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4O6cIAaty-w
예배영상
빌 1:23, 둘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26-9-6
요즘(28일) 중국에 불어닥친 태풍(18호 태풍 사우델)으로 피해가 극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태풍이 바로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니라, 갔다가 다시 돌아서 왔다가 또 가는 자동차에서 P턴하는 방식으로 태풍이 지나갔다고 합니다. 그러니 피해 지역에는 동일한 태풍이 3번에 걸쳐서 피해를 줬다고 합니다. 정말 이례적인 태풍이였다고 합니다. 600mm 비로, 집채가 무너져 버리고, 600살 고목도 쓰러지고 자동차들이 그냥 떠내려가고 온 도시가 물바다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저 사람 목숨이 파리목숨보다 못한 그런 처참한 광경들이 TV화면을 통해서 낱낱이 전달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태풍 후에는 4.8 지진까지 발생해 혼비백산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말 온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자연재해로 인한 막대한 재산상 피해뿐만 아니라 인명피해까지 수도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신앙인으로써 우리는 주님 오실 날, 마지막 심판 날을 준비하면서 겸허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오늘 우리를 부르신다면 천국 갈 준비를 하면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 갇혀서 자신의 사형집행이 집행될 수 있다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이 빌립보서신을 빌립보 교회에 보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이런 신앙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첫째,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훨씬 좋은 일입니다.
회사에서 과장님 한 분이 지나가면서 ‘목사님은 좋겠어요.’. ‘아니, 왜요?’ ‘목사님은 죽으면 천국가니까!’ 지나가면서 우스개소리로 던지는 말입니다. 그랬더니 함께 지나가던 대리 한 분이 막 웃어댑니다. 그래 제가 뒤전에다가 ‘그래요, 언제든지 죽으면 천국가면 되니까, 좋습니다’라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감옥 안에 있는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빌립보 교회가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힌 일로 인하여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복음을 위해 갇힌 것을 당연하거나 자랑스러워하면서, 이렇게 갇혀 있는 이 일로 인하여 빌립보 교회가 더욱 더 복음전도에 열심인 것을 격려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의 처지에 대해서 말하기를, 사도 바울은 지금 삶과 죽음 이 둘 사이에 끼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께 끼어 있지는 않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아예 죽음을 생각도 못하고 삶에 대해서만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은 삶(생명, 살아 있는 것)에 빠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지금 언제 감옥에서 사형집행을 당할는지 모를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자신은 삶과 죽음 그 사이에 완전히 끼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곧 죽을 수도 있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빌 1: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끼어있다’(수넼소), ‘에워싸다, 둘러 압박하다, 통제하다’, ‘특별한 시간에 어던 특정 상태로 압박되고 영향을 받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차라리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에 있는 것이 훨씬 좋은 일이다’고 고백합니다. *‘훨씬’(폴루스), ‘많은, 큰, 위대한’. 크게 더 좋은 일이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좋은 일’(크레이스손), ‘더 나온, 더 좋은, 우월한’. 이 세상에서 신앙으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는 일은 크게 더 좋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항상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바로 그 곳이 천국인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이렇게 죽음을 통해 천국가는 일을 더 좋은 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둘째. 내가 사는 삶은 교회에 더 유익이 되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기도해 보니까, 지금은 이 훨신 더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됩니다. 비록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는 신세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지금 죽어서 천국에 갈 수밖에 없는 그런 위험천만한 상태에 있지만, 또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는 기도하면서 이 감옥에서 풀려날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풀려나 살게 된다면, 그것은 교회에 유익이 되는 일이라고 고백합니다. 죽는 것은 신앙인에게 훨씬 좋고 유익한 일이라면, 사는 것은 도리어 교회에 좋은 일이고 유익이 되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빌 1:24–26,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육신으로 있는 것’, 곧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은 ‘너희(교회)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유익하다’(아나그카이오스),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치명적으로 필요한, 꼭 필요한, 지금 빌립보 교회를 위해서는 사도 바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사도 바울은 25절에, ‘내 살 것이다, 너희 교회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교회)와 함께 거할 것이다’*(지속적으로 머무르다). 이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아노니’(오이다), ‘알다’, ‘깨닫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머무는 것이 왜 교회에 유익이 되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님을 더욱 더 자랑하고 전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교회의 어떤 특정한 성도를 위해서 기도해주거나 축복해줘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자랑하는 일이 더 풍성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의 기복적 신앙인가를 처참하게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26절,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예수를 자랑하는 일이 더욱 더 풍성하게 되기를 축원드립니다. 신앙인들은 물질보다, 자식보다, 명예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일이 더 풍성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천국가서도 당당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큰 상급이 있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의 간절한 기도와 소망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기도할 때에 도대체 무엇을 놓고 기도합니까? 우리 신앙인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감옥에서 풀려나 살든지, 아니면 사형선고를 받아 죽든지, 무엇이든지 간에 사도 바울의 간절히 기대하고 또 소망하는 것은 자신의 몸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존귀하게 하는 것입니다.
빌 1:20–21,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온전히 담대하여’(파스 팔레시아), ‘모든, 전체, 각각’, ‘확신, 담대함’, 위험이나 위태로움을 수반하는 활동을 기꺼이 수행하는 특성이 있는 담대함. 그러니 사도 바울은 어떤 위험하고 위태한 순간에도 죽어도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존귀하게’(메가루노), ‘키우다, 확대하다, 더 찬양하다, 영광을 더 돌리다’. 지금 이 순간까지 했던 일보다 더 확대시키고, 키워보겠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자신의 몸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더 키우고 확대하고 더 영광을 돌리게 하는 일만이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를 더 키우고 확대하고 더 영광 찬양 돌리는 일이 될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여러분으로 살아있는 몸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