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12월5일
안 가도 그만이다.
내가 사는 곳은 폭풍의 언덕이다. 겨울이면 바람의 세력이 엄청나다. 언덕을 오를 때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다. 그렇지만 여름에는 시원하고 공기가 맑아서 30년 넘게 살고 있다.
오늘은 롱패딩을 입고 산책하러 나갔다. 매년 패딩은 세탁소에 드라이를 맡겼는데 올해는 손으로 애벌빨래를 해서 세탁기로 돌렸다. 소매 끝이나 얼룩이 진 곳은 손으로 비벼서 빨았다. 조금 걱정은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깨끗하게 되어서 햇살 좋은 곳에서 말렸다. 하루 말린 뒤에 효자손으로 팡팡 두드렸더니 볼록볼록 빵빵해졌다. 하얀색 패딩인데 새것처럼 뽀얗게 되었다.
골목길을 돌아서니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이 정도는 끄떡없다. “손이 시려워, 발이 시려워, 겨울바람 때문에, 꽁꽁꽁“ 노래를 부르며 아랫마을 골목길을 돌아 돌아 연지못으로 갔다. 허허벌판에 연못이 있으니 바람이 거침없이 오고 간다. 방해하는 것이 없으니 바람 세상이다. 추수를 마친 논에는 대형 마시멜로가 우두커니 서 있다. 농수로 가장자리 텃밭도 앙상한 지지대만 남아있다. 아침저녁으로 할머니들이 손수레로 물을 실어 나르며 키운 가지와 고추, 방울토마토가 눈에 선하다. 할머니들은 겨울에 무엇을 하시며 지내실까?
연지못에는 강태공이 사는 귀틀집이 제법 눈에 띈다. 날이 차가워지는데 강태공은 더 늘어만 간다. 겨울에 고기가 많이 잡히나? 이래저래 궁금하지만, 그냥 지나간다.
털모자까지 뒤집어쓰고 걸으니 땀이 났다. 모자를 벗으면 추우니, 벗었다 썼다 하면서 한 시간을 걸었다. 앞으로 더 추울 날만 있는데 이 정도는 견뎌내는 거야. 얼마 전에 인터넷으로 정장 바지를 샀는데 통이 너무 커서 수선집에 맡겼다. 오늘 찾으러 가는 날이다. 수선집 아저씨는 내가 시집올 때부터 계셨다,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 주말에 서울에서 친지 결혼식이 있어서 몇 가지 옷을 샀다, 요즘 시국이 어수선해서 가야 하나? 고민 중이다. 옷은 다 사 놓고 말이다. 못 가도 옷은 샀으니, 연말에 모임이나 행사가 많은 데 덕분에, 옷 걱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