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동체의 필요성과 사목적 의미, 소공동체는 깨어있게 하는 숨
초창기 소공동체 도입 전 외국인 사제들은 공소에 지도자를 세웠다. 지도자는 교리를 잘 알고 신앙생활이 모범적인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공소 공동체야말로 우리가 생각하는 최고의 소공동체였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한인 사제가 외국인 사제보다 많아지고 신자 수가 증가하면서 공소신자들에게 본당에 와서 미사에 참례하도록 권했다. 그 결과 공소 공동체는 와해됐다. 조직적 활동을 위해 구역ㆍ반 모임을 갖게 됐으며 기도의 성격이 강했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교구 사목국이 주축이 돼 소공동체 사목을 했으며 교육이 중심이었다. 수원교구에서는 교구 시노두스를 통해 소공동체를 시작했다.
수원교구는 전 교구민에게 앞으로 교회가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제일 중요한가 조사를 한 결과 소공동체가 제일 중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시노두스를 통해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 지침을 정했고 2002년부터 지금까지 소공동체 활성화를 교구 사목 지침으로 정해 사목하고 있다.
시노두스 결과 속지적 원칙에 속인적 소공동체도 가능하게 했으며 남녀노소가 함께하기를 권했다. 규모는 10가구에서 최고 15가구가 1개 반을 이뤄야 한다고 지침을 내렸다. 모임 횟수는 매주 모임으로 정했으며 소공동체 봉사자 교육방법도 1단계는 본당, 2단계는 대리구, 3단계는 교구 차원에서 하기로 정했다. 이를 위해 교구는 매달 소책자를 발행하고 있다.
교구 또한 소공동체화 작업을 했다. 본당을 분할했고 대리구제를 도입했다.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가 가져온 열매는 첫째 성경을 읽고 가까이하며 공부하는 풍조가 생긴 것이다. 둘째 많은 봉사자가 지속적이고 다양한 교육을 통해 교회 봉사자로 육성된 것이다. 셋째 머리로만 믿던 신앙이 움직이는 신앙으로 변화돼 삶과 신앙이 하나가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느님 백성인 우리가 바로 교회라는 교회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되었고 한국 천주교회의 특징인 '평신도 교회'를 이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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