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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노을의 간월암 고요한 도량 붉은 노을에 길을 묻다 썰물땐 육지로… 밀물땐 섬으로… 서정적 수채화
가는 여름이 실감난다. 여름의 끝을 보기 위해 서해로 향한다. 충남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 간월암. 바위 위에 지어진 자그마한 암자 주위로 감도는 붉은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간월암은 동양 최대의 간척사업 지역인 천수만변에 자리잡은 높이 5m, 폭 15m 규모의 바위언덕이다. 썰물때는 육지가 되지만 밀물때는 섬으로 변한다. 조수간만의 차에 의해 하루에 2번씩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셈이다.
간월도 앞 선착장에 마련된 횟집촌을 지나 오후 2시쯤 간월암에 들었다. 손님을 반기는 듯 활짝 열려있는 철문을 통해 암자에 드니 아담한 도량(道場)이 나그네를 반긴다. 간월암의 구조는 간단하다. 대웅전과 산신전, 기도각 등 3~4개의 건물이 고작이다. 기도각 너머 가로로 뻗은 안면도가 편안하게 자리잡고 있고, 뒤로는 충남 홍성군의 남당항이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간간이 갈매기가 관광객의 방문에 화답하듯 홱 지나가는 것을 제외하면 절의 모습은 고요함에 잠긴 정물화를 연상케 한다. 대웅전 뒤로 둥실둥실 떠있는 뭉게구름은 그림을 완성하는 소도구이다. 문득 지난날 어디선가 보았던 모습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처음 가본 낯선 곳에서 느끼는 익숙함을 뜻하는 데자뷰(deja vu) 현상을 이 곳에서 경험하다니.
인도네시아어로 타나는 땅, 롯은 바다를 의미한다. 썰물이면 땅에 속하고, 밀물이면 바다에 속하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간월암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 육지 끝에 면한 자그만 암자라는 사실도 그렇거니와, 암자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일몰이 연출되고, 그 광경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것도 같았다. 심지어 암자의 생김새까지도 흡사했다. 타나롯에 사원을 지은 이는 16세기 인도네시아의 힌두교의 이름난 고승이었다고 한다. 간월암을 창건한 스님 역시 뛰어난 고승중 하나인 무학대사였다. 조선개국의 일등공신인 무학대사가 이 곳에 뜨는 달(月)을 보고(看)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한다. 한국판 타나롯사원을 나온 시간은 오후 4시 쯤. 속을 드러냈던 갯벌에 물이 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대미를 장식할 일몰까지는 3시간 가량의 시간이 남았다. 조금만 서두른다면 인근 안면도나 남당항을 둘러본 뒤 돌아와도 남을 시간이다. 남당항으로 향했다. 천수만 A지구 간척지를 지나 홍성군 남당항에 발을 들였다. 멀리 안면도가 길다랗게 감싸고 있어 파도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다. 항구로서 최적의 입지조건을 갖춘 곳이다. 해변가 횟집촌에는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준비하는 손길이 분주하다. 서산으로 넘어가는 햇살이 고깃배를 비추는 모습이 실루엣으로 비춰진다. 늦여름 오후 한때의 목가적인 풍광이다. 밀물의 간월암은 이제 육지에서 섬으로 변해있었다.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한다. 아쉽지만 간월도 너머로 해지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각도상으로 볼 때, 갯벌 한가운데 서야 가능하지만 이미 물이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간월도의 진정한 해넘이는 해가 진 다음부터이다. 여름내 달궜던 태양빛이 서산으로 넘어가면서도 그 빛을 잃지 않아 섬 전체를 발갛게 달궈놓는다. 마지막 남은 한 움큼의 불빛마저도 모두 쏟아부으려는 듯, 하늘을 물들인 붉은 노을은 불과 5분을 넘기지 못하고 사그라져갔다. 여름도 그렇게 바다너머로 사라졌다. /간월암(서산)=글ㆍ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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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온통 바다를 빨갛게 물들인 일몰만봤는데.. 이렇게 은은 한 빛의 일몰을보니 간월도가보고싶네요. 난 석모도 일몰이 젤 에쁜줄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