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들의 모임은 안식일 저녁에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흥부와 별, 인옥언니. 그리고 저 네사람은 아침 이른시간의 이동이 힘들었던 관계로 재부와 현수언니의 집에서 합숙을 하기로 했었거든요. ‘아직은’^^;; 신혼인 집에 눈치없이 우르르 몰려가기 정말 미안했지만, 딱 하루만 눈감고 눈치없이 굴기로 작정을 했죠.
일요일 아침! 5시 알람벨 소리와 현수언니의 또두락. 또두락. 아침밥 짓는 소리로 저희들의 아침은 시작되었습니다. 현수언니가 제일 먼저 일어났어요. 세수수건을 머리에 묶고 뛰어다니고, 졸린 눈을 비비고 눈곱을 떼고 있는 동안, 현수언니는 일을 마쳐가고 있었습니다.
‘봉사’를 위해 준비하는 저희들은 제일 먼저 몸도 가볍지 않은 누군가의 ‘맛있는 아침식사’라는 ‘봉사’를 받으며 하루를 출발했습니다.
교회에서 집사님들. 서장로님. 사모님. 재욱오빠와 유리라는 도합 열두명의 인원이 꽉 찬 우리는 목사님의 기도로 즐겁고도 가벼운 마음으로 먼 길을 출발했습니다.
아침 일찍 출발했기에 그런가요? 금산으로 내려가는 길은 하나도 막히지 않았어요. 시원하게 뻥뻥 뚤린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며 저희들이 뭘 했냐면요...
솔직히 저희들은 모두 졸았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재부와 조수석에 앉았던 흥부와 유리를 제외한 모두가요.
늦은 시간 잠들고, 이른 아침 일어난 덕에 역시 같이 피곤했을텐데, 모두의 안전을 위해 깨어서 운전대를 잡아준 재부. 그리고 같이 깨어 옆자리를 지켰던 흥부와 유리의 ‘봉사’를 받았던 안전한 오가는 길이었죠.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한 평화의 동산은 ‘우와~’하는 탄성이 절로 일만큼 감탄스러웠습니다. 조금 가파라 보이는 산자락에 포옥 안겨있는 아늑한 건물. 아직 연산홍의 흔적이 남아있는 꽃밭. 그리고 폭신폭신 해 보이는 잔디까지.
건물안에 들어서 곧바로 저희들은 남자조, 여자조로 나뉘어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남자조는 길가에 잡초뽑기, 여자조는 바닥이랑 유리창 닦기.
남자조가 목장갑을 끼고 밖으로 나갈 때, 저희 여자 조는 식당에 유리창을 닦으러 들어갔습니다.
맨 처음 발견한 것이 화이트보드 스케줄 표였어요. 한 달 동안 어느어느 기관에서 방문을 할 것인가 적혀있는 월 계획표였는데, 6월 12일에 떡~ 하고 ‘서울 삼태리교회.’라고 적혀있지 않겠어요? 무지하게 웃었어요.
식당과 복도. 그리고 방안 곳곳의 유리는 정말 많은 손길을 필요로 했습니다. 의자를 밟고 높이 올라가야 해서 어른들이 하시 기엔 정말 힘들었겠구나.. 라는 걸 많이 느꼈죠. 젊은 손길들이 더 많이 있었으면. 젊고 강한 손이 더 자주 필요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불끈불끈 솟더라구요. 높은 유리와 천장에 곳곳이 숨어있는 거미들과 나방들이랑 친구~ㅡㅡ;;;하면서 정말 청정지역이구나. 했구요.
한참을 ‘유리가 안보일 때’까지 깨끗이 유리를 닦던 저희는 병현오빠의 다급한 소리를 들었어요. 재동오빠가 독사를 잡아놨는데 사진 찍어 놓자구요. 유리가 사진기를 들고 잽싸게 달려가구요. 강집사님을 필두로 한 저희 남은 무리들은 ‘걔를 팔아서 돌아가는 여비를 쓰자.’를 논제로 신나는 논쟁을 벌였습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놓아주었대요. 왜 독사를 놓아주었냐는 항의에 ‘뱀은 여자의 발꿈치만 물지 않았느냐. 뭘 애를 잡으려 하냐.’라는 병현 오빠의 간단한 대답도 돌아왔습니다.
