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선 철도이설공사 솔안터널 구간 답사기
(2007. 11. 4)
시작하면서
2007년 11월 3일부터 4일까지 1박 2일간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주최한 “KR 온라인 카페 운영자 철도사랑 워크숍”에 다녀왔습니다. 약 20여개 모임에서 40여 분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여러 코스를 다녀왔습니다만 그 중에서 가장 메인 이벤트라고 할 수 있었던 솔안터널 공사현장에 관한 부분을 자세히 기록하면서 여러 회원분들과 경험을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
영동선 이설공사 현장 사무실
솔안터널 개요
솔안터널 16.24km를 포함한 영동선 철도이설 사업은 영동선 동백산-도계 구간의 기존 철도노선 19.6km를 폐선하고 17km의 새로운 노선으로 대체 이설하는 사업이다.
스위치백 구간에서 만난 화물열차. 솔안터널이 완공되면 스위치백은 사라진다.
현재의 영동선 동백산-도계 구간은 300R (철도노선의 곡선이 급한 정도가 반지름 300~349m의 원호와 같음을 나타냄)의 급곡선이 수km에 걸쳐 연속적으로 나타날 뿐 아니라, 30퍼밀의 급구배 (선로의 기울기. 30퍼밀은 1000m를 가면 30m를 올라가는 경사도) 를 보이고 있는 등 운전조건이 매우 열악하여, 열차 안전운행과 속도향상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러나 솔안터널 구간이 완공되면 이 구간 곡선반경이 600R 이상으로 개선되고, 경사도 역시 25퍼밀 정도로 좀더 평탄하게 개선된다. 이에 따라 열차 운행 시간이 34분에서 22분으로 12분 단축될 수 있다고 한다.
솔안터널의 필요성
영동선은 일제에 의해 1940년 건설되었는데 당시 통리재의 표고차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통리역~심포리역의 1.1km 구간이 사실상 단절된 채 개통. 운영되어 왔다. 이 구간에 궤도 자체는 연결되어 있었으나 경사도가 수백 퍼밀에 달하여 열차의 운행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인클라인(incline)' 이라 하여 화차를 1량씩 와이어에 달아 끌어올리거나 내려주는 시설이 도입되었지만 그 능력은 극히 미미했다. 이 1km 남짓한 짧은 구간을 통과하기 위해 무려 8.5km를 우회하는 ‘산골터널’을 포함한 ‘황지본선’이 개통된 것은 1963년의 일이다.
영동선 황지본선 구간을 지나며...
그런데 1999년. 그러니까 황지본선 개통 36년만에 이 구간의 재이설이 결정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할 만하다.
여기에는 토목기술의 발전으로 장대터널의 시공이 가능해졌다라고 하는 부분 외에 다른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였다. 특히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산골터널 등 터널구간에서의 침하와 잦은 보수공사였다고 한다. 산골터널이 트러스트 단층대 (횡방향 단층)에 걸쳐 있어 지반의 침하와 변형이 크게 일어났고, 결과적으로 터널 라이닝의 변형과 균열이 일어났다. 이 경우 라이닝 보강공사 (터널 벽에 시멘트를 덧씌우는 보강공사) 가 필요하다. 때문에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친 라이닝 보강공사를 통해 터널의 수명을 연장시켜 왔다고 한다.
그런데 시멘트를 덧씌우다 보면 당연히 터널 단면이 줄어들게 된다. 현재의 산골터널은 여러 차례의 덧씌우기가 진행된 결과 더 이상 시멘트를 덧씌우면 열차 진입이 불가능할 정도로 터널 단면이 줄어들어 더 이상의 보강공사가 어렵게 되었으므로 터널의 재시공이 요구된 것이다.
이 지역은 석탄과 함께 석회암 지형으로 유명하다. (사진은 동해시 천곡동굴)
즉 단층대와 무른 석회암 지질이 황지본선 구간 토목구조물의 수명을 크게 단축시킨 바. 철도로서는 상당히 짧은(?) 기간 만에 솔안터널 구간으로의 재이설이 결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솔안터널은 단층대와 폐광, 지질 등에 대한 조사연구를 통해 가장 적합한 대안선형으로 설계, 건설되고 있다고 한다.
솔안터널의 신공법
솔안터널의 굴착방법은 NATM(신오스트리아식 터널공법)으로, 터널 굴진과 동시에 암반에 큰 변형이 일어나기 전에 쇼크리트와 락볼트를 시공해 암반을 안정시키는 공법이다. 터널을 뚫으면 공간이 생기고 이 공간에 막대한 하중이 걸리게 되어 버팀목 등을 빨리 세우지 않을 때는 굴이 무너질 위험이 있다. 그런데 NATM에서는 버팀목을 세우지 않더라도 재빨리 암반을 안정시킨 후, 터널 주변의 암반 자체로 하여금 지주 역할을 하도록 하여 막대한 하중을 견디게 한다. 최근 개발된 터널공법 중 가장 일반화되어 있고 안정적인 공법이라 할 수 있다.
