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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어갑니다.
테무진to the칸(16) 킬링필드
intro
독자들 중에 본 <테무진to the칸> 시리즈가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분덜이 있다. 혹은 사실에 근거해 이야기를 엮어나간 팩션으로 받아들이는 분덜도 있는 모양인데, 본 시리즈는 엄밀하게 쓰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 논픽션이다.
모든 문장은 사실에 근거하고 있으며, 사료와 문헌을 참고한 것이고 여러 연구자들과 본 기자의 연구에 의한 것이다. 무엇보다 훌륭하고 근면한 학자분들의 노력에 기댄 것이다. 단 큰따옴표 안에 푼 대사엔 비교적 상상력이 동원되었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 기록된 실존인물들의 대화와 사건 및 정황에 근거하였으며, 핵심적인 내용과 얼개는 100% 사료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했다.
필자의 부족함만큼이나 오류도 있겠으나, 나름의 근거 없이 쓰인 문장은 없다. 역사책으로 간주하고 읽어도 된다. 원하신다면 대사를 제외한 어떤 문장도 인용하거나 참고하시기 바란다. 근거가 필요하면 그 근거, 본 기자가 대 준다.
1
(전편에 이어) 1202년 가을. 동쪽의 타타르를 향해 출정한다. 저번 시간에 네 마리 개 – 젤메, 제베, 수부테이, 쿠빌라이 – 과 네 마리 말 – 보르추, 무칼리, 칠라온, 보로쿨 – 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번 편에선 테무진의 아들들 얘기도 좀 해야겠다. 딸 얘기는 나중에 천천히 하자.
테무진과 보르테는 네 명의 아들을 뒀다. 먼저 첫째 ‘주치’. 당시나 지금이나 논란거리지만, 생물학적으로는 메르키트족의 혈통이 거의 분명해 보인다. 납치된 보르테가, 시어머니 헐룬의 원래 신랑이었던 ‘칠레두’의 동생 ‘칠게르’에게 겁탈당하고 수태한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주치는 평생 자신이 메르키트의 씨앗일 가능성이 높다는 콤플렉스를 안고 살았다. 메르키트는 그냥 다른 부족이 아니다. 주치는 테무진 울루스의 골칫거리인 메르키트 잔여세력은 말 그대로 ‘청소 대상’의 도적떼로 알고 자랐다. 테무진이 그 나이였을 때는 메르키트가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인간들이었지만.
아마도 나는 아버지와 삼촌들(테무진의 부하들)이 가장 혐오스러워하는 집단의 핏줄일 거라는 거. 어머니가 겁탈당해 낳은 자식이라는 거… 이 사실에 몸서리를 치지 않을 인간이 있을까.
다행히 주치는 성격이 무난한 편이었다. 콤플렉스에 억눌려 살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런데도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주치의 품성이 어느 정도는 좋았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군사적 능력은 매우 평범했다. 타타르 원정 당시 20대 초반이었다.
몽골에 있는 주치의 동상
주치와 5살 차이가 나는 둘째 ‘차가타이’는 주치와 앙숙이었다. 세상 대부분의 둘째가 그러하듯, 차가타이도 형에 대한 경쟁심을 타고났다. 이런 본능적인 경쟁의식과 적개심은 보통 성장하면서 해소되지만, 아버지가 막대한 상속을 내려줄 수 있는 권력자면 상황이 달라진다. 장남인 형의 출생이 의심스럽다면 상황은 더욱 안 좋아진다.
정통성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첫째와 형의 정통성을 의심하는 둘째의 사이가 좋을 리가 없다. 차가타이는 별로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문제가 생기면 웬만하면 참는 편인 주치와 달리, 없는 문제를 만드는 타입이었다. 다만 형과 공통점이 하나 있었으니, 눈에 띄는 능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셋째 ‘우구데이’는 테무진이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한 아들이었다. 우구데이는 셋째삼촌(카사르 삼촌의 바로 아랫 동생) ‘카쥰’과 성품이 비슷했다. 차가타이와 연년생인 그는 선량하고 다정하고 느긋한 성품을 타고났다. 생각이 많고 사려 깊은 그는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즐겼고, 그래서 술자리를 무척 좋아했다. 놀기 좋아하는 인간이면서도 깊은 통찰력의 소유자였다. 장점이 많은 만큼 단점도 확실했다. 우구데이는 엄청나게 낙천적인 만큼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게을렀다.
우구데이의 초상
우구데이 같은 타입의 사람은 민첩함이나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는 능력이 모자라는 경향이 있다. 그는 전투 중에 낙오되어 실종된 적도 있다. 이런 일이야 운이 나빴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하여간 군사적 능력은 평범 이하였다. 딱히 정치적 능력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우구데이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누구에게나 공정하다는 굉장한 장점이 있었다.
20대였던 주치, 십대 후반과 중반이었던 차가타이, 우구데이와 달리 톨루이는 타타르 원정 당시 꼬꼬마 어린애였다. 형들과 달리 군사적 재능이 탁월했던 톨루이는 훗날 송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는다. 다방면에서 종합적으로 뛰어난 능력남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지만 이 아해의 운명도 그렇게 좋지는 않다.
톨루이는 요렇게 간지나게 묘사되곤 한다.
