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신문에 기고를 위한 글로서 내용은 다소 변경될수도 있습니다.>
유적답사를 계획하거나 또는 여행을 준비할때면
누구에게나 마음이 흥분되는것은 어쩔수 없다.
이는 지금으로 부터 3~4백만년전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출현하여
유럽-아시아 쪽으로 이동 했을때의 그 피 끓는 유전자가 현대인에
남아있다고 보아지며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금번 앙코로왓트 유적답사는 연천의 유적지에서
유적해설을 담당하고 있는 해설사님(경기도연천군문화관광해설사)에게는 배움의 장이요,
해설기법을 공부할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실습현장이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무엇일까.
해설사는 해설한 수고만큼 받고 지자제에서는 관람객이
유적지를 돌아 본 만큼 그에 상응하는 값을 받으면 프로이고
유적지의 관람이 공짜라면 대민 봉사수준 그 자체다.
돈을 받고 경기를 치루는 사람과 돈을 내면서 경기장을 빌리는 사람과의 차이는 이런것이다.
캄보디아에서 우리에게 2박3일 유적지를 안내한 임춘식님은
7년차의 가이드로서 생업이 여행가이드라 그러한지 해박한 지식과 역사의 전개과정이 남달리 돋보였다.
앙코르왓트는 수야바르만 2세가 12세기에 건축한 사원으로
천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세계 최대의 석조사원이다.
수많은 인력을 동원해서 30년에 걸처 만들어 졌으며
현대에 와서도 최첨단 기술를 동원한다 해도 30년 안에 건물을 지을수 없다고 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건축물이다“는
찬사를 받았던 선조들의 찬란한 맥을 후손이 잇지 못하고 유적에 기대어 먹고살아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캄보디아 씨엔립 공황에서 출국직전의 일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사람이 사는 곳에서는 부패의 종균이 있기 마련이다.
공항직원이 모두투어 여행사 장민주 과장에게 접근해
1인당 25달러에 수속편의를 봐 주겠다고 하여 500달러를 주었는데
뇌물먹은 사람이 그런일 없었다고 잡아떼는 바람에 약간의 소동이 있었다.
캄보디아 공무원의 평균월급이 50달러이며 이곳에서 5백달러면 아주 큰돈에 속하지만
그 나라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공황에서의 부패에는 우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캄보디아 부패는 이미 썩을대로 썩었으며 평등을 지향하고
빈부의 격차를 없앤다는 북한의 공산당에서는 캄보디아 부패의 도를 훨씬 넘어섰다고 언론은 전한다.
캄보디아는 밀림이 우거진 청정국가다.
이 말은 먹기 살기 힘들고 생계수단이 없어 자연에 연명해 간다는 말로 요약될수 있다.
어느정도 살기좋고 생활이 윤택할 때나 청정도시 청정지자제를 추구하는 것이지
형제가 배고파 죽어가는 상황에서의 청정은 그야말로 비극이다.
앙코르왓트는 인류 문화유적에 있어서 믿기지 않는 만큼 위대한 문화유산이지만
이 유적에 기대어 자연에만 의존해 살아가는 캄보디아인의 생활은 팍팍하다.
연천군의 면적은 696km2로서 장남. 백학. 왕징. 중면. 신서지역이
군사분계선에 놓여있고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으로 남아있어 타 시,군에 비해 상대적인 청정을 유지한다.
군사시설보호법 , 수도권정비법의 개법이 원인이기는 하지만
산업시설이 전무한 상황에서의 청정지역은 인구가 줄어들고
자식들이 먹고 살아가야할 토양분을 빈약하게 만들어 놓았다.
연천에서의 산업시설 확충은 자연환경이 충분히 받아 들일수 있으며 또한 과하지도 않다.
국가사적(선사유적지. 숭의전, 경순왕릉, 호로고루성, 당포성, 은대리성.은대리 물거미 천연기념물)의
분포가 많기 때문에 수도권의 관광객 유치가 용이하다
금번 4.25일 전곡선사박물관이 개관되면 많은 관광객과 학생들이
현장학습의 일환으로 다녀 갈것이라 기대된다.
전곡리는 1978년 동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전곡리에서
주먹도끼가 발견되어 석기제작 기술과 고인류의 지적 사고능력이
유럽과 아프리카와 동급수준으로 인정받게 된 역사적인 곳이다.
연천군 공직자 560여명이 5.11 ~10월 말까지 연천바로알기 현장체험에 나선다고 한다.
옛것을 배워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은
연천에서 몸담아 사는 우리들의 소명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캄보디아 답사기 _6.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