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우리가 고전 음악이라고 불리는 클래식도 따지고 보면 당시엔 대중음악이었다. 종교와 음악이 분리되지 않았던 고대와 중세 때 신에게 바칠 음악을 선택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궁중음악과 서민음악도 음악을 즐기는 당사자가 궁중에 있느냐, 길거리에 있느냐의 차이일 뿐 역시 사람들이 기호에 따라 선택되어 진다.
그런 의미에서 가수 발굴 프로그램들이 전문가의 심사보다 대중들의 선호도에 큰 비중을 두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악의 취향과 목소리가 다르므로 편차는 클 것이다. 하지만 가수는 이미 그 자체로 상품이므로 다수의 대중에게 어필되어야 하며 그들의 구미를 맞출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위탄 10’에서 김태원과 방시혁은 대중들의 구미를 맞추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들이 대중에게 접근하는 방식은 사뭇 달라 참으로 재미있다.
일단 ‘위탄12’에 들어간 사람들이 기본기, 타고난 목소리와 음악적 감각을 갖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결국 사소한 결점들로 인해 탈락하지만 훈련을 받고 탁월한 기획자를 만나면 좋은 가수가 될 것이다. (어떤 분들은 이미 그들을 가수로 인정해주고 있다.) 그렇기에 여기선 음악에 대한 전문적 소견을 말하고 싶지도 않다. (사실 그럴만한 식견도 없고. ^^) 내가 발견한 당락을 결정시키는 그 사소한 차별성을 쓰고 싶다.
1. 대중들의 가슴을 움직이다, 김태원!
‘남자의 자격’에서 처음 김태원을 봤을 때 정말 신기했다. 외모와 행동이 그렇게 특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위탄’을 겪으며 그가 삶과 음악에 확실한 목표를 갖고 있으며, 또 대중의 흐름 또한 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확실한 목표는 중요하다. 인생의 험난한 여정을 겪으며 곁길로 가지 않고, 포기하지 않게 하는 힘이니까. 대중음악을 선택했고, 그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대중성이란 무기는 꼭 필요하다.
김태원에게 있어서의 무기는 바로 ‘휴머니즘’이다!
도입부에 언급했듯이 그가 선택한 멘티들은 모두 음악적 자질이 충분하다. 하지만 모두 핸디캡을 가지고 있다. 일단 외모가 받쳐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런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세상에 알려지기는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가 아닐까?
그런데 김태원은 그들의 흡인력에 주목했다. 외모가 딸려도 ‘음악만’으로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지 모른다. 여기서 그의 음악관을 볼 수 있어서 좋다. 그렇다면 그 ‘흡인력’의 원동력은 뭘까? 바로 ‘스토리’다. 고난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몸부림 치는 스토리가 있다. 그것이 대중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아닐까?
사실 ‘탑 10’이 시작할 때 손진영이 떨어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왜냐하면 ‘위탄12’에 굉장히 잘했음에도 떨어진 황지훈을 보면서 노래 부르는 순서가 좋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아쉬움을 달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열 명의 후보 중 객관적인 음악적 자질 면에서 떨어지는 손진영이 1번을 달고 나왔으니 이번이 그의 마지막 무대겠거니 했다.
하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왜? 대중들이 그가 살기를 바라니까. 그는 간절히 원하고, 애를 쓰지만 순간순간 좌절을 느끼는 사람들의 희망이 되고 있다. 이만큼 확실한 대중성이 어디 있을까? 슈스케 2의 허각이 1위를 하는데 아저씨 부대들의 힘이 컸듯이 말이다.
앞으로 손진영이 얼 만큼 어디까지 갈 지 모르겠다. 자질이 부족하다는 건 그만큼 발전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지만, 매 회 방송이 거듭될 때마다 괄목할 만큼 업데이트를 시키지 않는다면 휴머니즘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허각과 존박의 음악성 차이는 누구나가 인정하는 사실 아닌가?
2. 대중들의 눈을 즐겁게 하다, 방시혁!
