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일본의 <뗀뿌라>번역과 조선의 <무개념>베끼기(14)
若人有能 信汝所說 則爲見我 亦見於汝 及比丘僧 幷諸菩薩
(비유품 중에서)
필자의 번역
<만약 어떤 이가 그대의 설법 내용을 확실하게 믿는다면, 그때에는
바로 나(부처)에 대해 알려줘라, 그리고 그대에 대해서도 알려줘라.
또 비구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모든 보살에 대해서도 알려줘라>
●<해서는 안 된다>는 당부, <꼭 해야 한다>는 당부
앞 부분에서는 부처님께서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헛되게 이 가르침을
펼쳐서는 안 된다(在所遊方 勿妄宣傳)>고 사리불에게 당부하셨다.
다시 말해서, <해서는 안 된다>는 부처님의 당부다.
이 부분에서는 <어떤 이가 그대의 설법을 기꺼이 믿는다면>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고 사리불에게 당부하신다. 그 내용이 바로 부처님의 존재에 대해서
알려주고, 그대와 비구승 및 보살들의 존재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주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반드시 해야 한다>는 부처님의 당부다.
이 부분은 이처럼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이러이러한 일을 꼭 하라>고
당부하시는 내용이다. 아래 인용한 번역문처럼 어떤 사실을 단순히 서술하는
한가한 내용이 아니다. 글자, <見>의 뜻을 잘못 짚은 것이다.
*則爲見我 亦見於汝 及比丘僧 幷諸菩薩
<곧 이어, 나(즉 부처)에 대해 알려주고, 그대(즉 사리불)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더불어 비구승이 무엇인지, 보살들이 어떤 존재인지도 알려주라>
다시 말해서, 법화경의 가르침을 믿지 못하면 헛되게 설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확실하게 믿는다면, 그때는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 또 설법하는
너는 누구인지, 비구승은 어떤 사람이며, 보살은 뭘 하는 사람인지 차근차근
알려줘라, 는 내용이다.
이처럼 <見>을 <보다>가 아니라, <보여주다> 혹은 <소개하다>로 번역해야
經의 취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見1126 볼 견(눈으로 보다, 목격하다, 대면하다)
보일 견(눈에 띄다, 마음에 해득하다)
당할 견(수동적인 뜻, <所見, 爲見, 見受>로 연용)
여기서는 <보여줄 현>으로 쓰였다. 즉, 대면시키다, 소개하다,
드러내다, 라는 의미다.
*아래에 인용한 번역문을 보면 부처님의 당부와는 아무 관계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구經)
어떤 사람이 능히 네가 설하는 바를 믿는다면, 이는 곧 나를 본 것이
되며, 그리고 너와 비구승과 모든 보살을 본 것이 되느니라.
(무비)
만일 어떤 사람들이 그대의 말을 믿는다면
그는 곧 나를 친견한 것이며 그대 자신도 친견한 것이 되고
비구승과 모든 보살들을 친견한 것이니라.
(일본)
If there be any people who are able
To believe your preaching,
They must have seen me
And also seen you
And these bhikshus.
(자설)
글자, <見>(여기서는 드러낼 현)의 의미를 잘못 파악하면 위의 번역처럼
부처님의 당부가 엉뚱한 서술로 바뀌게 된다.
여기서 <見>은 <알려주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音價는 <현>이다.
(계속)
첫댓글 _()_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