한 명 더 옵션으로 소개해야겠다. 깃털같이 가벼운 존재감을 자랑한 테무진의 셋째동생 카쥰은 대단한 아들을 하나 두었으니, 바로 ‘알치다이’였다. 알치다이는 군사적 재능은 물론 정치적 판단력에서 성품까지 다방면의 수재였다. 조카 알치다이의 재능을 높이 산 테무진은 어릴 때부터 그에게 중책을 맡긴다.
테무진은 아들들의 재능을 객관적으로 평가했다. 다시 말해 아직 어렸던 톨루이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명의 능력을 별로 믿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테무진의 아들들은 모두 행운아다. 테무진은 아들들에게 재능보다 더 확실한 선물 – 평생을 함께했던 뛰어난 장수들을 물려주었으니까.
2
‘전투세부시행규칙’이란 말이 있다. 전투세부규칙, 줄여서
전세규는 군이라는 커다란 집단이 일사분란하고 효율적으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하는 약속의
체계이다. 사실 병사 개인에게도
테무진은 ‘경험한 것을 잊지 않는’ 장점을 가진 인물이었다. 또한 자신의 부족한 점을 확실히 인지하고 살았다. 테무진은 자무카의 군사적 재능에 내내 밀렸다. 전투현장의 카리스마와 장악력에서는 어차피 상대가 안 된다. 그렇다면 비교적 평범한 개인이 전쟁을 지휘하더라도 뛰어난 개인의 지도를 받는 적을 이기는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기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시스템이라고 하니까 거창하게 들리지만 단순하다. 약속된 행동을 하자는 거였다.
테무진은 타타르와의 전투에 앞서 두 가지 룰을 정했다. 사실 세부적인 다양한 약속체계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역사에 남아있는 것은 단 두 가지 명령뿐이다.
첫째,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최초 공격 개시선까지 돌아와 명령을 기다릴 것. 당연한 말이지만 전투 중에는 숱하게 죽거나 다친다. 그때까지 전사들은 자신의 칸이나 연합군의 총사령관 등 지배자들의 승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테무진은 ‘임전무퇴’ 정신이 없는 사람이었다. 왜 날 위해 사람들이 죽어야 하는가?
부하들의 희생을 극도로 싫어한 테무진은 후퇴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워낙 용감해서, 혹은 전리품이나 전공, 명예를 위해 앞장 서 돌진하는 사내들도 있기 마련이다. 남들은 말머리를 돌리지만 혼자서 전직을 향해 돌진해 흙먼지 속으로 사라지는 그런 남자들 말이다. 테무진은 이런 행동이 멋지기는커녕 범죄에 해당한다고 확실히 못을 박았다. 쓸데없이 전우들의 영웅심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군율을 어긴 자는 참수한다.”
괜히 목숨 걸면 살아 돌아와도 얄짤없단다. 누가 명령을 어기겠는가? 테무진의 부하들은 이 군율에 무척 감동받았음에 틀림없다. 인간은 역설적인 동물이다. 자신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지도자를 위해선, 오히려 기꺼이 목숨을 버리고 싶어진다.
사실 전략적으로도 훌륭한 군율이었다. 병사들이 공격개시선으로 되돌아오면 자동적으로 전열이 정비된다. 당시의 전투란, 머리를 굴려 최대한 유리해 보이는 모양새로 군대를 ‘세팅’해 싸움을 시작한 후, 생각대로 전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식이었다. 전투의 아수라장 속에선 사령관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영화 <벤허>에 보면 해군제독이 해적토벌전에서 진 줄 알고 자살하려고 하는데, 알고 보니 대승을 거뒀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승패의 상당부분은 현장지휘관 및 병사들의 실력과 운에 달려 있다고 봐도 된다. 그러나 각 전사들이 시시각각 약속된 행동을 하며 정해진 장소로 모여 명령을 기다린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몽골초원의 전통에 따라 지대가 높은 곳에서 전황을 바라보는 사령관은, 때맞춰 최적의 명령을 내리며 전투에 개입할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명령은 완전한 승리를 거둘 때까지 오직 전투에만 집중하자는 것이었다. 일시적으로 상대를 밀어붙이고 있으면, 적의 후방부대 및 백성들이 약탈품을 남기고 황망히 이동하게 마련이다. 전쟁의 목표 자체가 이익인 만큼 각자 약탈품을 줍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테무진은 전쟁에서 이길 때마다 공정한 분배를 하려고 노력했다. 이번에는 아예 판을 새로 깔려고 했다. 완벽한 체계에 따라 싸우려고 한 것이다. 그의 명령은,
1. 전투에 완전히 이기고 난 후
2. 약탈품을 일괄적으로 수거해서
>3. 모두에게 공정히 분배한다
는 거였다.
타타르 정벌을 기점으로, 비교적 느슨한 정책이 엄정한 ‘룰’ 즉 군율로 바뀌었다. 아예 일괄수거, 일괄분배 하겠다는 거였다. 요즘 식으로 치면 사회주의에 해당될 정도로 급진적이다. 이에 대해선 제 12편 <레저렉팅 테무진>에서 자세히 썰을 풀어 놓았으니, 내키시면 클릭해서 다시 읽어보시라.
