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 괴물은, 다름 아닌 가게부채 괴물이었다(211)
그러면서 그들은, 월남군 레이지저부대마크를, 맹호부대마크라고 빡빡 우겨 되기도 하였다.
이 기막힌 논쟁을 관전하고 있던, 그 막강한 세력들이, 권 씨 그를, 두둔하고 나섰다. 하여, 권 씨 그를 두둔해 주는, 그 막강한 세력들과, 권 씨 그를 반대하는 세력들과 한판 붙게 되었다, 이렇게 한판 붙은 논쟁이, 약 20여 일 동안이나 계속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전투 현장에서 병사들이 무심코 내 뱉은 욕지거리와 비속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때문에 권 씨 그는, 이런 예를 하나 들어, 이렇게 답 글을 달았다. 그럼, 도로에서, 앞 차가 알짱거리면, 뒤차 운전기사가 화가 나서, 이걸 확 밀어 벼려? 하고, 소리를 지르면, 이 소리를 두고, 접촉사고 전초전이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때문에 그들도, 할 말이 없었는지? 조금 머쓱해 졌다. 그러면서 그들은, 권 씨 그에게 미안하게 되었다고 사과까지 하였다. 따라서 디펜스코리아사이트, 운영진 그들은, 대박이 났다고 기뻐 어쩔 줄 몰라 하였다. 하여, 권 씨 그의 이 같은, 연재로 말미암아, 이 디펜스코리아의 사이트가, 뜨겁게 달구어지기도 했다.
때문에 권 씨 그는, 자신감과 용기도 생겨났다. 또한 그는, 이제, 어느 누구와, 논쟁을 벌이더라도, 이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겨났다. 해서 그는, 우리 월남참전전우회 사이트에서, 이곳, 디펜스코리아사이트로, 쫓겨 온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때문에 권 씨 그는, 이제, 온라인에서도, “전사”로 등극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전투에 대한 전사, 오프라인 전사, 온라인 전사, 이렇게 삼종 전사로 화려하게 등극하게 되었다.
어느덧 노무현 참여정부도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다. 노무현 참여정부의 균형발전이란 정책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부동산투기바람이 극치를 이루었다. 이 부동산 투기정책으로 말미암아, 또 하나의 거대한 괴물을 만들어 내었다. 바로, 이 괴물은, 다름 아닌 가게부채 괴물이었다.
하여, 국민들은, 노무현 참여정부에게, 대 실망을 하였다. 따라서 이 부동산 투기정책으로 인해, 부자들에게만, 더욱 더 부를 안겨 준 셈이었다. 때문에, 빈부격차가, 부동산 폭등으로 말미암아, 그 어느 정권들보다도, 더욱 더, 심해졌다. 따라서 이 부동산 폭등으로 말미암아, 내 집 마련 실수효자인, 서민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부채탕감이란 달콤한 공약에, 노무현 대선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신 불자들과 그 가족들, 또한, 그 친구들은, 노무현 참여정부에게 대 실망을 하였다. 노무현 참여정부는, 대선 공약인, 부채탕감 공약을, 차일 필일, 미루기만 하였다. 따라서 그 부채탕감 공약은, “뒤늦게” 신용회복위원회 프로젝트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법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때문에 노무현 참여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신 불자들과 그 가족들, 또한, 그 친구까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따라서 노무현 참여정부의 지지율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해서, 노무현 참여정부는, 불 야, 불 야, 이 신용회복위원회 프로젝트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신용회복위원회 프로젝트법에 가입한 신 불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였다. 대부분, 그 신 불자들은,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하였다. 또한 보증금을 어렵게 마련하여, 신용회복위회에 가입을 했다하더라도, 월 불입액을 납부하지 못해, 대부분은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해서, 그 신 불자들에게는, 이 신용회복위원회란 프로젝트법은, 그림에 떡일 뿐이었다.
경제의 경자도 모르는, 김영삼 문민정부가 IMF를 불러왔다. 따라서 교활한 김대중 국민의 정부는, IMF를 극복한다는 미명하에, 길거리에서까지 카드를 남발하였다. 때문에, 이 나라 대한민국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청춘이 구 말리 같은, 수백만 명의 젊은 청년들을, 신 불자로 내 몰았다.
또한, IMF란 거대한 괴물을 만나, 희생양이 되어, 노숙자로 내몰린 그들은, 삶의 의욕을 잃고, 온갖 질병과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말 할 수 없는, 인간 이하의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은, 죽지 못해, 겨우 목숨만 부지 하고 있을 뿐이었다. 또한 그들에게는, 악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IMF로 인해.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다 날려 버리고, 갑자기, 그 행복한 가정이 해체되었다. 하여, 그 집 가장은, 서울역 노숙자로 내몰렸다. 또한 그 집, 아내와 딸은, 유흥업소로 내 몰렸다. 그리고 그 집 아들은, 빚쟁이들을 피해 도망을 다녀야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들에게는 하나도 잘 못이 없다. 다만 그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자신의 가족들과, 이 나라 대한민국을 위해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하고, 주는 대로 임금을 받아, 열심히 살아 온 죄밖에 없다.
따라서 젊은 신 불자 그들도, 비참하게 살아가기는 마찬 가지었다. 그들은, 약 10 여 년 가까이 빚쟁이들에게 쫒 겨 다니다 보니까, 변변한 직장도 없었다. 해서 경제 능력이 없으니까, 결혼도 할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출처 : 어느 파월용사가 살아온 이야기
글쓴이 : 앙케의 눈물저자 권태준
2019.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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