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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28-29절 하나님의 능력
야곱이 라반의 공격의 위기에서 벗어난 것은 단순한 이야깃거리로 그칠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했던 그 40명은 무장했던 것도 아닌데 바울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라반과 같이 온 사람들은 무장해서 야곱을 치러 왔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간섭으로 무사하게 되고 평화조약을 맺고, 서로 입 맞추고, 축복한 후에 헤어집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후유! 고비를 넘겼구나.’
그러나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아버지 집, 고향으로 가려니 라반의 위험보다 더 엄청난 위험이 있습니다. 그것은 에서의 위험입니다.
에서는 싸움꾼이요 사냥꾼입니다. 그가 칼을 뽑으면 야곱이 당할 수가 없습니다. 라반은 싸울 수 있는 상대이지만 에서는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가면 에서를 만나 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피해 고향으로 가지 않으면 에서를 만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말씀의 길을 택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나가면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나가야 됩니다.따라 합시다.
“죽으면 죽으리라.”‘내가 주일을 지키다가 죽으면 죽으리라.’
‘내가 십일조를 하다가 죽으면 죽으리라.’
‘내가 예수님을 믿다가 죽으면 죽으리라.’ 할렐루야!
그렇게 나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차피 한 번 죽을 목숨이니 말씀을 따라 살다 죽으면 좋을 줄 믿습니다.
야곱이 죽으면 죽으리라 결단하고 가는 길에서 엄청난 광경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눈을 열어 주시니 하늘의 천군천사들이 빽빽하게 있는 것을 본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웠겠습니까?
무수하게 많은 하늘의 별들도 다 자기의 길이 있습니다.
만일 별들이 자기의 길을 지키지않고 그 길을 벗어나면, 몇 개의 별만 그 길을 떠나도 이 우주에 큰 혼란이 오게 됩니다.
그런데 별들, 지구, 달에게만 하나님께서 명하신 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한 사람 한사람에게도 하나님께서 명하신 길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10장 23절에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잠언 16장 9절에도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지구의 길, 달의 길, 별의 길을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 길을 주셨습니다. 그길을 반듯하게 가야 됩니다.
그 길을 떠나가면, 벗어나면 잘못됩니다.
천사는 천사의 길을 가야 천사로서의 아름다움이 계속 유지됩니다. 천사가 천사의 길을 떠나면 그 순간에 마귀가 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제자로서의 길을 계속해서 갔으면 베드로, 요한, 야고보처럼 빛나는 제자, 천국의 지위가 높은 제자가 되었을 텐데, 제자의 길을 떠나니 마귀가 되고 천국에 있지 못하고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발람은 선지자인데 선지자의 길을 가지 않고 그 길을 떠나갔습니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 자기가 가야 할 바른 길을 떠나 그릇된 길을 갔습니다. 그 발람을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뽑아치려했습니다. 발람의 나귀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겁이 나서 포도밭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눈이 어두운 발람은 여호와의 사자를 보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봅니다. 느낍니다. 그래서 죄를 지을 수가 없습
니다. 하나님의 눈이 두려워서 죄를 짓지 못합니다.
요셉은 마음이 청결하니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와 같이 계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음란한 죄를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 마음이 청결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탁하면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발람은 이미 돈 때, 세상 때가 묻어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사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귀를 때렸습니다.
"왜 길로 가지 않고 밭으로 들어왔느냐?"
그때 하나님의 사자가 밭에 내려와 나귀를 몰아 붙이니 나귀가 하나님의 사자를 피하려고 몸을 담에 대었습니다. 그러니 발람의 다리가 담에 부딪쳐 상처가 났습니다. 발람은 아프니 또 나귀를 때렸습니다. 그러나 나귀는 칼을 뽑아 든 여호와의 사자가 앞으로 더 나아와 선 것을 보고 무서워서 주저앉았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를 보지 못하는 발람은 나귀를 또 때렸습니다.
"갈 길이 바쁜데 왜 이렇게 주저앉느냐?" 그러자 나귀가 말을 했습니다.
"왜 나를 세 번이나 때리느뇨?"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여러분이 이런 일을 경험하면 기절할 것입니다. 오늘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가니, 집의 강아지가 "교회에 갔다 오십니까?"한다면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나귀의 입을 여시니 나귀도 사람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나귀의 말을 듣고 발람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평생에 타던 나귀가 말을 하니 충격을 받았지만, 발람이 대답을 했습니다.
"네가 왜 네 길로 가지 않고 밭으로 들어왔느냐? 그래서 한 번 때렸고, 내 다리에 이렇게 상처를 내어서 또 때렸고, 갈 길이 바쁜데 주저앉아서 또 때렸다."
그러니 나귀가 또 말했습니다.
"나는 네 평생에 타던 나귀가 아니냐? 내게 언제 이런 행습이, 습관이 있더냐? 내가 밭으로 들어가거나 다리를 상하게 한 적이 있더냐?"
"없었지." 발람이 짐승한테 책망을 받았습니다.
