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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은 식물원의 비수기다. 후끈 달아오른 콘크리트블록을 걸으며 온통 초록으로 덮인 정원을 바라보는 일은 고역에 가깝다. 이런 날은 식물들도 생기가 없고 축 처지기 일쑤다. 작고 여린 식물들에게 7-8월의 폭염은 큰 시련이다. 정원사들에게도 여름이 가혹하기는 마찬가지다. 물 주기로 하루를 시작하면서 식물과 토양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은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퇴근 후에도 대여섯 시간은 해가 떠있기 때문에, 일과를 마치기 전 호스를 들고 담당 구역을 한 번 더 점검하는 일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뉴욕식물원에서는 난(蘭) 축제가 끝나고 국화 축제가 시작되기 전, 5월부터 9월까지 여름 전시가 열린다. 온실에서 열리는 다른 행사와 달리, 이 전시는 실내외 정원을 포함하여 연간 행사 중 가장 큰 규모로 준비된다. 대개 1년 또는 그 이전에 아티스트를 선정하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디자인에 따라 필요한 식물들을 준비한다. 식물원 내 수목원들과 주제 정원들은 ‘컬렉션(collections)’이라고 부르는데, 같은 식물들이 계속 자라는 곳이다. 반면, 기획 전시가 이루어지는 부지는 매년 새로 정원을 조성한다. ‘디스플레이 가든(Display Gardens)’이라는 이름에 맞게, 매년 정해지는 주제에 따라 수백 종의 식물을 사용하여 화려하고 다채로운 형식으로 정원을 조성한다. 정원을 조성하는 데 필요한 식물들을 준비하는 일도 쉽지 않지만, 디자인에 따라 식물을 심고 가꾸는 일도 만만찮다. 식물 종류에 따라 서식 환경을 잘 맞춘 컬렉션 정원들과는 달리, 디스플레이 가든에서는 원산지와 서식 환경이 서로 다른 수백 종의 식물이 각자 매력을 뽐낼 수 있도록 돌봐야 한다. 이 도전적인 과제의 시작과 끝은 단연 물을 잘 주는 일이다. 특히, 바닥이 온통 콘크리트 벽돌로 깔린 데다 온실 벽에서 반사되는 햇빛이 더해지는 컨서버토리 중정(Conservatory Courtyard), 커다란 화분이 많은 숙근초 정원(Perennial Garden) 등은 물 주기 작업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 외에도 전시 온실인 컨서버토리(Conservatory)에서도 방문객들이 몰려오는 식물원 개방 시간 전에 물 주기를 마치기 위해 매일 전쟁이 벌어진다.
뉴욕식물원 컨서버토리 중정에 조성된 디스플레이 가든에는 하루에 두 번 물을 준다. (이하 사진: 필자 제공)
뜨거운 지구, 목마른 정원
이 어마어마한 양의 물은 대부분 수도를 통해 공급된다. 뉴욕주는 강수량도 적지 않고 빙하시대에 형성된 호수가 많아 물이 풍부한 편이다. 물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니 가능한 일이지만, 식물원 내부에서도 수돗물을 사용하는 데 문제의식이 많은 편이다. 반면, 미국 서부로 갈수록 형편이 크게 달라진다. 최근 몇 년간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던 캘리포니아주 일부 지역에서는 푸른 잔디를 가꾸는 것이 대단히 호사스러운 일이 되었다. 주택 정원 등 야외용 수돗물 사용이 주 1회로 제한되었고, 잔디를 걷어내고 가뭄에 강한 식물로 대체하는 것을 장려하기 위해 주정부에서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사막 위 엔터테인먼트 왕국이라 불리는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일반 주택에서 규정 면적을 초과한 잔디는 걷어내도록 강제하고 있으며, 새로 집을 짓는 경우 잔디를 깔거나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것이 아예 금지되었다. 2027년까지 기존에 있던 잔디도 모두 제거해야 한다.
조경업계는 이런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해왔고, 물 수요가 적으면서도 아름다운 식물들로 조경을 디자인하는 내건성 조경(xeriscaping)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 중서부 식물원들은 일찍부터 건조 정원(dry garden)과 암석원(rock garden) 등을 조성해 방문객들에게 고산지대와 건조지대의 내건성 식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로키산맥 동부 건조지대에 위치한 콜로라도주 덴버 식물원에서는 건조한 지역에 서식하는 식물들로 시험 정원(test garden)을 운영하면서 새로운 정원 식물을 발굴하고 있다.