전술적으로도 중요한 군율이었다. 공정하게 분배하겠다는 테무진의 약속을 믿는 한, 각 병사들은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오직 적을 섬멸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 역사에 기록된 두 가지 군율은 매우 단순하지만, 원래 특별히 좋은 건 좋은 만큼이나 단순한 법이다. 또한 단순한 규칙은 생각해내기 쉬운 반면 지켜지기 힘들고, 지켜지기 힘들어도 실제로 구현됐을 땐 큰 힘을 발휘한다.
테무진의 對(대)타타르전은 세 가지 면에서 획기적이다. 첫째, 세력이 약한 테무진이 강한 측을 상대로 먼저 전쟁을 선포했다. 둘째, 적을 맞아 싸운 게 아니라 적이 있는 곳으로 직접 찾아갔다. 전쟁을 주도한 것이다. 셋째, 완전한 포위 섬멸을 기획했다.
타타르족의 운명은 좋지 않았다.
3
역사는 테무진의 타타르 정벌전을, 전투가 벌어진 지명을 따 ‘달란 네무르게스 전투’라 부른다. 아쉽게도 전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역사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야기 한 토막을 전해줄 뿐이다.
- 보르추는 테무진이 비를 맞게 하지 않으려고, 밤새 테무진 옆에 서 양털 담요로 그를 가렸다.
간단한 문장이지만 이야깃거리가 여럿 있다. 일단 폭우 속에서 전투가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근대 이전에는 양측이 적당한 때와 장소를 골라서 전투를 치르곤 했다. 하필 폭우가 내리는데 총공격을 개시하진 않았을 것이다. 전투 중에 폭우가 내린 게 분명하다. 이럴 때는 양측이 군사를 잠시 물리는 게 보통이다.
더욱이 테무진은 ‘밤새’ 서 있었다. 최고지휘관이 지대가 높은 곳에서 전투상황을 내려다보는 초원의 습관을 생각해보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야말로 어느 한 쪽이 말살될 때까지 쉼없이 싸웠다는 얘기다. 싸움이 어느 정도로 치열했는지 알 수 있다. 약탈이 목적인 통상적인 전투와는 전혀 양상이 달랐다.
보르추는 젤메와 함께 테무진의 최고 브레인이었다. 테무진은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지 않았다. 보르추와 젤메 둘 중 하나는 테무진 옆에 붙어서 참모을 맡게 마련이다. 이날은 보르추가 그 역할을 한 모양이다.
보르추는 사적으로는 테무진과 친구였다. 밤새 담요를 펼쳐들고 있다니 친구 치고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충성스럽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얼굴에 비를 맞으면 시야가 흐려진다. 아무리 보르추의 의견이 중요해도, 테무진 본인이 전투상황을 면밀히 파악해야 했다.
테무진과 직접 만난 역사가의 기록에 따르면, 갖은 고생을 이겨내 온 그의 몸은 외적으로는 탄탄하고 강인했다고 한다. 하지만 안은 좀 상해있었다. 테무진은 그다지 ‘건강’하지는 못했다. 부잣집 아들로 잘먹고 큰 보르추와는 달리 어릴 때 워낙 굶은데다 성장기에 타이치우드족에 붙잡혀 장기간 학대를 당한 적도 있다. 제베에게 당한 부상도 건강에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당시 테무진의 컨디션이 평소와 달리 안 좋았을 수도 있다.
보르추는 테무진이 비를 맞고 잘못될까 걱정했다고 한다. 테무진은 훗날, 이때 보르추가 밤새 ‘단 한 번’ 발을 움직였다고 기억한다. 뭐 보르추의 다리에도 피가 통해야 했을 테니… 테무진이라는 인간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느껴진다. 감동받은 테무진은 이 일을 두고두고 기억한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보르추가 이렇게까지 테무진을 챙긴 이유는 전투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전투도 아니고, 쉬지 않고 악랄하게 싸우는 ‘말살전’이다. 만에 하나 최고지휘관이 쓰러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더욱이 보르추는 테무진이 제베의 화살을 맞아 지휘력을 상실했던 아찔한 순간을 경험해 봤다.
전투는 테무진 울루스의 승리로 끝났다. 공평한 분배와 약속된 군율의 효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너무도 엄청난 승리라서, 테무진 본인도 어떤 식으로 승리의 결과를 처리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4
테무진은 일단 당장 처리할 수 있는 것부터 손댔다. 군율을 어긴 자들이 있었다. 몽골 왕족 알탄과 코차르, 그리고 테무진의 막내숙부 다리타이였다. 모두가 함께 싸우고 함께 나누자고 했는데, 먼저 약탈품을 차지하려고 전투에서 이탈한 것이다. 무슨 깡으로 그랬을까. 단지 탐욕에 눈이 먼 어리석은 자들이어서는 아니었다.
초원에는 성문법이 없었지만, 법의 역할을 하던 오랜 관습의 체계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1/10세’다. 전투에 참여한 전사들이 싸움에서 얻은 이윤의 1/10을 최고지휘관인 칸에게 바치는 룰이다. 그래서 칸들은 중국 국경을 한 번 털기라도 하면 상당한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중국 조정의 입장에서는 시골 변방 동네지만, 그래도 도시 하나를 탈탈 털고 초원으로 튀었다고 해 보자. 도시의 부는 초원의 그것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풍부했다. 이 경우 칸은 도시 전체의 1/10에 해당하는 부를 단박에 거머쥘 수 있다.
