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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조선일보에 노인 문제를 다룬 기사가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기사 중 장수(長壽)를 '재앙'으로 표현한 것을 읽을 때 몹시 언짢게 느껴졌다.
'재앙'이란 단어를 찾아보면 '천변지이(天變地異)로 인한 불행한 사고'라 쓰여 있다. 오래 사는 것이 어찌 천재지변의 불행한 사고란 말인가! 물론 여기에는 앞으로 젊은 세대들이 떠안고 가야 할 경제적 부담이라든지 건강보험 재정악화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는 것은 이해되지만 나이 든 사람으로선 섬뜩하기까지 하다. '장수가 재앙'이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어도 그런 표현을 한 것부터 심히 거슬린다.
모든 노인들이 건강하게만 살 수 있다면, 거기에 여생을 지탱할 수 있는 경제력까지 갖추었다면 국가나 사회에 폐 끼치지 않을 텐데, 따라서 장수를 재앙으로 여기지도 않을 텐데…. 건강할 때는 절대로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아름답고 고고하게 살다 가겠노라 마음속 깊이 다짐을 한다. 그런데 살아보니 마음대로 안 되는 게 건강을 지키는 일이다. 또 요즘 20·30대는 고사하고 노년이 바로 코앞에 다가온 40·50대조차도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이들에게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낄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 풍조 속에서 노인들은 안타깝고 두렵기까지 하다.
어느 아버지가 수필집에 쓴 글이 떠오른다. 제목이 '여섯 번째 인생'이던가, 첫째는 며느리, 둘째는 손자, 셋째는 애완견, 넷째는 아들, 그리고 다섯째는 가사 도우미, 자신은 여섯 번째라는 글을 읽고 짠하면서도 설마(?) 하며 웃어넘겼다. 최근 사회 이슈가 된 노인 문제 기사를 읽다 보니 새삼 이 이야기가 아프게 다가온다.
그래도 자녀들이 가까이에서 보살펴주거나 같이 사는 노인들은 기가 살아서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다. 늙고 병들면 많이 외롭고 서글프다. 노년이 코앞인 세대들도 노년을 남의 일로만 여기고 있다. 장수를 재앙 운운하는 이 시대에 오래 사는 삶을 축복이라 격려해주던 인사말은 노인들끼리나 주고받는 덕담이 되지 않았나 싶다.
첫댓글 오래 살아야 한다면 무엇인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