가뭄이 걱정인 곳이 있는가 하면 집중호우로 피해를 입는 곳도 많다. 작년 서울 동작구에서는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 강남역 인근 지역에서는 매년 침수 피해 소식이 들린다. 이 폭우가 기후변화의 영향인지는 과학적인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빗물을 감당하는 것이 도시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로 떠오르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에서는 상가나 학교 부지 또는 고속도로 중앙 녹지에 빗물 정원이 늘어나고 있다. 빗물 정원은 젖은 흙에 강하면서도 비가 그친 후 땅이 메말랐을 때도 잘 견딜 수 있는 식물들로 채워진다. 이 정원에서는 빗물을 가두어 땅속으로 스며들도록 저수지 역할을 하면서 다른 저지대에서 발생할 침수 피해를 예방하는 동시에, 벌과 나비를 포함한 야생 생물들의 서식처가 되기도 한다.
지난해 큰 홍수로 국토의 1/3이 잠긴 파키스탄이나, 해마다 침수 피해를 겪는 서울의 반지하 가구처럼 이상기후로 인한 자연재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가혹하다. 미국의 대도시도 예외는 아니다. 디트로이트는 한때 미국 자동차 산업의 메카로서 크게 번성했던 도시였으나 제조업이 사양화되면서 지금은 녹슨 생산 설비들이 흉물처럼 서있는, 이른바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상징이 되었다. 굴지의 자동차 회사였던 제너럴 모터스와 포드의 본사를 두고 미국에서 가장 번성했던 이 도시는 남부 지역 흑인 노동자들에게 매력적인 일자리를 제공했지만, 생산 시설의 글로벌화와 미국의 제조업 침체 여파로 도시는 파산을 선언했고, 노동자들은 도시 빈민으로 남아있다. 후기 산업 사회의 그늘이 짙은 이곳은 미국 내 인구 50만 명 이상 대도시 중 가장 범죄율이 높은 곳이며, 빈집들이 흉물스럽게 방치된 주택가는 치안과 위생 문제가 심각하다. 그리고 서울의 취약 지구와 마찬가지로 비가 올 때마다 침수 피해가 빈번하다.
캐나다 몬트리올 식물원의 고산 정원(Alpine Garden)에 피어있는 데이지의 한 종류(Thymophylla tenuiloba). 멕시코의 건조한 지역에서 자생하는 식물이다.
희망의 언어가 된 정원
그 어두운 도시에 희망의 물결을 일으켜온 사람들이 있다. 디트로이트 퓨처 시티(Detroit Future City)1)라는 비영리 공익단체이다. 주거 환경 개선과 도시 공동체 회복을 지향하는 이 단체는, 자칫 선언적 구호에 그칠 수 있는 중장기 목표2)를 대단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을 통해 하나하나 실천해나가고 있다. 그중 하나는 열악한 구도심 주택을 개선할 수 있는 저예산 정원 디자인 시안을 만들어 배포하는 일이다.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주택용 프로젝트부터 근린공원 복원 등 비교적 큰 규모의 프로젝트까지 그들이 무상으로 제공하는 설계 도면은 실로 다양하다. 특히, 디자인 템플릿 중에는 빗물 정원이 많다. 여름철 소나기로 빈번하게 침수되는 주택이 많고, 버려진 공터의 물웅덩이에서, 말라리아와 지카 바이러스를 옮기는 모기가 번식하는 곳에서 빗물 정원은 큰 효과를 발휘한다.
물 없는 곳에서나, 물이 넘쳐나는 곳에서나, 정원사들은 식물에서 답을 찾는다. 기후변화와 환경 파괴를 일으키는 우리의 생활양식을 성토하며 절망감과 죄책감을 짐 지우는 대신, 정원사들은 ‘식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믿음을 전파한다. 열대우림에서 자라는 화려한 외래 식물로 치장했던 라스베이거스 정원들은 이제 미국의 건조지역에서 자생하던 선인장과 다육식물들로 채워지고 있다. 프레리(prairie)라고 불리는 미국 중부 광활한 초지에 자생하던 천인국(Echinacea sp.)과 리아트리스(Liatris sp.), 쥐꼬리새풀속(Sporobolus heterolepis)을 포함한 다양한 그라스류들은 빗물 정원의 중요한 소재가 되고 있을 뿐 아니라, 시카고의 루리 가든(Lurie Garden)과 뉴욕의 하이 라인(The High Line)처럼 이름난 도시 정원에 자연미를 더하고 있다. 자연의 서식처를 정원에 옮겨놓았을 때 정원이 심미적으로, 기능적으로, 생태적으로 가장 뛰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확산되면서 비로소 문명은 자연과 화해하는 법을 배워가는 듯하다.