또 하나는 찬물도 위아래가 있고 똥물에도 파도가 이는 논리다. 계급 순대로 먼저 약탈할 권리가 있었다. 다리타이와 왕족들은 혈통상 테무진 오르도의 중심에 있었다. 테무진은 능력순대로 오르도를 구성했지만, 사람한테는 습관이란 게 있다. 기득권층은 상황변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는 말이다.
이 귀하신 분들은 그러잖아도 테무진의 평등정책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참이었을 터. 또한 이 정도는 테무진이 봐줄 거라고 믿은 게 분명하다. 하지만 테무진은 폭발했다.
“이것들이 미쳤구나…”
분배하기 전까진, 약탈품은 울루스의 ‘공공재’다. 테무진은 감히 공익을 훼손한 귀족들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네 마리 개 중 하나인 쿠빌라이를 보내 새치기한 약탈품을 모두 몰수하게 했다. 이 일은 매우 상징적이다.
쿠빌라이는 테무진과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었다. 즉 다른 부족에선 귀족생활을 했을지 몰라도, 몽골 귀족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흰 뼈’는커녕 ‘검은 뼈’도 아니었다. 그냥 외부인이다. 핏줄로만 따지면 평민 이하다. 테무진은 그런 쿠빌라이를 통해 자신의 친족들을 처벌한 것이다.
테무진은 다리타이에게는 더 큰 벌을 내렸다.
“앞으로 다리타이 숙부는 쿠릴타이에 참석할 수 없다.”
사회적 지위를 박탈해버린 거다. 여기서 잠시 쿠릴타이 얘기를 해 보자. 당시 테무진 울루스의 쿠릴타이-지도자 회의-엔 어떤 사람들이 참석했을까. 어떤 사람들이 게르 안에 들어가 있었을까?
일단 테무진 본인과 네 마리 말, 네 마리 준마 여덟 명은 반드시 포함된다. 테무진이 평생 조언을 구해온 어머니 헐룬과 아내 보르테도 참석했을 가능성이 높다. 괴력을 자랑하는 동생 ‘야수’ 카사르와 판단력이 정확한 만큼이나 냉혹하다는 평을 들은 벨구테이, 주로 후방 보급부대를 담당했던 막내동생 테무게도 당연히 낀다. 그 외 중요한 장수들이 추가되고… 그리고 철새종결자 다리타이도 쿠릴타이 멤버였다. 테무진은 한푼어치도 믿음직스럽지 않은 막내숙부를 꽤 챙겼던 거다.
확실하진 않지만, 다리타이의 경우를 보면 테무진의 아들들도 쿠릴타이 멤버였을 거라고 봐야 한다. 나이가 있는 주치와 차가타이 정도는 생산적인 의견을 내진 못해도, 게르 안에 앉아는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타타르를 정리할 차례였다. 그런데 이게 대체…
5
테무진은 치열한 전투 끝에 타타르족 전체를 포위 섬멸했고, 생존자 거의 전부를 포로로 잡았다. 하나의 국가 혹은 독립민족의 단위가 통째로 테무진의 수중에 떨어진 것이다.
테무진은 야전에서 긴급 쿠릴타이를 열었다. 주제는 간단했다.
- 저 많은 포로들을 다 어떡하지?
그냥 지금까지 하던 대로 테무진 울루스의 백성으로 편입시키면 안 되는 걸까? 그러면 전력도 늘어나고, 울루스도 커질 텐데… 그런데 그게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타타르와 몽골은 서로 감정이 너무 안 좋았다. 게다가 타타르는 복식이나 언어, 생김새 즉 인종까지도 다른 초원 부족들과는 조금 달랐다. 다시 말하지만 전통의 독립민족이다. 역사가 십수 년밖에 안 되고 규모도 작은 테무진 울루스가 내부에서 용해시킨다는 건 불가능했다.
타타르 민족 전체를 노예로 삼는 것도 현실가능성이 없었다. 타타르의 인구는 테무진 울루스의 그것보다 몇 배는 많았다. 통제가 안 된다. 반란이라도 일어나면 한 번에 끝장이 날 수 있다. 그렇다면 통제가 가능한 만큼, 일부만 억류하고 나머지는 일단 방면하는 방법도 있긴 하다. 그러면 타타르 포로들은 비싼 몸값을 내고 자유를 살 수도 있다. 이 경우 포로가 되지 않은 동포들이 몸값을 모으려 고생을 좀 해야 했을 거고.
… 하지만 잡은 포로를 놔 주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우리는 쿠릴타이에 들어가 보지 않아서, 게르 안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회의의 기본 전제가 어땠는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 승리를 완전히 굳혀야 한다. 타타르와 다시 싸울 일이 생겨선 안 된다. 즉 타타르라는 집단은 이번에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또한 약탈품만이 목적이 되어서도 안 된다. 테무진 울루스 자체의 규모를 비약적으로 키울 수 있는 기회다. 역시 지금까지처럼 새로운 백성을 받아들여서 인구를 늘려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하냐는 거다.
