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1번째 편지 - 끈기와 열정 사이
제가 미국 중학교 보딩스쿨을 투어할 때의 일입니다. 입학 담당 선생님께 학생을 선발하는 기준이 무엇이냐고 여쭤보았더니, 그 선생님은 “열정(passion)”이라고 답변하였습니다.
저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선발기준은 공정하여야 하는데 passion을 측정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계속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한 학생이 다른 학생보다 더 큰 열정을 지녔다고 평가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오히려 제 질문 자체가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얼마 전 세계은행 총재를 역임하고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하나인 다트머스 대학교 총장을 지낸 김용 총장님의 인터뷰를 유튜브에서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인터뷰에서 미국 대학과 한국 대학의 신입생 선발기준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는 대목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미국 대학의 신입생 선발 기준은 그 학생이 다른 학생에 비해 얼마나 특별한가에 주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다른 말로 바꾸면 그 학생이 다른 학생에 비해 얼마나 passion이 많은지를 본다는 것이며, 이를 위해 면접을 주요 선발 방식으로 삼는다고 했습니다.
이에 비해 "한국 대학교의 신입생 선발기준은 그 학생이 얼마나 persistence, 끈기가 있느냐를 본다"고 했습니다. 이를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험이라고 했습니다. 수년간의 시험공부는 끈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양국의 대학교 신입생 선발 과정을 passion과 persistence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만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이는 상당한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저는 미국 대학의 신입생 선발 과정이 처음부터 면접이었는지 아니면 시험에서 면접으로 바뀌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1908년부터 1922년 사이 하버드 대학교의 유대인 학생 비율이 6%에서 22%로 급증했는데, 당시 선발 기준은 당연히 시험이었습니다.
당시 하버드 대학교 총장이었던 로렌스 로웰은 이 문제를 다양성의 위기로 보고 유대인 학생수를 제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입학사정관제도를 도입하여 전인적 평가시스템을 마련하였습니다.
선발기준이 <끈기>에서 <열정>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 선발기준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였을까요? 단순히 학생의 다양성이 증가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우수한 학생은 끈기와 열정이 조화를 이룬 사람입니다. 그러나 신입생 당시부터 이를 같이 겸비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아래 질문을 던져보고 자료를 찾아 보았습니다.
질문 : 끈기 있는 사람들끼리 함께 생활하면 끈기가 더욱 강화될까?
답변 : 끈기가 강한 사람들끼리 생활하면 끈기는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지만, 열정과 창의력은 반드시 강화된다고 볼 수 없다.
질문 : 열정 있는 사람들끼리 같이 생활하면 열정이 더욱 강화될까?
답변 : 열정 있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열정과 창의력은 강화될 가능성이 크지만, 끈기가 반드시 강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서울대 법대 입학생들이 서로 경쟁을 하고 자극을 주고받으면 시험 성적은 점점 좋아지지만 그렇다고 열정과 창의력이 강화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면 하버드 법대 입학생들이 서로 경쟁을 하고 자극을 주고받으면 시험 성적은 그다지 좋아지지 않지만 열정과 창의력은 매우 증폭된다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사회적 비교 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에 따라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며 자신의 기준을 설정하는 경향이 있어 주위 모두가 끈기 있게 공부하고 노력하면, 자신도 끈기를 유지하려는 심리가 강화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전염(Social Contagion) 이론에 따라 열정은 전염될 수 있어 주변에 열정적으로 무언가에 몰입하는 사람이 많으면, 본인도 더 열정을 가지고 몰입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를 이렇게 해석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은 얼마 전까지 패스트 팔로워(Fast-follower)였습니다. 선진국, 즉 미국, 일본을 쫓아가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때 필요한 인재는 머리 좋고 끈기 있는 인재입니다. 그래서 이런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시험 위주의 대학 입시가 주를 이뤘습니다.
그러나 퍼스트 무버(First-mover)인 미국은 머리 좋고 끈기 있는 인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열정과 창의력이 뛰어난 인재가 필요합니다.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같은 인재는 모두 이런 유형의 인재입니다.
이런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열정이 많은 사람들을 선발해서 그들 간의 교류를 통해 스파크가 일어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 미국 대학들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1920대부터 시도한 이 전략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시험 위주에서 면접으로 대학입시 제도가 바뀐 미국의 대학은 열정과 창의력이 넘친 사회가 되었고 미국 사회에 어마어마한 기여를 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은 현재 어디를 지나고 있을까요. 대한민국 대기업들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요. 아직 패스트 팔로어 입장인 분야도 많지만 퍼스트 무버가 되어야 하는 분야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재 선발 기준이 다양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저도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신입직원을 뽑을 때마다 고민을 합니다. 끈기 있는 직원이냐, 열정 있는 직원이냐를 고민하게 됩니다.
사실 집에서 아이들을 키울 때도 같은 고민이 수반될 것입니다. 물론 그 아이의 타고난 기질에 따라 끈기에 좀 더 특성이 있는 아이와 열정에 좀 더 특성이 있는 아이가 나누어지겠지만 그 아이의 미래를 고민할 때는 이런 특성에 따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줄지 고민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끈기있는 아이'는 '시험'을 통해 대학교에 입학하여 그 끈기를 증폭시킨 다음 훗날 패스트 팔로워 분야에서 일하게 하고,
'열정이 있는 아이'는 '면접'을 통해 열정과 창의력을 중시하는 학교에 입학시켜 그 열정을 증폭시키고 훗날 퍼스트 무버 분야에서 일하게 하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론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많은 분들이 고민합니다. 그 미래는 우리가 아이들을 어떻게 육성하냐에 달린 것 같습니다.
끈기냐, 열정이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5.3.4. 조근호 드림
<조근호의 월요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