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맨지오니(Chuck Mangione)

1940년 11월29일 뉴욕의 로체스터에서 태어난 찰스 프랭크 맨지오니(Charles Frank Mangione)가 정규 음악 교육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48년부터였다. 그의 아버지는 지독한 재즈 광이었고, 덕분에 척과 갭 맨지오니 (Gap Mangione) 형제는 풍부한 음악적 환경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유명한 재즈 연주인들과 친분이 있던 아버지는 만찬에 다양한 뮤지션들을 초대하곤 했는데, 그 중에는 천부적인 트럼펫 주자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도 포함되어 있었다. 척의 운명은 바로 이 위대한 재즈맨 디지 길레스피에 의해 바뀌게 된다. 어릴 적부터 척의 재능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던 디지 길레스피가 어느 날 멋진 트럼펫을 선물했던 것이다. 체계적인 피아노 레슨을 통한 탄탄한 음악적 기초를 다진 척에게 트럼펫의 정열적이고 자유분방한 음색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이후 재즈 연주인으로 꿈을 키워가던 척은 결국 1958년 명문 이스트맨 음악학교에 진학하여 플루겔 혼을 전공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후, 척과 갭 맨지오니 형제는 재즈 브라더스(Jazz Brothers)를 결성하여 대학가에서 착실한 지지기반을 닦아 나가기 시작한다.
재즈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며 이스트맨을 수석으로 졸업한 척이 뉴욕의 클럽가를 무대로 연주활동을 시작한 것은 1965년경의 일이었다. 재즈 대가들인 우디 허먼(Woody Herman), 메이너드 퍼거슨(Maynard Ferguson) 등과의 협연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곧 아트 블래키(Art Blakey)에게 발탁되어 재즈 매신저스(Jazz Messengers)의 일원이 되는 엄청난 행운을 얻는다.
그 결과물로서 척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작품이 60년대 중반의 비-밥 걸작으로 일컬어지는[Chunk Mangione Played With Art Blakey & The Jazz Messengers]앨범인 것이다. 아울러 그것은 촉망받는 연주인으로서 메이저급 레코드사들에게 척의 무한한 가능성을 알린 첫 작품이기도 했다.그러나 60년대의 나머지 기간은 젊은 천재 척 맨지오니에게 보다 다양한 연단의 과정을 요구했다. 재즈 연주인이기 이전에 지휘자로서, 작곡가로서, 그리고 대학 강단에 서는 음악 강사로서 몇 년의 기간을 더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망의 70년대!! 1970년의 여름은 그렇게 다가왔다.
라이브 실황[Friends & Love]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레코딩 아티스트로 데뷔한 척 맨지오니는 수년간 쌓아온 풍부한 경험을 통해 데뷔 앨범 한 장으로 그래미에 노미네이트되는 엄청난 파란을 일으킨다. 비록 수상의 영예는 누리지 못했지만, 첫 작품의 성공은 곧 로체스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담은 두 번째 라이브 앨범[Together]으로 이어지며 나날이 그 진가를 더해 나갔다.
그러한 흐름이 완만한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1971년, 첫 번째 스튜디오 앨범[The Chuck Mangione Quartet]이 그래미 'Best Jazz Performance'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척은 [Alive](72), [Land Of Make Believe](73) 앨범의 연이은 성공으로 탄탄한 입지를 굳혀 나갔으며, 그래미에 노미네이트된 두 번째 작품 [Chasw The Clouds Away]가 발표된 75년에는 이미 가장 유력한 차세대 재즈 연주인으로 부각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가했다. 76년에 공개된 역작
[Bellavia]가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그래미 'Best Instrumental Composition' 부문을 수상했던 것이다. 이 때부터가 그의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수상 경력은 5-6년 후인 80년대 초까지 계속 이어지게 된다.척 맨지오니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명반 [Feels So Good]이 발표된 시기도 바로 이 당시였던 것이다. 이 주목할 만한 앨범은 재즈 연주곡으로서 팝 싱글 차트 2위에까지 오르는 파격적인 타이틀 트랙을 낳았으며, 1년만에 더블 플레티넘을 넘어서는 경이로운 판매고를 올리며 재즈계 최고의 히트 앨범으로 떠올랐다 또한 78년에 선보인 사운드트랙[Children Of Sanchez]는 그에게 두 번째 그래미를 안겨준 역사적인 명반이었으며, 이러한 흐름은 열 두 번째 그래미 노미네이트 앨범인 헐리웃 보울 실황으로 이어졌다. 70년대가 저물어갈 무렵 그는 이미 최고의 재즈 연주인이자 히트메이커로 부각되어 있었던 것이다.수많은 평론가들이 척의 80년대에 대해 우려와 반목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지만, 1979년 말에 공개된 앨범 [Fun And Games]는 척에게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앨범이었다. 이 앨범에서 싱글 커트된 (Give It All You Got)이 동계 올림픽 주제가로 채택되며 에미 어워드 수상에 이어 다시 한번 그래미 후보에 오르는 엄청난 성과를 올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에 공개된 이태리 지진 난민 구호 콘서트 앨범 [Tarantella]! 그 역사적인 더블 앨범은 당대의 거물급 재즈 연주인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척의 음악사적인 비중과 영향력을 증명해 낸 작품이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이 조금의 변색됨도 없이 이후에 공개된 80년대 앨범들 [Love Notes](82), [Journey To A Rainbow](83), [Disguise](84), [Save Tonight For Me](86), [The Eyes Of The Veiled Temptress](88), [Live At The Village Gate](89) 로 이어졌다는 점은 척의 뛰어난 재능과 연주력을 고려해 볼 때,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비록 90년대에 이르러서는 팬들의 기호와 다소 거리가 멀어지기는 했지만, 그 각각의 앨범이 모두 아름다운 연주와 풍부한 감수성으로 빚어졌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첫댓글 척 맨지온의 프르겔 연주모습입니다.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이나 혹은 재즈에 매료된 사람들은 척 맨지온의 음악을 잊을 수 없지요.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떠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영상이여서 회원님과 함께 나누고자 올려 보았습니다. 참고로 저도 예전에 교악대에서 클라리넷을 불었는데 소리내는 것이 어찌나 힘들었던지 소리내다 끝났습니다. 프르겔은 음역이 트럼펫과 호른 사이에 있는 악기로 트럼펫 보다는 테크닉에서 조금 나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피스 악기에서는 트럼펫이 제일 어렵고 리드(목관) 악기에서는 클라리넷이 힘든 악기에 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