결국 쿠릴타이는 결정을 내린다. 누가 처음 낸 의견인지는 모른다. 다만 테무진이 이 섬뜩한 결론을 승인했다는 건 확실하다. 테무진 오르도는 타타르의 모든 성인 남성을 학살하기로 결정했다!
그 다음 결정도 기괴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노예로 나누어 가지기로 했다.” 우리는 이 노예라는 말을 잘 알아들어야 한다. 생존자들을 노예계급으로 묶어두겠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차피 테무진은 몇 년 후 초원을 통일하고 나서 노예제를 ‘법’으로 폐지한다. 이 말은 그 전까지는 노예제를 인정했다는 게 아니다. 성문법으로 확실히 못을 박지 않았을 뿐 탈계급, 평등주의는 그의 기본 정책이었다.
따라서 여기서 노예란 ‘전리품에 해당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전리품이 된 여자는 약탈자에게 '배당'되어 그의 아내가 된다. 아내는 노예가 될 수 없다. 결혼하는 과정은 폭력적이고 불공평할지라도 일단 부부가 되면 다른 문화권에 비해 남녀가 놀랄 정도로 평등해지는 게 몽골초원의 특징이었다.
즉 성인남성을 모두 학살해 여자와 아이만 남긴 후, 여자들을 모두 테무진 울루스의 남자들에게 시집보내겠다는 거다. 자연히 여자들에게 딸린 아이들은 새신랑들이 부양해야 한다. 역사는 성인 남성을 제외한 전인구라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노인(노파)들의 생존까지 책임진 것이다. 물론 시부모 모시듯 하진 않았겠지만.
이제부터 타타르 출신 여성들이 낳는 아이들은 몽골인이 될 것이다. 이버지를 잃은 타타르 아이들도 몽골인으로 성장할 것이다. 현재 가장노릇을 하는 세대가 당분간 경제적 부담을 져야겠지만, 울루스 전체의 미래엔 엄청난 가능성이 생긴다.
타타르족 대학살은 두 가지 면에서 무척 중요하다.
첫째, 백성을 바라보는 테무진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근대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책임감’을 가진 군주였다. 한 번 백성이 되면 끝까지 책임진다. 백성 모두가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자신의 나라 안에서는 노예도 없고 계급적 차별도 없다. 모두가 함께 누려야 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검소한 생활을 한다.
그런데 거꾸로 말하면 백성이 아닌 이들에게는 공적인 의무가 전혀 없다. 테무진은 아직 자신의 울루스에 편입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인간적인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테무진은 철저히 사회적인 인간, 계약의 인간이었다. 테무진은 백성과 백성이 아닌 사람을 물과 기름처럼 구분했다.
둘째, 타타르 대학살은 테무진과 몽골제국이 세계를 정복할 때 적들을 학살하는 방식을 규정하는 선례가 된다. 서양 학자들은 테무진의 이중성, 즉 아무렇지도 않게 대학살을 자행하는 잔혹함과 피를 다 뿌리고 난 후에 보여주는 대단한 관용에 당혹해하곤 한다. 놀랍게도 이 둘은 충돌하지 않는다.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가 서로의 당연한 이면이다.
테무진의 사고방식은 냉혹할 정도로 합리적이다 – 우리 백성이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로다. 아직 적이라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 존중해야 할 인격이 아니기 때문에 살인은 차라리 공장식 노동에 가깝다. 기계적이고 신속하며 무차별적으로 죽여서 목표량을 채우는 식이다. 테무진의 군대는 가학적 쾌감을 위해 포로를 고문하거나, 이왕이면 더 잔혹하게 죽이려고 머리를 굴리지 않았다. 그저 빠르고 간단하게 죽일 뿐이다.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효율이었다.
반면 살아남은 적의 백성은 자연스럽게 테무진의 백성이 된다. 이들은 뜬금없이, 당시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평등과 복지를 경험한다. 가족과 동포들이 대량학살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생존자들이 테무진과 몽골제국에 신기할 정도로 충성을 바친 이유가 여기에 있다(피정복민으로 구성된 군대가 반란이나 불복종을 일으킨 적이 한 번도 없다. 이 얘기는 나중에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봉건사회에서 백성은 기득권 지배층의 관리 대상이다. ‘시민’이 아니란 얘기다. 이런 사람들이 갑자기 현대적 의미의 ‘사람대접’을 받는 거다. 새로운 시스템에 충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당연한 얘기겠지만, 타타르 남자들 중에 죽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6
“수레의 굴대(두 바퀴의 중심을 있는 바튀축) 빗장보다 키가 큰 남자는 모두 죽인다.”
중세 몽골초원에서 수레의 굴대 빗장의 길이는 남자가 성인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기준 중 하나였다. 물론 세상에는 키가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남들보다 빨리 성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위에서 설명했듯 학살은 신속할수록 좋다. 타타르족 남자가 한 두 명도 아니고, 언제 일일이 나이조사를 하고 있겠는가?
