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근득지
수조실종
- 근본으로 돌아가면 뜻을 얻고
비추임을 따르면 근본을 잃는다
송
좋은 것의 과보로 나쁜 것이 나타나고
즐거움의 과보로 괴로움이 나타나며
옳은 것의 과보로 그른 것이 나타나니
고락 시비 분별 말고 중도를 행하라.
강설
귀근의 뜻은 본래 자성을 뜻한다. 분별이 끊어진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이것과 저것의 상대가 사라진 자리다. 좋고 나쁨이 없고
생사와 생멸이 없으므로, 곧 부처를 뜻한다.
그러므로 득지란 바로 내가 꿈꾸면 성불을 얻는다는 것인데,
언어도단, 교외별전의 자리로서 이 자리에 가보지 않고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득지를 하여 견성을 한 조사들의 경험에 따르면
눈곱만큼의 고통이나 괴로움이 없는 자유자재한 마음 상태라고 한다.
수조란 눈, 귀, 코, 혀, 몸, 생각의 육근으로 감지하는 것, 즉,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현상에 끄달려지는 것이다. 고락 생사의 윤회를 거듭하며 고통과 괴로움의 과보를
따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위에서 말한 귀근득지를 잃게 된다는 말이다.
중생, 특히 사람들은 자업자득하며 윤회를 거듭하며 누구나 시절 인연의 업에 따라 살아간다.
따지고 보면 더 행복하거나, 덜 불행한 사람은 없다.
나름대로 고락의 업에 따라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부자와 거지로 살지라도 시절 인연이 되어 부자가 될 때도 있고,
거지가 될 때도 있으나, 다만 그때가 서로 다르게 나타날 뿐이다.
물론 전생과 금생, 내생의 삼세에 걸쳐서 업의 모양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나타나는 모습을 보고 더 잘살고 더 못산다고 예단하는 것은
크나큰 착각이요, 오류이다.
차이가 있다면, 분별심이 없어서 욕심이 아예 없는 사람은
중도의 마음으로써 고락의 업이 없으므로 좋고 나쁨도 없으니,
고통과 괴로움도 없다. 그러나 조금의 분별로써 조금의 욕심을
가지면 조금의 과보로 인해 조금의 인과로써
조금의 고통과 괴로움이 생기게 된다. 반대로 많은 분별심으로 인해
많은 욕심이 생기면 많은 고락의 과보가 생기므로,
많은 고통과 괴로움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있는 고락의 업을 멸하지 않고, 눈으로 귀로 몸으로
생각을 일어나는 감정에 끄달리게 되면,
고락의 감정이 끝없이 일어나고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좋고 나쁜, 옳고 그른
분별심으로 인해 결국 고통과 괴로움을 피할 수가 없다.
즐거운 일을 겪은 과보로 인해 괴로운 일이 생기게 되고,
좋은 일로 인해 나쁜 일이 생기게 되며, 옳은 일로 말미암아 그른 일이
생기게 되는 것이 인과의 과보요, 마음의 업이라 했다.
따라서 수조실종이라 했으니, 진실로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니, 좋은 일에도 걸리지 말고, 나쁜 일에도
마음을 걸리지 않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그 어떤 일에도 매사에
고락 시비하는 마음을 항상 경계햐야 한다.
절대고 좋고 나쁜, 옳고 그른 분별심을 갖지 말고, 무조건 있는 그대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함으로써, 항상 중도의 마음으로 방하착해야 한다.
제아무리 날뛰어도 뛰어봐야 벼룩이요, 부처님 손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무조건 그저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으로
분별심을 놓고 또 놓아 방하착해야 한다.
귀근득지
수조실종
- 근본으로 돌아가면 뜻을 얻고
비추임을 따르면 근본을 잃는다
신심명 강독, 진우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