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준, 대전광역시 일본 통상사무소 부장
일본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초고령사회이다. 일본 내각부(内閣府)에서 2018년 발표한 '고령사회백서'에 따르면 일본의 고령화율은 27.7%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있다. 2060년에는 이 수치가 약 4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에서 시니어 세대의 역할 및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어 정부와 정치권은 시니어 세대를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고령사회 대책을 위해 일본 정부가 편성한 예산은 2017년 기준으로 총 21조 엔이다. 이 중 취업 및 소득 분야가 12조 엔으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고, 건강 및 복지 분야가 약 8조 엔, 학습 및 사회참가 분야가 115억 엔 등으로 그 뒤를 따랐다.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으로는 지속적으로 일 할 수 있는 환경 조성, 안심할 수 있는 공적연금제도 구축, 자산 형성 지원, 건강 관리를 위한 종합 대책 및 내실 있는 간호·간병 서비스 제공, 학습 활동 및 사회 참여 활동 촉진, 고령사회에 적합한 도시 정비계획 수립, 교통안전 확보, 범죄 및 재해로부터의 보호 대책 수립 등이다.
내각부에서는 60대 이상의 자국민을 대상으로 노후생활을 위한 경제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결과 64.6%가 '문제 없다' 혹은 '여유롭지는 않지만 생활하는데 걱정이 없다'로 나왔다. 연령대별로 분석해보면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노후 생활을 위한 경제력에 걱정이 없다는 응답률이 높았으며, 특히 80대 이상의 경우는 71.5%가 크게 걱정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니어 세대가 노후 생활을 위한 경제력에 대해 크게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국민생활 기초조사' 자료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자료에 따르면, 시니어 세대의 연간 평균 소득금액은 약 308만 엔으로 전체 평균인 545만 엔의 56%에 불과하지만 가처분소득금액으로 살펴보면 시니어 세대는 연평균 216만 엔으로 전체 평균인 283만 엔의 76% 정도이다. 여기에 세대 평균 2446만 엔의 저축을 가지고 있고 시니어 세대의 자가 주택 보유율이 95%에 육박하며, 이와는 별도로 공적연금 등 각종 연금을 수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니어 세대가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구매력을 키워가기 시작하면서 일본의 기업들도 시니어 세대를 대상으로 한 상품 개발 및 마케팅에 힘을 쏟고 있다. 미즈호은행 산업조사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노년층을 위한 주요 시장인 의료, 간호·간병, 생활 산업의 규모는 68조5000억 엔이었는데 2025년에는 107조6000억 엔으로 약 57%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시니어 세대의 소비 지출이 증가하면서 기존의 의료 및 건강 등에 집중됐던 노년층 중심 산업이 식품, 가정용품, 패션, IT(통신), 오락 등 다양한 생활산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혁신적인 제품이 아니라 오랫동안 봐 왔던 익숙한 콘셉트의 제품을 개발하고 이에 따른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게 된 것 역시 고령화 시대를 맞게 된 일본 시장의 특징 중 하나이다.
그러나 시니어 세대들이 고령화 시대의 주축이 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안 실제로 사회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하고 있는 세대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다는 비판도 일본 내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시니어 세대가 일본 시장경제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다소 과격한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다음의 일화는 초고령사회 일본에서의 세대 간 갈등, 그리고 지속 가능한 사회실현을 위한 과제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인 노부부 A씨와 B씨는 연금을 받으면서 생활하고 있다. 모아둔 재산도 있어 노후 생활은 크게 걱정이 없지만 매일매일 무료하고 따분한 삶이 이어져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해오다가 취미 삼아 식당을 하기로 하고 평소 아내가 잘 만들었던 돈까스 가게를 열기로 의견을 모아 집 근처 식당 거리에 가게를 냈다. 노부부는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었으며 돈에 대한 욕심도 없었기 때문에 원가만 받고 돈까스를 팔았다. 고기 양도 많고 밥과 국은 먹고 싶은 만큼 실컷 먹을 수 있게 했다. 맛있고 양도 많고 무엇보다 상상을 초월할 만큼 싼 가격에 입소문을 타게 됐고 매일같이 노부부의 가게는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러나 인근 식당은 손님이 뚝 끊겨 폐업하는 가게가 줄을 이었다.
주택담보 대출 상환을 마친 자가 보유 점포와 감가상각이 끝난 오래된 설비 그리고 나라에서 지급되는 연금으로 유지되는 비즈니스 모델이 주변 상권을 잠식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로 유지가 되는 식당은 연금을 받지 못하는 다음 세대가 이어 받아 지속시킬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갑작스럽게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가 외면하고 노후된 시설을 보수하기에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노부부가 일을 그만두는 순간 후계자 문제에 부딪혀 이 가게 역시 폐업의 수순을 밟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일본 외식업계의 한 인사는 위와 같은 현상에 ‘돈까스 가게의 비극’(とんかつ屋の悲劇)이라 이름 붙여 인구에 회자됐다.
"소비자는 옆집보다 싸고 맛있는 돈까스를 먹을 수 있는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주인이 손해를 보며 팔든 어떻든 주인이 결정할 문제다", "아무리 싸도 맛이 없으면 소비자는 가지 않는다" 등의 생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노부부의 돈까스 가게는 시장을 혼란에 빠뜨릴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사회의 지속적인 성장에 도움이 되지도 못한다. 물론 끼니를 제대로 챙길 수 없는 소외 계층을 위한 봉사활동 등 공익적인 목적이 있다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본인의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혹은 취미 생활을 위해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는 행위에 대해 단순히 ‘개인의 자유’라고 치부하기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일본의 한 정치인은 돈벌이가 목적이 아닌, 단지 일을 하고 싶다는 의욕이 있는 수많은 고령자들의 일자리 확보를 위해 최저임금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모든 세대가 상생할 수 있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중요하며,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는 지속가능성이 전제가 돼야 할 것이다. ‘돈까스 가게의 비극’은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일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일본과 비슷한 양상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시사점이 있는 일화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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