몽골의 수레
그래서 수레의 굴대 빗장을 기준으로… 그래, 우리 테무진 오르도의 입장을 이해해보려고 해 봤다. 이해 간다 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시원시원하고 깔끔한 학살은 역시나 끔찍하다. 쿠릴타이 멤버들도 도덕적인 부담감을 느꼈던 게 분명하다. 이 대목에서 <몽골비사>에 이런 핑계가 적혀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옛날부터 타타르 사람들은 할아버지들, 아버지들을 시해한 자들… 할아버지들, 아버지들의 원수를 갚고 복수를 하자.”
한편 테무진 군대에 포위된 채 적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던 타타르 전사들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뭔가 낌새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그렇잖은가? 전투가 끝나면 통상적으로 벌어지던 일들이 있는데 말이다. 정신없이 약탈하느라 이긴 놈들끼리 싸우고 있어야 하는데(그러느라 상식적으로는 우리 편 일부는 도망갈 기회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온 백성을 한데 억류해 놓고 게르에서 뭔가 비밀스런 얘기를 한다. 그 누가 긴장하지 않겠는가?
쿠릴타이가 끝나고 테무진 울루스의 수뇌부가 게르에서 나오자, 한 타타르 남자가 쿠릴타이 멤버 중 한 명에게 다가갔다. 타타르 남자의 이름은 ‘예케 체렌’. 예케는 ‘크다’는 뜻이다. 즉 ‘큰 체렌’이라는 뜻인데, 당연히 체렌이 본명이다. 예케라는 칭호가 붙은 걸 보면 단순한 귀족이 아니라 군주였음을 알 수 있다.
예케 체렌이 붙잡은 쿠릴타이 멤버는 다름 아닌 벨구테이. 예케 체렌은 벨구테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이보시오… 당신들, 대체 우리를 어떻게 하려는 거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으니 모조리 포로가 된 우리 입장에서는 불안해 견딜 수가 없소.”
벨구테이가 별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너희 모두를 수레 굴대에 대어보고, 그보다 키가 큰 놈들은 모두 죽여 버리기로 했다.”
벨구테이도 예수게이의 아들이다. 타타르를 증오하는 마음은 테무진과 다를 수 없다. 그는 원수집단의 성인남자 모두의 사형선고를 심드렁하게 내뱉었으리라. 너희는 비참하게 죽어 사라질 운명이라는 이야기를… 조롱과 냉소를 섞어서 말이다. 하지만 벨구테이, 큰 실수 했다.
2MB쥐가 궁지에 몰리면 국민고양이를 문다. 어차피 다 죽을 운명이라면 뭐하러 곱게
목을 내놓고 처형을 기다리는가? 이렇게 되면 쥐는 죽든 말든 싸우게 된다. 예케 체렌은 “자신의 타타르”에 명령을 내렸다.
“방어 진지를 구축해라! 목숨 걸고 싸우자.”
그냥 타타르가 아니다. ‘자신의 타타르’다. 이 표현에서 알 수 있는 건 예케 체렌이 타타르 전체의 칸은 아니었다는 사실. 타타르는 부족연합체. 그는 타타르족을 구성하던 몇 개 부족 중 한 부족의 칸이었던 거다.
포로들인 처지에 방어진지를 구축하는 게 이상해 보이지만, 현대식 포로수용소을 상상하면 안 된다. 유목민들은 공간 – 그것도 개활지 – 을 넓게 쓴다. 적은 인원이 머릿수가 훨씬 많은 상대를 포위하고 있었다. 포위망 내부에서는, 마음만 독하게 먹으면 진지를 구축하는 일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가시거리도 거리지만, 사람보다 수십 배나 많은 가축들때문에라도 무슨 일을 벌이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포로들의 저항 소식을 들은 테무진은 당연히 진압을 명령했다.
“공격해!”
하지만 독이 오를 대로 오른 타타르 전사들은 용감하게 싸웠다. 테무진의 병사들은 방어진지를 넘지 못하고 수없이 죽어나갔다. 적은 수의 전사들이 많은 포로들을 가까스로 억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병사를 잃는 계속 잃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용기를 얻은 다른 타타르 씨족들이 저항에 가담할 수도 있었다.
테무진 군대는 작전을 바꿔 봉쇄작전에 들어갔다. 방어진지의 안과 밖을 차단해, 진지 내부를 말려 죽이려는 심산이었다. 사람인 이상 식량과 물자가 없으면 싸우는 건 고사하고 버티는 것도 불가능하다. 헌데 사람(그것도 죽음을 각오한 사람들)이 견딜 수 없게 되려면 며칠로는 부족하다. 어쩌면 테무진은 한 달이 넘도록 예케 체렌과 대치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봉쇄가 계속되자 예케 체렌과 그의 부하들은 더 이상 고통을 참지 못하고 일단 항복하고 말았다.
이젠 서둘러야 했다. 테무진 군대는 곧바로 살육을 시작했다. 그러나 타타르 전사들은 – 아마도 예케 체렌이 다스리던 씨족 전사들이 분명하다 – 마지막 저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마다 옷소매 속에 칼을 숨겨놓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에 기록된 다음의 문장이 그들의 비장함을 알려준다.
“죽더라도 몽골 놈들을 베개 삼아 죽자.”