즉, 사람이 자기의 길을 가지 않고 그 길을 벗어나면 짐승에게도 꾸중을 듣는 존재가 되는 것 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불쌍한 발람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제서야 발람은 바로 앞에서 칼을 뽑아들고 자기를 치려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았습니다. 발람은 두려워서 엎드렸습니다."내가 잘못했나이다. 내가 잘못했나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말했습니다.
"왜 나귀를 세 번이나 때렸느냐? 나귀가 나를 보고 피해서 네가 살았지, 나귀가 그냥 있었으면 너는 이미 죽었다. 네 패역한 길을 막으려고 온 나를 너는 보지 못했지만, 나귀는 보았다."
그는 거기서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니 또 욕심 때문에, 돈 때문에 자기의 길을 떠나 이스라엘 백성을 망하게 하는 악한 방법을 모압 왕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상 숭배 행사라고 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오지 않을 것이니 그냥 큰 축제를 한다고 하고 큰 잔치를 벌여라. 산해진미, 값진 음식을 다 쌓아놓고 모압 땅에서 최고로 아리땁고 매력 있는 여성들을 동원해서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여 음란하게 하면 이스라엘이 망한다.'
발람이 모압 왕에게 준 아이디어였습니다.
모압 왕 발락은 발람이 가르쳐 준 대로 큰 축제를 열고 이스라엘 남자들을 초청해서 산해진미를 대접했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이 와서 보니 우상 숭배 행사였습니다. 그런데도 동참하여 권하는 음식을먹고 술을 마셨습니다. 서빙하는 여자들이 너무나 매력적이었습니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미인들이었습니다. 우상 숭배의 행사에 남녀가 음란을 행하는 순서가 있는데, 결국 그때 이스라엘 남자들이 이방 여자의 매력에 빠져 같이 뒹굴면서 음란을 행했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이 음란을 행하니 하나님께서 화가 나셔서 전염병을 내리셨습니다. 이스라엘 전역에 전염병이 퍼져 2만 4천 명이 쓰러져 죽었습니다.
거짓 선지자 발람이 준 아이디어 때문에 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결국 거짓 선지자는 그 자신도 망하지만, 그를 따라가는 자도 같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바른 길을 떠나면 더럽게 됩니다.
영국의 윌리엄 글래드스톤(Willian Gladstone) 경은 재상을 네 번이나 했고, 영국 국민뿐 아니라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훌륭한 인물입니다.
그는 국사로 너무 바빠 때로는 아침인지 저녁인지도 모르고 일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나라 일로 바빠서 이렇게 동분서주하며 아침인지 저녁인지도 모르고 일할 때도 있지만 주일 예배에 빠진 적은 평생 한 번도 없다. 왜냐하면 내가 주일 예배에 참석해 풍성한 은혜를 받고, 세상의 모든 일을 감당할 능력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우리가 월, 화, 수, 목, 금, 토 하나님의 은혜로 살지만 주일에 약속된 축복의 단비를 맞아야 사는 것입니다. 주일에 예배함으로써 생명이 풍성함을 경험하게 되고, 또 세상의 모든 일에 이길 능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배하면서 은혜를 받고, 특별히 설교 시간에 힘이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마가복음 9장은 그앞에서 나오는 말씀에서 주님께서 베드로 요한과 야고보을 데리고 “ 따로 높은산” 위에 올라가셨다는 말씀을 듭습니다.
그들은 변화산에서 기이한 사건을 목겪 합니다.
그러나 그런 다음 그들은 산에 내려왔고 , 남은 제자들 주의에는 많은 군중들이 몰려 대단한 논란을 벌리고 있는 사건을 목겪 합니다.
예수님께 “ 어떤 사람이 귀신들린 아이을 데리고 와서 아이을 고쳐달라고 데리고 왔지만 ...예수님께 당신의 제자들이 그일을 하지 못합니다. .. 그리고 애를 썼지만 실패 합니다.
주님은 몇가지 질문을 하시고 , 그런 다음에 그 아이에게서 즉시 귀신이 나가도록하셨습니다. .그 아이는 나았고, 순식간에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 일후 제자들은 주님께 여쭈었 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그들은 최선을 다 했지만 실패 했습니다.
그들은 다름 많은 경우는 성공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완전히 실패 했습니다. 그때 주님의 대답은 “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우리는 많은 성도들이 실패, 기도 하면서 실패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좌절 합니다.,, 열심히 했습니다..그런데 왜? 실패 합니까?
제자들은 무진 애을 썼습니다. ,,최선을 다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실패 합니다.
무엇이 문제 입니까?
예수님의 진단은 이렇게 말씀 합니다.
“ 이런유” 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씀하는이유는 ?
제자들 에게 이미 “ 주님께서 복음을 전하며, 귀신을 쫒아내라고 보내셨다.
눅10장에서 그들은 이미 많은 성공과 임무을 수행하면서 크게 기뻐 했다.
눅10; 20]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그들은 환호 하고 흥분하며 야단이었습니다.
