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의 친구들은 욥이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이러한 극심한 고통과 고난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욥은 이 세상엔 악인이 벌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잘 사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며 반박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내용들은 이러한 것을 이야기하는 욥의 말입니다. 물론 욥의 친구들도 악인이 잠깐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으나, 결국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말하였습니다. 욥은 이러한 친구들의 말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욥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과 고통이 반드시 자기가 악하게 살았기 때문은 아니라고 항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서 오히려 의인이 악인에 의해 핍박을 받고, 고통을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非一非再)한 현실임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1절은 하나님의 심판이 언제 임할지에 대해 모르고 있음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吐露)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언제 임하는지 알면 그 때를 기다리며 참고 기다릴 텐데, 알 수 없으니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힘들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면서 2절부터 4절까지 이 세상에서 악한 자들이 행하는 악들을 고발합니다. 남의 땅을 빼앗고, 남의 양 떼를 빼앗으며, 고아와 과부의 나귀와 소를 저당 잡고, 가난한 자들을 몰아내어 그들이 도망가서 숨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현실을 고발합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핍박하는 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5절부터 8절은 이렇게 고통 당하는 약자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약자들은 마치 광야의 들나귀처럼 부지런히 일하면서 빈 들처럼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곳에서 먹을 것이라도 찾으려고 애쓰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습니다(5절). 남의 꼴을 베거나 악인이 남겨 둔 포도를 딴다는 말은(6절), 그 당시 추수할 때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일부를 남겨놓게 하던 풍습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자기의 밭이 없기에 남의 밭에서 떨어진 곡식과 포도를 가져와서 간신히 허기를 채우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사회적 불합리는 계속되어 아이를 볼모 잡기도 하고, 옷을 저당 잡으며(9절) 가난한 자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세상이라고 한탄합니다. 이들은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악인들을 위해 곡식 이삭을 나르고(10절), 악인들의 집에서 기름을 짜거나 포도즙을 짜는 틀을 밟으면서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여전히 빈궁(貧窮)합니다(11절),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가며 아파하지만, 마치 하나님은 이러한 그들의 참상(慘狀)을 보지 않으시는 것처럼 여겨지는 현실을 한탄합니다(12절).
악한 자들이 판을 치는 모습도 묘사하고 있습니다(13절~17절). 이들은 죄악을 저지르면서 어둠 속에 살아가고 있고, 어둠을 낮보다 더 평안하게 여기며 살아가면서 온갖 죄악을 저지르고 살아갑니다. 세상은 진리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반드시 잘되고, 악한 자들이 망하게 되는 순리(順理)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욥의 시대에나 지금의 시대나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욥은 이러한 악한 자들이 영원히 그 부유함과 평안을 누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18절~24절). 그들은 물이 흘러가듯이 사라져갈 것이고(18절), 마치 눈 녹은 물이 가뭄과 더위로 곧 말라버리듯이 스올(죽음)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19절). 결국 온갖 악을 행하는 이러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끌어내셔서 벌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22절). 마치 악인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것처럼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길(행위)를 샅샅이 살피시고 있다고 말합니다(23절). 그렇기에 악인들은 잠깐 동안 높아졌다가 결국 이삭처럼 잘려 버릴 것이라고 말합니다(24절).
그러면서 욥은 이러한 자신의 말을 거짓되다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반문합니다(25절). 욥의 이야기는 욥의 친구들이 하는 말들과 비슷한 맥락을 지녔지만, 강조점은 달랐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하는 이야기들도 틀리지 않은 말들입니다. 그러나 욥에게 적용하기에는 마땅치 않을 뿐입니다. 욥은 욥의 친구들이 말한 것처럼 이 세상의 악인들이 잘되고, 의롭게 살아가려고 하는 자들이 오히려 고통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보라고 하면서 자신이 고통과 고난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은 욥이 행한 악인 일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반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악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벌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욥 자신은 자신의 악행 때문에 이런 고난과 역경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님을 토로(吐露)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억울하게 고난받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정직하고 의롭게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핍박을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만 가지고 단순하게 판단하는 오류를 멈추어야 합니다. 사업이 망했다고, 심각한 질병에 걸렸다고, 참혹한 사고나 재해를 당했다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그렇게 된 것이라고 쉽게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폭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서 그러한 고난과 고통을 당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고난과 고통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억울하게 고통받고, 고난을 겪는 이웃들을 오히려 보살피고 돌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이웃을 돌아보는 태도로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안창국 목사)
#매일성경
#안창국목사의말씀묵상
#욥기24장1절부터25절
#욥
#악한자들이득세하는세상
#가난한자들과약자들이억압받는세상
#불합리하고부조리한세상
#악한자가이세상에서잘될수도있다
#그러나하나님은반드시악한자를심판하신다
#모든고난과고통이악행으로인한결과가아닐수도있다
#고난과역경속에있는이웃들을돌아보는태도
https://cafe.naver.com/lighthousegoyang/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