도 아름다운 일이겠지요.
나이 들어가는 삭신이 어찌 예전만 하겠습니까?
문제는 건강이지요. 불면증이 심하시다니 걱정이 됩니다.
늘 건강 유의하시며, 여느 해처럼 또 열심히 사시길 빌겠습니다.
도서관처럼 책 몽땅 빌려줘,
2월은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2월 9일 초저녁에
동생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