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소득이 자녀의 영어 성적에 반영돼, 교육을 통한 부의 이전이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간 교육계에서 제기된 부의 불평등이 교육 불평등을 통해 양극화를 확산시킨다는 지적을 입증하는 자료인 셈이다.
4일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가계 월 소득이 100만 원 미만 가구의 학생 중 영어 사교육을 받는 학생은 20%에 불과했으나, 500만 원 이상인 가구 학생은 70%가 영어 사교육을 받는다고 밝혔다.
특히 사교육 투자비는 10배에 달했다. 100만 원 미만 가구 학생의 월평균 영어 사교육비는 1만6000원에 그쳤으나, 700만 원 이상 가구 학생은 16만3000원에 달했다.
사교육비 투자액수는 지역별로도 확연히 갈렸다. 지역 평균 소득이 높은 서울 강남권 학생은 초등학교입학 전 절반가량이 영어 사교육을 시작했고, 늦어도 초등학교 1~2학년이면 대부분 영어 사교육을 받았다.
반면 비강남권에서는 13.6%만 초등학교 입학 전 영어 사교육을 받았다. 영어 유치원생 비율도 강남권은 24.6%에 달했으나 비강남권은 1.1%에 그쳤다. 영어 유치원은 비싼 수강료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강남권 학생은 영어캠프, 해외어학연수, 영어전문학원 참여율도 비강남권 학생의 두 배에 달했다. 하루 평균 영어공부에 쏟는 시간이 강남권 학생의 29.0%는 2~3시간, 22.6%는 3~4시간에 달한 반면, 비강남권 학생의 37.5%는 하루 1시간 미만의 영어학습 시간을 가졌다.
이와 같은 사교육 투자액의 차이는 결국 자녀 성적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소득 1만 원당수능 백분위 상승폭이 수학과 국어는 각각 0.019, 0.022에 그쳤으나 영어는 0.029로 높았다. 즉, 가계 소득이 1만 원 올라갈수록 영어점수도 0.029점 오른 것이다.
또 도시와 읍면ㆍ도서벽지 학생 간 영어성적 차이도 표준편차로 계산할 경우 40% 내외에 달해, 20~30%대인 수학, 국어에 비해 컸다. 사교육이 활성화된 도시에서 영어 사교육을 받는 아이와 받지 않는 아이의 영어 성적 격차가 크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영어 능력 격차는 결국 직업 선택에도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연구위원은 "어학연수 경험이 있으면 입사 서류심사나 면접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높은 토익 점수는 직장의 규모나 연봉에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며 영어 능력이 좋을수록 좋은 직장을 가질 확률도 높다고 지적했다.
결국 경제적 능력이 뛰어난 부모를 만난 자녀는 더 좋은 영어 성적을 얻을 확률이 높고, 이에 따라 더 좋은 직장을 얻을 확률도 높아지는 셈이다. 영어 교육이 '부의 이전' 경로가 된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공기업 등 공공기관은 채용 시 높은 영어시험 점수에 대한 일률적 요구를 지양하고 보다 정교하고 효율적인 선발방식을 마련하는 모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며 "대학은 영어 때문에 학생들이 다른 중요한 역량을 기르는 데 지장을 받지 않도록 영어강의와 교양영어 수업을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