타타르 전사들은 마침내 테무진의 병사들이 몽골식 환도를 치켜들고 자신들을 베려고 할 때, 소매에서 냅다 칼을 꺼내 적들을 찔러 죽였다. 짐승의 숨통을 끊고, 가죽을 벗기고 뼈와 살을 분리하는 사냥용 칼이거나 비슷한 용도의 도축용 칼, 혹은 고기음식을 잘라먹을 때 쓰는 식사용 칼이었으리라.
몽골의 사냥용 칼
… 이런 칼들은 동물의 몸을 다루는 데 특화되어 있다. 또 유목민들은 동물의 신체를 잘 이해한다. 그리고 사람도 동물이다.
죽기를 기다리는 줄 알았던 자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갑자기 공격하자 오히려 전투용 칼을 쥔 테무진의 병사들이 속수무책이었다. 예상치 못한 저항에 테무진의 병사들이 숱하게 쓰러졌다.
이렇게 되면 역으로 테무진 측도 지독해진다. 분초라도 빨리 놈들을 다 죽여 없애야 한다. 테무진의 전사들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기어이 타타르족의 성인 남자 전원을 학살했다. 생존의 희망도 없이 오직 복수심만으로 저항하는 희생자들과, 상대를 말살하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칼질을 해대는 가해자들. 숨이 끊어지는 남자들과 그 모습을 보는 그들의 아내들이 내는 비명소리… 수백 명도 아니고, 수십만 명이 한데 얽혀 연출하는 광경이다. 문자 그대로 지옥이었다.
7
테무진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벨구테이, 정말 큰 잘못 했다. 이놈자식이 기밀을 누설하는 바람에 얼마나 많은 백성이 죽었는가? 그래서 생긴 과부, 고아들한텐 뭐라고 할 건가? 용서할 수가 없는 일이다. 테무진이 구축한 사회의 ‘공정성’을 위해서라도, 그는 벨구테이를 처벌해야 했다. 자신의 동생이라고 봐주는 건 원칙에 어긋난다. 테무진은 원칙에 거의 목숨을 건 인물이었다.
그런데 테무진은 벨구테이에게 빚이 있었다. 테무진은 어린 시절 벨구테이의 친형 벡테르를 죽였다. 또 보르테와 결혼하고 나서 메르키트족이 습격했을 때, 테무진의 친모인 헐룬은 가족과 함께 달아났지만 벨구테이의 어머니 소치겔은 버려졌다. 물론 말이 부족하기도 했었고, 테무진의 아내 보르테도 소치겔과 함께 납치되었다. 헐룬은 집안을 이끄는 가장이기도 했었고.
그러나 어쨌든 헐룬은 안전했고 보르테는 구조되었다. 반면 소치겔의 운명은 좋지 않았다. 벨구테이는 친형과 생모를 모두 잃었다. 그런데도 테무진에게 충성했다. 게다가 유능하고 용감했다. 그런 벨구테이를 테무진이 냉정하게 대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봐 줄 수도 없다. 이미 전리품에 먼저 손을 댄 알탄과 코차르, 다리타이를 처벌한 테무진이다. 이거 대체 어떡해야 하는 건가.
결국 테무진은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린다. 사료에 기록된 그의 육성을 그대로 적는다(<몽골비사> 유원수 역본).
“우리가 지친간에(쿠릴타이에서) 의논한 것을 벨구테이가 누설하는 바람에 우리 병력이 몹시 희생되었다. 이 뒤로는 벨구테이를 회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의논이 끝날 때까지 밖에서 모두를 다스리게 하라! 다툼질, 도둑질, 사기질한 자들을 처단케 하라! 의논이 끝나고 다른 참석자들이 의식의 술을 마신 뒤에, 벨구테이와 다리타이는 거기 들어오도록 하라!”
역시나 테무진은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자기 기분대로 결정해버리는 인간이 아니라는 거다. 자신의 울루스에나, 벨구테이 개인에게나 모두 공정해야 한다. 일단 죄를 진 대가로 쿠릴타이 멤버라는 상징적인 권위를 박탈해 버렸다. 쿠릴타이 멤버들이 “의식의 술”, 즉 회의가 끝나고 자축하며 마시는 술을 다 마시고 난 후에야 게르에 들어갈 수 있다.
어찌 보면 벨구테이가 불쌍하게도 왕따가 된 것 같다. 쿠릴타이의 내용을 한 번 발설했으니 앞으로도 입이 무겁다고 장담하지 못할 터, 밖에서 찌그러져 있으라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쿠릴타이 기간에는 수뇌부 전체가 ‘회의실’인 게르에 처박혀 있다. 쿠릴타이는 몇 시간 하고 끝내는 회의가 아니다. 며칠은 기본이고 길게는 보름씩도 한다. 당연히 바깥상황을 통제할 일시적 제 1권력자가 있어야 한다. 이걸 벨구테이에게 맡겼다. “밖에서 모두를 다스리게” 한 거다. 범죄자들을 독자적인 판단으로 처벌할 사법권까지 있다. 웬만한 쿠릴타이 멤버보다 더 큰 실질적 권한을 준 셈이다.
