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볼거리 - 후백제 시조인 견훤의 묘가 역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신라장군 아자개의 아들로 태어난 견훤은 후백제를 세워40년간 통치했다. 묘 주변에는 번듯한 안내판 하나 없지만 묘 자체의 위용은 사뭇 당당해 찾는 사람들에게 묘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견훤은 후백제가 몰락한 후 통분의 나날을 보내다 고려태조 19년(936년) 생을 끝마쳤다. 마지막으로“(내가 후백제를 세웠던) 완산(完山)이 그립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숨을 거둬 완산이 정면으로 내려다보이는 지금의 자리에 묘를 만들었다고한다. 관촉사는 대부분의 논산 사람들이 우선 추천하는 곳.서정미로 가득한 절이다. 경내에 세워져 있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관음보살을 구현한 신장 55척, 몸둘레 30척의 거대한 고려시대 석상.두 눈썹의 사이만도 6척에 달하는 이 거대한 불상을 보면 그 크기에 압도당하기보다 오히려 유머러스한 조형에 저절로 미소를 띠게 된다. 체구보다 어색하게 큰 얼굴이 사뭇 토속적이다. 역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다.
▶ 먹거리 - 인근 강경의 황산옥(0461-745-1836)은 올해로 생긴지 80년째인 유명한 복요리집. 복중에서도 최고급으로 치는 황복만 쓴다. 며느리들이 대를 이어 지금의 여주인 모숙자(39)씨가 4대째.집안 고유의 비법으로 담그는 고 추장을 사용한 복찜이 특히 자랑거리다. 관촉사 뒤쪽의 백록담(0461-736-0926)은 오리요리 전문점으로 유명하다. 특히 오리주물럭을 가장 자신있게 내놓는다. “천안에서 가져오는 고급육질의 오리만 쓴다”는 것이 여주인 강묘연(45)씨의 자랑.
▶ 찾아가기 - 연무대역까지 운행하는 일반승객을 위한 기차는 없다. 서울역에서 논산행 열차가 오전6시부터 오후11시30분까지 하루 20회 운행한다. 논산역 앞에서 연무대행 시내버스를 타면 30~40분 가량 걸린다. 서울 강남터미널에서는 오전6시30분부터 오후7시까지 약1시간 간격으로 연무대행 고속버스가 운행된다. 연무대 주변에는 고만고만한 여관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도 새원장여관(0461-741-0608)이 뜰도 넓고 조용해 추천할 만하다.
- 직 지 사 역 -
▶ 먹거리 - 큰 사찰이라면 대부분 그렇듯 직지사 앞에도 산채정식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들이 많다. 어느 집에 들어가도 큰 차이는 없지만 굳이 한 군데만 추천하라면 청산고을식당(0547-436-8030)이 있다. 깨끗함,친절함,음식맛 등을 고루 갖추고 있다. 음식점을 평가하는 기준이 서로 다른 여러 사람이 함께 찾더라도 별 불만이 없을 그런 집이다. 외지에서 온 관광객뿐 아니라 인근 김천 사람들도 회식을 위해 많이 찾는다. 1인분에 1만원 하는 산채정식을 시키면 더덕구이,불고기,조기구이,메뚜기튀김,콩비지찌개,갖가지 산채등 30가지에 이르는 반찬이 한 상 가득하다. 이왕 마음 푹 놓고 한 상 즐기기로 했다면 과하주(過夏酒)로 반주 한잔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경상북도 중요무형문화재 제11호인 과하주는 토종 찹쌀을 오랫동안 저온에서 숙성시켜 만드는 김천의 명주다. 마실 때 부드럽고 많이 마셔도 뒤끝이 없는 착한 술이다. 과하주 맛에 반해 몇 병 사고 싶다면 직지사에서 차로 10분거리에 있는 과하주 제조장(0547-436-4461)에 가볼 만하다. 음식점 판매 가격의 절반 이하로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술 제조공정도 직접 볼 수 있다.
