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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여태 뭐했니?”한참 기도하는데 매우 불쾌한 음성이 치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뉴저지에서 시작된 가정교회를 함께 섬기던 몇 가정이 모두 선교지로 떠난 뒤 두 명의 청년과 함께 가정집 지하에서 예배를 드리며 씨름할 당시 나는 BT라는 목회자 그룹과 동역하고 있었다. 기도하며 하나님이 주신 지역을 놓고 연합하여 영적 부흥을 위한 집회와 선교적 도전과 동원을 위해 섬기고 그 후에는 현지 교회 연합에 사역의 바통을 넘겨주는 사역을 감당한다. 이 사역을 함께 섬기는 고성준 목사님은 건강하고 선교적인 수원 하나교회를 섬기고 있고, 김무열 선교사는 아가파오 미니스트리를 시작하여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고, 조지훈 목사님이 섬기는 기쁨이있는교회는 수많은 청년들이 모이는 차세대 교회이며, 마지막으로 박주현 목사님은 BT 컨퍼런스를 감당하며 여러 민족의 목회자들이 함께 모이는 기도 모임을 주도하는 호주 히즈스토리교회를 섬기고 있다. 말 그대로 다들 건강하고 규모 있는 사역을 이루고 있는데 나는 그나마 하던 CG선교회 사역마저 넘기고 뉴저지로 왔지만 새로운 선교 사역은 시작도 하지 못한 채 청년 두 명과 겁나게 씨름하고 있을 때, 그해에도 호주에서 BT 집회와 선교 모임이 열렸다. 하나님의 은혜로 동역자들과 함께 집회를 섬기고 마지막 날 메시지를 선포한 뒤 나는 그 자리에 모인 분들을 선교 헌신에 초청하였다. 천여 명의 청년들 가운데 500여 명이 선교에 헌신하며 집회는 그야말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로 충만한 시간이었다. 영적인 결판은 사단하고 내는 것이 아니다. 사실 앞서 말한 뛰어난 동역자들이 집회 현장을 이미 완전히 뒤집어놓았기 때문에 마지막에 누가 도전하고 초청하더라도 그 결과는 놀라웠으리라 생각한다. 어쨌든 집회를 성공적으로 잘 섬기고 나서 미국으로 돌아온 다음날 시차 때문인지 일찍 깬 나는 지하로 내려가 집회를 무사히 마친 것과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다. 한참 기도하는데 나도 모르게 뭔가 허무함이 밀려오면서 분명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 매우 불쾌한 음성이 치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야, 그러면 뭐해? 넌 뭐가 있어? 지금 너를 봐.” “그렇게 사역한다고 난리 피웠지만 뭐가 남았냐?” 사단이었다. 성령충만한 나라면 당연히 “사단아 물러가라” 했을 것 같은데 내 안에서 성령님이 역사하시기도 전에 나의 심령이 이 사단의 고소에 이렇게 화답하고 있었다. “그러게….”
어두운 지하 방에 잠시 정적이 흐르며 나는 멍하니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이윽고 정신이 들며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나는 염장을 지르는 사단을 잠깐 옆에 제쳐두고 하나님께 곧장 이 문제를 들고 나아갔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인 결판은 사단하고 내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역사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과 내야 한다. “아버지! 지금 사단이 제 염장을 지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뭐했냐고 묻는데 아버지, 솔직히 할 말이 없습니다. 아버지, 저는 왜 이래야 합니까? 제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거 맞습니까?” 아버지 앞에 너무 속상하고 답답해서 말도 잘 나오지 않는데도 “아버지, 아버지” 하고 이름만 부르다 푸념이 나왔다. “내가 게을렀습니까? 내가 불순종했나요? 내가 언제 내 것을 챙기기라도 했습니까? 그저 순종한다고,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결국 남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의 부르심은 다르다. 너는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너의 사람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부르심은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획을 좇아 사는 것을 말한다. 우리 아버지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서 그 필요대로 쓰임 받는다. 구체적인 부르심이 각각 다른 것이다. 나 자신을 아름답고 깨끗하게 준비하면 하나님은 나를 향한 그분의 완전하신 뜻대로 나를 통하여 그분 자신의 일을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우리는 그 말씀에, 다만 오늘 하루 순종하며 한 발짝씩 앞으로 내딛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삶을 보라. 75세에 부르심을 받아 고향을 떠난 뒤 사고 쳐서 아들 하나 낳고, 약속의 말씀대로 둘째를 낳고 그 후에도 몇 명의 자녀를 더 낳고 나서 생을 마감한다. 믿음의 조상치고 큰 민족을 일으킨 적도 없고 놀라운 이적과 능력을 행했다는 기록도 없다. 애써 멋있게 꾸미려고 해도 꾸밀 밑천조차 없다. 그러나 그는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된다. 왜냐하면 그 부르심을 좇아 순종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놀라운 능력을 행하거나 큰 사역을 일으키는 것과 별 상관이 없었다. 바로 부르심이다. 우리는 그 부르심을 좇아 그분의 계획대로 순종하면 된다. 나머지 모든 평가와 결산은 그분이 하신다. 어느 날 홀로 주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확신을 주셨다. 부족하지만 나의 섬김을 통하여 열방 곳곳에서 도전받고 헌신한 사람들, 그들은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섬기게 될 귀한 일꾼이며 동역자들이라는 사실이다. 내 것이 어디 있는가? 내 사역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아버지의 사람들이고 아버지의 일로서 아버지께로 나아와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로마서 11:36 놀랍게도 사도 바울은 평생 안디옥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하여 열방에 복음을 증거하고 제자들을 세웠지만 자기 것이라는 사역이나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를 통해 세워진 제자들이 교회를 세우고 사역을 일으켰지만 그는 결국 열방의 몇몇 제자 외에 자기 교회라는 것도, 자기 사역이라는 것도, 그의 제자라고 따르는 무리도 없이 로마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자.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디모데후서 4:6-8 “나는 나의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 이것이 바울의 고백이다. 주님이 내게 허락하신 삶에서 내가 감당해야 할 나의 믿음의 싸움을 감당하며 내게 허락하신 나의 달려갈 부르심의 그 길을 나는 오늘도 마치고자 뛰어간다. 그러면 그분이 그 마지막 길에 서서 나를 반겨주실 것이다. 모든 영광과 존귀와 찬송을 주님께!! † 말씀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 고린도전서 15장 57절 † 기도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나를 통해 일하시는 주님을 끝까지 바라보며 순종의 길을 가게 하시옵소서. † 적용과 결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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