정원이 식물의 서식처라는 사상을 이론과 실증으로 세상에 알린 인물로 독일의 조경가 리하르트 한젠(Richard Hansen)을 꼽는다. 정원 환경에 맞는 적합한 식물을 찾기 위해서는 유사한 환경의 자연에서 서식하는 식물을 참고해야 한다는 그의 사상은 좁게는 ‘적합한 식물을 적합한 장소에’(Right Plant, Right Place)라는 정원 식재의 제1원리를 제시했고, 넓게는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극단적 환경 속 정원이 추구해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자연 상태의 식물들은 오랜 세월 서식 환경에 적응해왔다. 식물 형태학적, 생리학적 특징들을 살펴보면 자생지의 환경적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사막에서도, 늘 물에 잠겨있는 습지에서도, 들불이 쓸고 지나가는 평원에서도 생명을 이어가는 신비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한다.
뉴욕식물원의 자생식물정원(Native Plant Garden)에 식재된 박주가리아과의 자관백미꽃(Asclepias incarnata)은 미국의 초지에서 자생하 며 빗물 정원 소재로 활용된다. 북미 자생 제왕나비(Monarch Butterfly) 애벌레의 중요한 먹이원으로 생태적으로도 중요한 식물이다.
인내의 정원
정원이 자연을 닮아가면서 나타나는 변화 중 하나는 강인하면서도 아름다워진다는 점이다. 서식 환경과는 무관한 외래 식물들로 화려하게 장식했던, 소유와 과시의 수단이었던 전통적인 정원에서 발견하기 어려웠던 특징이다. 이것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가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다. 이 말은 자기계발 분야에서 기업 경영에 이르기까지, 위기를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원리로서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 잡아왔다. 기후위기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조경업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부각되고 있다. 건조 정원과 빗물 정원 등도 이 개념에 모두 포함되는 방식들이다. 너무 상업적인 목적으로 활용되어온 느낌 때문에 개인적으로 회복탄력성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대신, 가장 넓고 깊은 의미로 ‘인내’라는 단어를 쓰고 싶다. 회복탄력성이라는 기술적인 정의도 좋지만 ‘오래 참음’ ‘견고함’ ‘저항’ ‘한결같음’과 같은 말처럼 직관적이면서도 해석의 여지가 깊은 개념들을 한데 모아 놓은 말로 인내를 사용하고 싶다.
인내(resilience)는 존재의 목적을 향해 거침없이 가는 것이다. 식물에게 인내란, 메마른 바위틈에서, 물에 잠긴 평원에서, 쓰러지지 않고, 죽지 않고, 가뭄과 홍수와 산불을 견디며 살아남는 것이다. 그리고 후손을 남겨서 이 땅의 생태계를 ‘창조주가 지으신 그대로’ 지켜내는 일이다. 자연주의 정원가들이 주목하는 식물들이 보이는 삶의 방식은 인내 그 자체다. 앞서 소개한 리하르트 한젠 교수는 수백 종의 숙근초, 즉 다년생 초본류를 거의 50년간 연구하면서 서식처 개념을 정립했는데, 그가 묘사하는 식물들의 삶이 그렇다. 뿌리의 깊이에 놀라고, 곁가지를 뻗어 번식해나가는 방식이 신비하고, 추위와 목마름을 견디는 강인함에 경외감이 든다.
물이 귀한 로스앤젤레스와 라스베이거스의 드라이 가든이나 도심의 빗물 정원 이전부터, 식물의 강인함을 미학적으로 구현한 사례는 다양하다. 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부여의 궁남지는 대표적인 수생 정원이며, 암석원은 바위산이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정서적으로 호소력을 가진 정원의 유형이다.
하지만 인내의 의미를 가장 강력하게 전달하는 정원은 폐허 정원이다. 잘 알려진 곳으로는 도시의 폐수를 걸러내던 정수장 흔적을 그대로 두고 생태 공원으로 조성된 선유도공원을 꼽는다. 자연주의 정원가 김봉찬 대표가 만든 제주 ‘베케’ 정원에도 폐허 정원이 조성되었다. 철강 산업이 번성했던 미국 펜실베이니아에는 폐쇄된 제철소 건물을 그대로 보존한 도시 공원 ‘스틸 스택’(SteelStacks)이 유명하다. 세계 곳곳의 폐허 정원들이 던지는 일관된 주제는 문명은 필연적으로 폐허를 낳고, 자연은 그것을 덮는다는 점이다.