▶ 찾아가기 - 서울역에서 김천역(0547-434-7788)에 정차하는 경부선 기차가 오전6시15분 통일호 첫차부터 오후11시55분 무궁화호 막차까지 평일은 45회, 금~일요일은 하루 50회 운행된다. 걸리는 시간은 통일호 기준으로 3시간 정도. 김천역에서 직지사역까지 오전에만 하루 두 번(6시5분,8시2분) 3량의 객차를 단 비둘기호가 운행된다. 김천역 앞에서 11번,111번 시내버스를 타면 직지사 입구까지 20분 걸린다. 직지사역 앞마을에는 숙박시설이 없어 김천 시내로 나가거나 직지사 앞에서 묵어야 한다. 직지사 앞에는 고만고만한 여관들이 많이 있다. 요즘은 1년중 찾는 사람이 가장 없는 때여서 어딜 가도 쉽게 조용한 빈 방을 구할 수 있다. 민박을 전문으로 하는 집들도 많다. 사람이 없을 때여서 흥정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 능 내 역 -
▶ 느낄거리 - 사람에게도 빛깔이 있다. 분(粉)과 옷으로 꾸민 색이야 얼마나 가겠는가... 삶에서 절로 우러나는 빛깔은 감추려 해도 선연하다. 어떤 이의 빛깔은 특히 오래도록 남는다. 세월의 바람을 맞아도 바래지 않아 오히려 더욱 광채를 띤다. 후대에 많은 이들의 갈길을 비추는 그 빛들은 역사가 우리에게주는 큰 선물이다. 능내역(陵內驛)으로 간다. 1월의 아침, 낡은 운동화를 깨끗하게 빨아 신고 경기도 남양주군 조안면 능내리의 이작은 간이역으로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선생을 만나러 간다. 청량리에서 기차로 40분. 서울에서 그리 멀지않은 이곳에 아름다우나 따라가기 힘든 멀리 있는 빛, 다산의 빛이 어려있다. 능내역에서 내려 걸어가면 10분. 다산이 나고 죽은 마현마을이있다. 능내는 한줄기로 뻗어가던 한강이 남과 북으로 갈리는 곳. 넉넉한 앞마당처럼 펼쳐진 드넓은 팔당호는 겨울하늘의 회색빛을 머금었다. 다산의 묘에 오르면 멀리 소내섬이 보이고 그가 남긴 큰 빛이 강물위에 비치는 것 같다. 최승범 교수가 그의 수필집 '한국을 대표하는 빛깔'에서 말하듯 다산의 색은 쑥색이다. 몇달이고 비 한방울 없어 누런 흙먼지 날리는 논밭, 그 둔덕에 돋은 구황(救荒)의 푸른 쑥, 바로 그 색이다. 춘궁기에 백성의 배고픔을 덜어준 것이 푸른 쑥이듯, 다산이 없었더라면 우리 정신사의 빈곤은 얼마나 더했을 것인지...
정인보 선생 같은 이는 다산을 가리켜 “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대학자”라고 했다던가... 하지만 다산의 빛은 박학다식한 대학자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세월을 되돌려 다산을 다시 볼 수 있다면 다산은 이 시대의 선생님들에게, 그리고 지도자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 “…희희낙락 즐겁게도 태평세월 같은 모습이며, 높으신분 그 모습은 우람하고 풍성하다. 간사한 인간들은 거짓말만 꾸며대고, 교활한 양반들은 걱정이라며 하는 말이, 오곡이 풍성하여 흙더미처럼 쌓였는데, 농사에 게으른자들이 스스로 굶주린다고 하네” -정약용. '굶주리는 백성의 노래(飢民詩)'중에서... 다산은 1794년 경기 암행감사로 연천지방을 돌아보고 쓴 기민시(飢民詩)에서 굶주리는 백성들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처참함을 백성들의 탓으로 돌리는 위정자와 가진자들의 그릇된 논리, 그 위선의 논리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나라를 근심하는 내용이 아니면 그런 시는 시가 아니며,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분개하는 내용이 아니면 시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다산의 생각이었다. 비단 시뿐이며 또 다산의 시대뿐이겠는가. 겨울비 오는 마현마을, 그의 생가 마루턱에 앉아 그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들을 읽어 보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