방시혁은 가수 출신이 아닌 유일한 멘토다. 작곡가이며 기획자인 그 또한 심사 기준에 대한 소견이 명확하다. 바로 ‘스타성’ 이번 회에 “가수는 많지만 스타는 적다.”라는 말이 그의 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슈스케 2에서의 엄정화가 노래 뿐 아니라 무대 장악력도 주의해서 본 것처럼 말이다.
스타성을 염두하고 두고 선택한 노지훈과 데이비드 오는 그 자체만으로도 여심을 흔든다. 게다가 각각의 특징을 고려한 탁월한 기획력엔 혀가 내둘린다. 노지훈의 안무를 보며 그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도 보았다.
안타깝다면 과연 이들이 방시혁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또 다른 멘티들이 그를 만났다면? 그는 안전한 상대들을 골랐을 게 뻔 하기에 일단 그에게 뽑히기만 기획력으로 멘티들을 정상으로 이끌 것이다. 그렇다는 건 노지훈, 데이비드 오의 승리는 그들 자체의 승리라기 보단 방시혁의 승리다.
3. 멘토들의 불꽃 튀는 접전, 새로운 재미!
위탄은 멘토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나가수’를 보면서 느꼈던 건 그들이 정상이 오른 데에는 단순히 좋은 목소리와 기교가 있기 때문만은 아니란 점이다. 자기만은 확실한 색깔과 이를 받침 할 철학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멘티들은 멘토들의 철학이 담긴 작품이고 자존심이다. 멘티들에 대한 평가는 곧 멘토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는 것이기에 이번 회에선 멘토들의 불꽃 튀는 접전을 볼 수 있어 즐거웠다.
정확히 분석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무대 운영이라던가 선곡의 선택에 대한 말이 나오면 예민해 지는 것 같았다. 기술적인 문제는 금방 해결되지 않는다. 어쩌면 평생 극복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대중은 전문가 같이 예민한 귀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기타 다른 것들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테니 아마도 그에 대한 지적이 가장 무난한 것일 게다.
방시혁의 경우 노래가 아닌 쇼 중심의 무대라는 지적에서 눈에 확 띌 정도로 발끈하는 게 보였고, 반대로 가수들은 선곡의 부분을 건드리면 방어 본능을 보였다. 점수도 방시혁과 가수들의 점수가 상반된 경우가 많다. 아마도 그들이 중요시 여기는 것의 차이일 듯싶었다.
백세은은 독특한 목소리를 갖고 있지만 무대 적응력 등 그 외의 것들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조형우는 흠 잡을 수 없는 엄친아로 참으로 안정적이다. 만약 퍼포먼스 위주가 아니라 노래 그 자체로 승부했다면 탈락하지 않았을 것 같아 아쉽다. 그래서 신승훈의 새로운 시도가 안타깝다. 지난주엔 그의 제자인 황지훈이 탈락했는데, 개인적으로 그의 무대가 너무 훌륭했다고 생각하기에 1번이란 대진운이 아깝게 생각되어진다.
4. 감상을 마치며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 한다. 그건 불멸의 진리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원석도 세공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괜찮은 원석이 훌륭한 세공가에 의해 비싼 보석이 된 반면, 뛰어난 원석이 그저 그런 세공자에 의해 망가지는 것을 종종 본다.
그래서 노래를 잘하지만 기획자를 잘 못 만나 꽃을 피우지 못하는 가수를 보면 안타깝고, 노래는 그저 그런데 대중의 욕구를 너무 잘 파악해 인기 있는 것을 보며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위대한 탄생’을 통해 가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며 노래 실력 못지않게 대중의 욕구를 파악하고 그것을 공급해 주는 것도 하나의 자질임을 확실히 깨달았다. 이태권이나 백청강이 아직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건 대중들이 원하는 호소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중들이 귀머거리가 아니란 점이 다행이다. 그리고 기획자들 또한 비주얼에만 집착하지 않고 좀 더 이런 가수들을 많이 발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바이벌 가수 프로그램만 보다가 ‘나는 가수다’를 본 후 진짜 깜짝 놀랐다. 멘토들이 지적을 할 때마다 “난 잘 하는 거 같은데.”라고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나가수’를 보니 그 차이가 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