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창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 대통령은 지난 13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가장 중요한 서민 복지는 일자리 창출”이라며 “이를 최우선 민생대책으로 추진해 4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연재순서
1.일자리 '올인'의 허와 실 2. 사회적 일자리 창출, 제대로 가고 있나 3. '좋은 일자리' 어떻게 가능한가
여기에 각 정당과 시민단체들도 '사회협약' '희망선언' 등의 제안을 통해 '일자리 창출'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러한 논의에 노동계는 소외돼 있고 대상화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일자리를 만들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이에 3회에 걸쳐 최근의 '일자리' 담론을 둘러싼 허실을 짚어보고 노동계 안팎의 비판적 대안을 살펴보기로 한다. <편집자 주>
실업률이 ‘최악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해 청년(15~29세) 실업률이 8%를 육박하는 등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기록을 남겼다. 또한 전체 실업률도 3.5%로 지난 2001년(3.8%) 이후 3년 만에 최악의 수준이다. 이렇듯 일자리는 우리 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우선 수위의 난제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어려운 숙제가 있다. 성장이라는 ‘무소불위’의 존재에 눌려 항상 찬밥 신세였던 복지부문이다. 우리나라 복지비 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2001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6.4%에 그친다. 이는 스웨덴(31.47%)이나 미국(14.96%) 등 선진국의 1/5~1/2수준. 사회안전망(사회복지)이 허술한데다 일자리까지 없는 취약계층은 계속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일자리와 복지, 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사회적 일자리’다. 사회적 일자리는 사회복지 관련 고용을 대폭 늘리면 일자리도 만들고 그 서비스를 다시 취약계층에 제공해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사회복지 서비스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다는 ‘사회적 일자리’는 대단히 매력적인 정책이다.
참여정부가 야심차게 제기한 ‘사회적 일자리’ 계획은 지금 어디쯤 와 있으며 제대로 안착시키기 위한 과제는 무엇일까.
사회적 일자리란 무엇인가
정부는 25일 사회문화관계 장관회의를 통해 올 상반기 중 자활사업을 포함한 사회적 일자리 마련에 예산을 집중 투입(1,513억), 저소득층 등을 위해 4만 여명의 신규 취업을 추진키로 했다. 또 오는 2008년까지 사회적 일자리 8만여 개를 늘릴 계획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사회적 일자리’라는 개념은 여전히 생소하다.
한국노동연구원 황덕순 연구위원은 ‘사회적 일자리 창출방안 연구’라는 보고서에서 사회적 일자리는 주로 유럽국가에서 사용되는 개념으로 넓게 해석해 “사회적으로 유용하지만 수익성 때문에 시장에 공급되지 못하는 일자리”로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 수익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협동조합 등 다양한 형태의 ‘제3섹터’(비영리 민간부문) 사회적 기업에 의해 창출되는 일자리도 포함되며 취약계층의 단기적인 일자리도 해당된다.
장애아 교육보조원, 방문도우미사업, 숲 가꾸기 사업, 사회적 노인일자리 지원 등 기획예산처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올해 사회적 일자리 지원계획을 보면 보다 분명하다.<표 참조> 물론 정부가 말하는 사회적 일자리가 모두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보건복지부의 방문도우미사업 등은 지난 2001년 민간위탁 사업으로 시행되던 공공근로를 자활근로사업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참여정부 들어서면서 자활사업 등이 사회적 일자리라는 개념으로 넓게 사용되고 있다.