테무진은 벨구테이의 공식적 권위에 상처를 입혀 백성들을 납득시켰다. 다른 한 편, 벨구테이의 실질적 권한을 보장함으로써 그가 입은 상처를 보상해주었다. 얼마나 생각을 많이 했는지 뻔히 보인다. 한 마디로 그는 고민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사실 우리 삶도 좀 고민스럽긴 하다. 그런데 고민하는 건 나쁜 게 아니다. 자신을 완전히 믿지 못하는 인간만이 고민을 한다. 고민을 한다는 건 자기 자신의 재능과 능력보다 더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이다. 우리말에 ‘생각 없는’이라는 표현이 있다. 뇌세포의 개체수가 아니라, 뇌세포의 활동량이 지성을 결정한단 얘기다. 생각은 하는 편이 좋다. 괴로운 생각일지라도.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테무진은 벨구테이를 쿠릴타이에서 ‘자른’ 후에도 그의 판단을 중요하게 받아들였다. 생각해보면 쿠릴타이에 들어가기 전에 테무진이 벨구테이의 의견을 들으면 된다. 벨구테이의 생각이 테무진을 통해 쿠릴타이에 영향을 미칠 테니까. 쿠릴타이가 끝나면 벨구테이가 그 내용을 모두 전해 듣는 건 물론이다. 동의하지 않으면 쿠릴타이의 결론에 반론을 제시하면 된다. 어차피 테무진이 다 알아듣는다. 실제로 벨구테이가 게르 바깥에서 내놓는 전략적 판단은 몽골제국 확장에 큰 영향을 끼친다.
8
아, 빼놓지 말고 설명해야 할 게 있다. 훗날 테무진이 세계정복을 시작하게 되면서부터, 중앙아시아와 서양에서 몽골은 몽골이라는 정식 국명보다 타타르라는 잘못된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된다.
그 이유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혈통으로 인식하는 유목민들의 습관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유럽에 가서 <넌 누구냐,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나 여러분이나 한국이라는 사실을 꼭 이야기할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국민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중세 유목민이라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내 이름은 '길동'인데, 한반도에 뿌리를 두고 있는 남양 '홍'씨 출신이오."
서쪽으로 뻗어나간 몽골 병사들은 자신의 출신 종족을 기준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내 조상은 위구르인이오, 내 핏줄의 뿌리는 투르크(터키)족이오 등등… 당연히 달란 네무르게스 전투 이후 테무진 울루스에 합류한타타르인들과 그들의 후손들은 자신을 타타르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타타르 핏줄의 비율이 워낙 높았다. 저마다 자신을 타타르라고 소개하니, 서쪽 사람들은 자신들을 침략한 정체불명의 세력 자체를 타타르라고 이해하게 된다. 타타르 혈통의 몽골국민이 얼마나 많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서양에서는 이 습관이 굳어져 아직도 몽골을 타타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발생한 오해 때문에 몽골사와 중앙아시아사를 접하는 사람들은 한 번 이상은 반드시 헷갈리게 된다.
테무진의 명령에 따라 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착실히 부양하고 먹여살린 몽골인들도 대단하지만, 타타르 출신자들이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테무진과 몽골제국에 충성했다는 사실도 놀랍다. 타타르족은 머릿수가 많은 만큼 유능한 인재를 많이 배출했다.
심지어 아버지가 달란 네무르게스에서 학살당해 고아가 된 세대부터 충성스런 장군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테무진 울루스 사회가 고아들을 성심성의껏 키우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한 번 백성이 되면 끝까지 책임지는 거다.
그럼 타타르족은 몽골에 완전히 용해되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타타르로 오해된 몽골이 아니라 진짜 타타르인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 과정은 이렇다. 훗날 몽골제국이 확장되면서, 테무진의 손자 대에 이르러 몽골인 일부가 서쪽으로 이주하게 된다. 이중에 아직도 타타르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던 몽골국민들이 있었다. 물론 <나는 타타르인이다>라는 관념만 남아있었을 수도 있다.
하여간 이들은 타타르 동포들이 몽골사회에 완전히 용해되기 전에 용광로를 빠져나온 셈이다. 전 세계에 천만 명이나 있다. 타타르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대신, 아이러니하게도 서양 백인(코카서스 인종)의 피를 수혈받게 된다. 아시아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그룹도 있지만 대체로 혼혈민족이다. 아래는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에 퍼져 있는 타타르족의 사진들이다. 내맘대로 여인들 사진만 넣었다. 어쩔래.
인기모델 이리나 셰이크. 타타르 혈통이다.
이제 우리는 '타타르를 흡수한 몽골'을 타타르로 오해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현재 존재하는 진짜 타타르족을 몽골인과 혼동하지도 말도록 하자.
outro
타타르 전사들을 도륙하고 남은 여자들을 분배할 때였다. 아마 병사들이 테무진 앞에 끌고 왔을 것이다. 고급스런 의복과 장신구를 걸친, 너무나 아름다운 묘령의 여인을… 테무진을 제외한 그 누구도, 이 정도 미인이 감히 자신의 전리품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리라.
타타르 여인의 이름은 ‘예수겐’. 그녀는 하필이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케 체렌의 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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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엄지척요..오늘은 읽는데 거의 반나절정도 걸렸네요..바쁘다보니..너무 재밌습니다.감사합니다
엄청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 곧 올려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