최신의 터널 공법 중에는 TBM (Tunnel Boring Machine)에 의한 굴진방법도 있다. 이는 터널단면에 꽉 차는 크기의 TBM이라 부르는 거대한 드릴을 사용하여 연속적으로 파들어가는 것이다. 폭약을 사용하지 않아 환경친화적이고, 자동화 되어있어 작업속도가 대단히 빠르므로 솔안터널과 같은 장대터널에서 많이 적용된다. 그러나 솔안터널 현장의 경우 이미 산골터널의 사례에서 목격한 바 있듯이 복잡한 단층대와 함께 변화무쌍한 지질이 곳곳에 뒤섞여 있으므로 자동화된 TBM의 적용이 곤란한 부분이 있다고 한다. 즉 무턱대고 파들어가기보다는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전방의 지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가면서 작업하는 편이 안전한 것이다.
그러나 TBM을 적용하지 못한 대신 막장(터널 작업현장)을 5개로 늘려, (터널 입/출구 뿐 아니라 중간 지점에도 2개소의 사갱을 파들어가 작업) 착공 6년 만에 16km 전 구간을 관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솔안터널의 안전 대비
공사를 위해 파들어간 2개소의 사갱은 향후 복선화 공사가 필요할 때에 다시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터널 운영 중 비상시를 위한 대피 통로로서도 활용된다고 한다. 사갱과 터널이 만나는 지점에는 승객이 대피하고 구조작전을 펼칠 수 있는 거대한 대피 공간이 있을 뿐 아니라 각 6개씩 총 12개의 대형 환기시설과 스프링클러 등이 설치된다. 특히 각 사갱은 대형 버스는 물론이고 대형 중장비가 왕래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통로로 되어 있어 유사시에는 직접 차량과 장비가 터널 내부까지 진입할 수 있다고 한다.
사갱은 대형 버스가 들어가고도 한참 남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이다
직접 버스로 들어가 보니 웬만한 역이 들어서도 될 정도의 거대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비상시에 한해서이긴 하지만 실제로 승객이 타고내려서 터널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 시설인 만큼 사실상의 ‘역’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또한 총연장 16.24km에 달하는 솔안터널에는 중간지점(약 10km지점)에 마주 오는 열차가 서로 빗겨 지나갈 수 있는 교행역(신호장)이 별도로 설치된다. 다만 신호장은 지상과는 수직 피트로만 연결되므로 사람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은 곤란하다. 따라서 신호장의 각종 설비는 전자동 무인시스템으로 운영되며, 일반 승객의 이용이나 승하차가 이루어지지도 않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터널의 직경은 열차가 통과하는 공간 외에 약 1.5m의 여유 공간을 설계하여 비상시 대피로나 작업통로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환경
직접 현장을 돌아보며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국내 최대라는 수식어에 걸맞지 않게 의외로 작았던 작업 현장이다. 지표면 밖으로 드러난 현장은 단지 사갱 입구뿐일 뿐이어서 거대한 현장이 그 속에 숨어있다는 것을 상상하긴 힘들다.