귀신들이 항복 했습니다. 사단이 우리 앞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큰확신과 담대함으로 성공하지 못할것이라는 의심을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아이을 대면 하면서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였지만 전혀 낫는기색이 없었다. 주님은 “ 이런유”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주님은 귀신과 귀신에게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도 일종의 계급입니다. 사도바울은 엡6장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그러면 무엇에 대한 것 입니까?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 악한 나라에는 등급이 있고,
그 모든 것의 머리는 다름아닌 사간입니다.
엡2;2]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사단은 자기의 모든 능한 힘을 가지고 존재 합니다. 그리고 사단밑에는 다양한 여러영들과 권세들과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그 힘과 능력에 있었서 많은 차이가 납니다.
제자들은 약한 등급에 속한 것은 매우 쉅게 다루어 쫓아 낼수 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경우는 더 큰힘을 가진 영이라고 합니다.
그러서 예수님은 문제의 본질을 말합니다.
너희가 열심히, 모든 수단 방법을 가지고 한들 실패 할 수밖에 없다.
문제을 올바르게 진단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물는 것입니다. [기도]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다 아십니다. 우리는 빌 바를 모르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구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다 아시는 성령님께서는 이렇게 저렇게 구하라 하시며 우리의 기도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로마서 8:26)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로마서 8:27)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왜 탄식하십니까?
우리가 기도할 시간에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기도하지 않으니 ‘저렇게 기도하지 않다가는 함정에 빠지게 될 텐데…….’하시며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또 성도가 처한 상황이 아프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아픔은 엄마의 아픔이 되듯이, 여러분과 저의 아픔은 성령님의 아픔이 됩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탄식하며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또 죄가 관영한 세상에 사는 우리가 이리저리 유혹에 넘어지는 것을 보고 험한 세상 때문에 탄식하시면서 “하나님, 세상이 악해서 아무개가 실수했으니 용서해 주세요.”하고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은 우리가 기도에 게으르거나 신앙에 낙심하거나 혹 교회를 떠나도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계속 기도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돌아오게 되어 있고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혹 교회를 떠난 사람이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성령님께서는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귀한 어머니의 기도는 자녀의 미래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세계 3대 고백록 중 하나인 <참회록>이라는 기독교 고전을 썼습니다. 그는 기독교 신학을 정립하는 데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청년 시절은 방탕해 부모의 근심거리였답니다. 어거스틴은 10대를 불량배들과 어울려 쾌락을 좇고, 도둑질도 하며 방탕하게 보냈답니다. 20대에는 정식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한 여자와 동거하여 사생아를 낳기도 하였답니다. 또 당시 기독교 이단이던 마니교에 흥취하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어머니 모니카는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였답니다. "눈물로 기도한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성인 암브로시우스의 말을 붙들고 어거스틴을 위해 매일같이 눈물로 기도했다고 합니다. 드디어 어거스틴은 32살 때 소나기와 같은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어거스틴은 이런 어머니의 믿음과 눈물의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를 위해 펼쳐주신 당신의 손은 이 깊은 흑암으로부터 나를 건져 주셨습니다. 이는 나의 어머니가 무릎 꿇고 눈물로 당신께 기도한 까닭입니다. 당신의 신실한 여종인 나의 어머니는, 보통 어머니들이 죽은 자식을 위해 우는 것보다도 살아 있는 나를 위해서 더 울었습니다......어머니께서 늘 기도하던 곳은 눈물로 바닥이 흥건히 젖곤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식을 위해 흘린 눈물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그 눈물을 멸시하지 않으셨습니다."
문제의 답을 얻기 위해서는 바른 진단은 약간의 섬세함과 총명이 필요합니다.
엡6; 11]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예을 들면 시골길에서 어떤 사람이 쓰려져습니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의식이 없는 것 입니다.
또 다른 진단은 어떤 사람의 진단은 갑자기 피곤해서 , 더 이상 걸을수 없었서, 깊은 잠을 자는것야...
또 어떤 사람은 뇌출혈로 의식을 잃은것야...
어떤 사람은 어떤약에 중독 되어서 무의식에 빠졌을 것야..
어떤 사람은 술에 중독 되어서 ,,,
만약 그 사람이 뇌출혈로 쓰려 졌다고 하면 아무리 깨우려고 해도,, 않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을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고 깨우고, 일으키고, 최선을 다 하여 해결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절망 합니다. 왜? 안되지.... 소용이 없군나,,, 절망 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것을 철처히 모르고 있고 ,
심지어 영적인 것을 부인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사단의 세력을 대 할때는 . 하나님의 말씀 “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있으라고 합니다.
엡6;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하나님께 물으세요... 이유를 알아야 고치고 , 전진할수 있는 것이 않닙니까?
예수님의 대답의 해결책은 무엇 입니까?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제자들의 실패는 기도 않해서 그런것까?
그것은 제자들의 실패는 충분한 능력을 갖지 못해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들사이의 여러 등급이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면 너희는 하나님께 더 큰 능력을 달라고 간구 하지 않았다는 것을 예수님은 말하는고것 입니다.
우리는 “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기 까지 “ 이런 류의 난제을 다루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노력하고, 활동해도 쓸데없음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기 까지 우리는 ” 문제 앞에서 해결하는 능력과 관계가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