자연은 이긴다. 이런 의미에서 폐허 정원의 진수로 꼽고 싶은 곳은 체르노빌이다.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폐허가 된 옛 도시는 숲으로 덮였고, 수달, 밍크, 흰꼬리수리, 붉은여우 등 원래부터 그 지역에 서식하던 야생동물들이 번성하며 급속하게 재자연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방사능 수치를 언급하며 접근을 두려워하지만 자연은 문명이 낳은 폐허를 복원한다. 인내의 의미를 설명하는 데 이보다 더 강력한 사례가 어디 있을까? 무너진 건물 사이에 처음 싹을 틔운 그 식물의 힘은, 그리고 최악의 방사능 오염 지역을 야생동물 천국으로 만든 나무들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선유도공원. 정수조 건물을 지탱했던 기둥은 줄사철나무와 담쟁이가 감싸고 있고, 침전조에서는 약품 대신 수생식물들이 정화를 담당하고 있다. 도시의 폐수를 정화하던 인공물이 이제는 자연의 품에서 정화되고 있다.
뿌리 깊은 교회
신은 우리에게 성경과 자연 두 권의 책을 주셨다는 말은, 사도 바울의 기록3)과 토마스 브라운의 글4)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익숙해진 표현이다.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도, 자연을 탐구하는 과학도 결국은 절대자를 향한 여정이다. 그 여정 동안 방향감각을 지켜내는 힘을 나는 ‘영성’이라고 정의한다. 자연을 닮아가는 정원을 바라본다. 홍수에 힘없이 쓸려가는 부자 동네의 수변 정원과 달리 디트로이트 빈민가의 빗물 정원처럼 기후와 환경의 변화를 견뎌낸다. 제초제와 살충제를 써서 말끔하게 단장하는 대신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들풀과 곤충을 환대한다. 물과 비료를 덜 소비하지만 해마다 풍성해져서 이웃에게 식물을 나눠주지 않으면 차고 넘쳐난다. 가뭄과 홍수를 견디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다음 세대를 남긴다. 이 정원들 속에서 교회를 향한 사도들의 당부를 읽는다. 오래 참고, 견디고, 견고하고, 흔들리지 말고, 굳게 잡고…. 정원을 채운 식물의 가짓수만큼이나 다양한 표현들로 권면한다. 쓰러지지 말고, 죽지 말고, 물질 과잉의 허무와 결핍의 고통을 견디며 살아남으라고 한다. 폭우 속 급류에도 끝내 자리를 지키는 ‘인내의 정원’ 속 숙근초처럼 깊이 뿌리내리라 한다.
인내의 힘은 어디에서 올까. 교회가, 교회인 성도가 존재의 뿌리를 내릴 곳은 어디일까. 어떤 이는 신학을 통해, 어떤 이는 공동체를 통해, 어떤 이는 사회운동을 통해 그렇게 하듯, 사유와 성찰을 통해서든, 회의(懷疑)와 토론을 통해서든, 노동을 통해서든 각자의 땅을 찾을 시간이다. 내가 찾은 땅은 성경이다. 나는 인내의 힘이 성경을 해석하는 힘과 관련 있다고 믿는다. 내가 경험한바, 제도교회가 가장 소홀했던 것은 성도들에게 해석적 관점을 형성하도록 돕는 일이다.
연초에 교회에서 이단 연구가인 현대종교 탁지원 소장을 모셔서 강의를 들었다. 삶의 무게도 만만찮은 시절에 이단 교주들의 전횡에 삶이 피폐해진 사람들 모습은 고통스러웠다. 이단 피해자들은 대부분 제도교회에서 무엇인가에 목말랐던 사람들이다. 성경을 해석하는 힘을 길러줬더라면, 쉬운 해갈을 선택하는 대신 깊이 뿌리를 내리고 가뭄과 홍수를 견딜힘을 길러줬더라면…. 강의를 듣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마지막 슬라이드에 있던, 고 옥한흠 목사의 책 제목을 인용한 문구 하나가 마침표처럼 찍혔다. 강인하고 아름다운 정원들을 통해 나에게 계시(啓示)한 내용이 이것이구나, 하는 믿음이 생겼다. ‘교회는 이긴다.’
■ 주
1) 디트로이트 퓨처 시티는 홈페이지에 다양한 정원 디자인 템플릿을 제공하고 있다. 항목을 클릭하면 설계 도면과 식물 목록 등을 상세하게 정리한 자료를 볼 수 있다.
2) 디트로이트 퓨처 시티 소개와 중장기 전략 과제 등은 홈페이지(detroitfuturecity.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3) 로마서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개역개정).”
4) “There are two books from whence I collect my divinity: besides that written one of God, another of his servant, nature, that universal and public manuscript that lies expansed unto the eyes of all.” ‘Two Books’(《Religio Medici》 I.16)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