견학이 이루어진 제1사갱 입구
그만큼 철도 건설이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지난 천성산에서의 문제로 철도 건설이 환경파괴의 주범이 되고 있다는 식의 인식이 퍼져나간 듯 하지만, 사실상 생각해본다면 친환경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는 쪽은 철도라 할 수 있다. 만약 같은 목적과 기능을 하는 ‘고속도로’를 내려 한다면 장대터널을 건설하지 못한 채 더 많은 삼림을 베어내고 깎아내어야 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봤을 때 솔안터널을 포함한 장대터널의 상당수가 ‘철도터널’ 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스위스의 고타드 베이스 터널 (57km), 일본의 세이칸 터널 (53.8km), 도버해협의 유로터널 (50,4km) 등은 모두 철도터널이다. 심지어 유로터널의 경우 자동차는 전용 셔틀열차에 실어 나르게끔 하고 있는데 이는 자동차의 사고율이 높고 하여 장대터널을 안전하게 통행시키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며
솔안터널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길기도 하지만, 전세계적으로도 솔안터널보다 긴 장대터널은 20여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거대한 것을 순수 우리의 기술과 자본으로 건설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자부심일 것이다. 특히 이번 공사에 투입되었던 3붐 점보드릴이나 로봇형 숏크리트 머신 등은 경부고속철도 건설 과정에서도 등장했던 첨단 자동화 장비들이다. 철도건설이라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단순히 교통망으로서의 철도를 만드는 것 뿐 아니라 토목기술 등 우리의 기술수준을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 하는 발판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 생각을 하고 보니 스위치백이 그렇듯이 단순한 토목구조물로가 아니라, 독특한 철도로서 관광 자원화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일본의 세이칸 해저터널의 경우 중간 교행역에 실제로 여객 승하차가 가능한 설비와 전시장을 갖추어 승객들이 직접 해저터널의 위용을 눈으로 실감할 수 있게 하고 있는 사례가 있다. 또한 조에츠본선 신시미즈터널 (13.5km) 중간 지점에도 ‘도아이역’ 이라고 하여 실제로 열차가 정차하는 역이 설치되어 있는 것 역시 흥미로운 사실이다. (등산객들이 이용한다고 한다)
교행역에는 235m에 달하는 환기용 수직구만 설치되어 있어 영업역사로 개업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비상시 열차가 정차할 수 있고 승객이 드나들 수 있게끔 만들어진 ‘사갱’을 이용한다면 적으나마 실제 승객이 타고내리는 역으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특히 관광 자원으로서뿐만 아니라, 직접 터널을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안전에 대비한 시설을 직접 눈으로 보여줌으로써 철도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영동선 이설공사 현장 사무실에서의 브리핑
평소 관심은 많았지만 직접 둘러보기는 어려웠던 철도 건설 현장을 직접 탐방하고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진진한 경험이었습다. 역시 직접 보고 느낌으로써 더욱 많은 이해 / 생각과 함께 더 큰 자부심이 와 닿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귀한 기회를 제공해 주신 한국철도시설공단 홍보팀 및 현장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잘 봤습니다. 현재 스위치백도 명물 중의 하나인데, 솔안터널도 또하나의 명물이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규모로 봐서는 복선을 전제로 한 것 같은데 일단은 단선으로 건설되겠죠? 교행역이 설치된다는걸 보니...
이 근처에 만약에 지하자원이라도 나게 된다면...
별로 영향을 받지 않을 것 같네요. 석탄도 정부에서는 수요억제정책을 펴고 있는 상태이고, 석회암은 지금과 같은 속도로 사용해도 앞으로 3000년 정도 쓸 분량이 남아있다고 하죠.
약간 지적하자면 세이칸터널의 두 역은 교행이나 대피는 불가능한 소위 '봉선역(운전간이역)'입니다. 오히려 솔안터널의 사갱 접속부와 비슷한 비상용의 '정점(定点)'이지요. 따라서 사갱 접속부에 관광 목적의 역을 설치하는 것에 대한 선례가 된다고 봅니다. 그나저나 도아이역은 가 봤습니다. 486계단의 압박… 승강장에서 역사까지 걸어서 10분입니다.
스위치백이 고속운전에 지장을 주고(전진-정지-후퇴-정지-전진 순으로 운전하기에), 건설된지 오래됐다는 게 솔안터널을 지은 이유로 알았는데, 지층이 좋지 않다는 것도 그 이유였군요. 공사한 과정도 놀랍습니다. 통리쪽과 도계쪽에서 각각 굴을 판다고 생각했으나, 사갱을 두 개 뚫어 중간지점에서도 굴을 팠군요. 문과출신인 저로서는 뛰어난 기술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세이칸터널 또한 2개의 사갱이 본갱과 교차, 혹은 병행하며 만들어졌습니다. 지질조사를 위한 선진도갱과 작업갱 두 개가 본갱과 같이 파들어갔죠. 쓰가루 해협 지층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어서 작업갱에서 물이 터져 사람도 많이 죽고... 공사가 엄청 힘들었다고 합니다.
터널 안에 신호장을 만들면서 대피공간 (= 공사용 사갱) 과 위치가 다르다는 점은 다소간 아쉬움이 남는군요. 신호장 설치 위치에 나름의 근거가 있겠지만 말입니다.
답사기 꼼꼼하게 잘 봤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글 깔끔하게 잘 쓰시네요^^
여담이지만. 나한정역에 간혹 대학교 토목도 아닌 지질관련 학과에서 답사차 오곤한다고 하던데, 그러한 이유가 있었군요. 아무튼 잘 봤습니다 :-D
통리역은 1년365일중 절반은 안개가 자욱하게끼는 곳이죠. 안개낀날 통리에서 도계쪽으로 내려다보면 정말 장관입니다. 답사기 잘봤습니다. 흥전- 나한정역간의 스위치백, 산골터널등 내가 직접 열차를 운전하며 승무했던곳 이기에 기억이 새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