일한 다음에 먹은 점심이어서가 아니라, 정말 점심이 꿀맛이었어요. 반찬이 얼마나 정갈하고 깔끔한지. 그리고 또 얼마나 푸짐한지.. 같이 오지 않으신 분들은 상상도 못 하실 거에요.
콩장이랑 같이 절여져 보물찾기처럼 숨겨져 있는 메추리알이랑, 정말로 맛있는 현미밥. 그리고 하나만 먹어도 배부를 것 같은 커다란 통밀빵. 콩이 점점이 박힌 백설기. 먹기 직전에 밭에서 뜯어온 상추. 그리고 맛깔스런 나물들. 정말 정말 맛있는 점심이었어요.
점심을 먹다가 창밖을 바라보니 뒷산 꼭대기 즈음에 커다란 십자가가 세 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육안으로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요. 왕복 한 시간 거리라는 목사님의 말씀에 올라가 보기로 했었죠.
‘성서의 길’이라는 테마로 꾸며진 산책로는 감동이었습니다. 그냥 중간중간 성경절만 놓여있는 단순한 기도의 동산이 아니었어요. 모세의 출애굽. 홍해가 갈려 드러난 바닷길을 닮은 구름다리. 십계명을 받았던 시내 산. 갈바리의 고난 길. 가파른 고난 길을 헤치고 꼭대기에 도달한 커다란 세 개의 십자가.
왕복 한 시간여의 산길을 오가는 동안 저희는 ‘반지 원정대’가 아닌 ‘성서 원정대’가 되어있었습니다. 앞장선 이는 길을 판단하고, 또 나뭇가지를 꺾어 장애를 없애고. 뒤에 선 사람은 미끄러진 사람을 잡아주고, 서로 격려하고. 평평한 길이, 그리고 시원한 정자가 나올 때면 우리 입에서 흘러나온 순결한 노래와 찬양. 의도하지 않은, 정말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서로를 향한 봉사와 사랑.
산에서 내려와서 대둔산까지 다녀온 긴긴 하루 속에서 우리는 함께 오지 못한 다른 삼패식구들을 아쉬워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재부가 말했던 것처럼 정말 즐거웠구요.
그런데 우리는 정말 식구가 맞긴 맞나 봐요. 좋은 경치를 보고, 맛있는 것을 먹고, 행복한 시간을 가질 때마다 같이 오지 못한,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식구들을 아쉬워했거든요. 다음에는 꼭 더 많은 식구들이 같이 오자고. 한사람도 빼지 말고 이 길을 다시 걷고 즐거워하자고.
‘봉사’를 위해 출발한 여정이었는데, 우리는 서로에게 ‘봉사’받고 사랑받았습니다. 그리고 더 많이 사랑을 나누지 못한 다른 식구들을 아쉬워 했구요.
이만하면 우리 정말 좋은 가족이죠? 다음번엔 더 많은 가족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첫댓글 독사는 다행히 새끼여서 손쉽게 잡았죠~ 아직 어리지만 머리모양이 정확히 삼각형인 걸로 봐서 독사인 것은 알 수 있었죠.. 그러나 앙증맞게 혓바닥을 낼름낼름 거리는 어린것을 차마 못죽이겠더라구요 ^^ 독사가 나중에 은혜를 갚진 않을까?
유리는 정말 많은 손길을 필요로 했어요 더러운유리 꼬질꼬질한유리...유리..ㅡㅡ;;;;ㅎㅎㅎㅎ~
우와.. 대단하다지윤- 한편의 잘 쓴 기행문이네~이번주 안교보고 이걸로 해도되겟다ㅋㅋ^^ 무엇보다 오랜만에 보는 이 정자글씨체는....
정자 글씨체는 곧.. 한글에서 써서 옴겼단 말이지..ㅋㅋ
보고만 있어도 영상이 펼쳐지는 것 같은 실감나는 묘사^^글솜씨도 좋지만 사랑이 심어진 글이여서 더 좋았어요~
와~감동이야....함께하지 못해서 넘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