2005년도 사회적 일자리 창출사업 예산현황
(단위: 억원, 명)
구 분
소관 부처
‘04계획
‘05계획안
금액
인원
금액
인원
합 계
835
27,491
1,513
41,235
장애아 교육보조원
교육부
-
-
장애아 순회교육지원
교육부
-
-
9
36
대학 장애학생 도우미지원
교육부
-
-
3
320
방과후교실보조인력
교육부
8
32
-
-
지역아동센터 공부방
복지부
12
500
49
500
보육시설 사회적 일자리
여성부
125
1,849
216
4,280
방문도우미사업(기금)
복지부
176
4,500
359
7,000
대도시방문보건사업(기금)
복지부
10
75
-
숲가꾸기사업
산림청
-
-
235
2,000
생태우수지역 일자리창출
환경부
29
398
64
480
사회적일자리 제공(노동부)
노동부
187
3,000
258
4,000
사회적 노인일자리 지원
복지부
28
5,000
42
5,950
연극국악영화 시간제강사풀
문광부
65
1,304
71
1,504
아동복지시설문화예술교육 (기금)
문광부
50
550
35
550
생활체육지도자(기금)
문광부
86
1,263
86
1,117
여성 사회적일자리창출 지원
여성부
20
4,000
28
4,000
사회복지시설 증설에 따른 일자리 창출
복지부
-
2,490
-
5,033
보육시설 증설에 따른 일자리 창출
여성부
-
530
-
2,465
사회적 일자리에는 노동부, 복지부, 교육부 등 7개 부처가 뛰어들고 있다. 노동부 김인곤 전 청년고령자고용과장(현 국제협력담당관)은 “7개 부처 가운데 노동부는 ‘인큐베이팅’(보호 육성, 토대마련) 역할을 하고 있다”며 “독립된 사업은 해당 부처가 주도적으로 맡아 사회적 기업 등 사회적 일자리를 한층 발전시키는 몫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즉 노동부는 민간단체에 다양한 사회적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것이 독립된 사업으로 자리를 잡으면 해당 부처에 넘겨 체계화시킨다는 의미다. 따라서 향후 사회적 일자리의 ‘길잡이’ 노릇을 하게 될 노동부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노동부 방향 전환에 NGO 반발
노동부는 지난 1년6개월 동안 시범 실시한 사회적일자리 창출 사업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287억원에 예산을 투여, 3,910개의 일자리를 만들 예정이다. 이에 대해 실제 사회적 일자리 사업을 이끌고 나갈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부산, 창원, 광주에 이어 서울지역 시민사회단체들도 다음달 1일 공식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핵심적인 이유는 노동부의 사회적 일자리 사업이 ‘수익형’을 확대(공익형 1년 원칙, 수익형 3년까지 연장 가능)하고 사업 당 최소 10명 이상 신청 등 민간단체들의 참여 조건을 강화했다는 점이다. 또한 퇴직금 지급을 참여단체가 부담하는 문제도 여전히 쟁점이다.
노동부의 고민은 이렇다. 지난해 사회적 일자리 사업을 분석한 결과, 888개 단체에 3,281명이 배정(단체 당 3.7명)됐으며 정부 재정 지원이 100% 투여되는 공익형 사업이 90% 정도를 차지했다는 것.
노동부 김인곤 과장은 “단체 당 3.7명이 배정되는 등 그 동안 사회적 일자리 사업이 비영리단체들의 (상근자 임금 등)인력난 해소에 활용된 측면이 있다”며 “유럽의 사회적 기업 등과 같이 수익형 사업을 발전시키는 것을 정책 목표로 설정, 지속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제도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즉 일정 정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정부 재정 지원을 조금씩 줄여나가고 지속적인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모델을 노동부는 구상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도 노동부의 고민을 일부 이해하지만 현실과 맞지 않고 ‘규모의 경제’에 집착한다고 꼬집는다. 부산실업극복지원센터 최영 사무국장은 “국내 비영리단체들 가운데 4대보험 가입, 퇴직금 부담이 가능하면서 한 사업에 10명 이상 참여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를 갖춘 곳이 많지 않다”며 “규모의 논리보다 사업의 내용이 중요한 판단 근거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국장은 또 “노동부는 유럽의 사회적 기업만 주목하는데 외국 사례를 보면 비영리민간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늘리는 것도 규모는 작지만 사회적 일자리 창출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가장 큰 문제는 그 동안 사회적 일자리에 열심히 참여했던 시민단체와 시각차가 있는데도 대화를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지침을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부와 시민사회단체간 갈등에 대해 실업극복국민재단 이은애 팀장은 “기본적으로 관점이 다르다”고 분석했다. 노동부는 ‘고용창출’에 무게중심을 두고 시민단체들은 ‘사회복지’에 비중을 두기 때문에 발생하는 간극이라는 것이다.
저임금에 인프라 부족 등 문제점으로
노동부가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을 무릅쓰고 ‘수익형’, 사회적 기업 등으로 방향을 설정했지만 갈 길은 멀다. 노동부가 본질적인 문제 해결 없이 사업 방향만 ‘확’ 바꾸는 등 너무 앞서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우선 저임금 문제가 있다. 사회적 일자리 사업 평가에서 가장 많이 도마 위에 오르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동안 사회적 일자리 사업 참여자는 대부분 60만원 정도를 받아왔다. 여기에 식대와 교통비는 자비로 충당하고 있으니 턱없이 낮은 금액이다. 또한 인건비 이외의 사업비 등 어떤 것도 지급되지 않는다는 점도 ‘사회적 일자리’ 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해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한여노협)가 맡은 ‘방과후 교실’(7개 지역 43개 학교, 아동 984명 지도) 사업(광역사업)에 참여한 여성노동자 A씨의 증언을 들어 보면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다.
“교육을 마치고 드디어 학교로 출근했다. 처음 시작하는 학교라 그런지 학교쪽의 준비가 거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7월이 돼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방과후 교실의 프로그램기획·진행, 교구준비 등 운영 전체를 맡아 하면서도 색종이, 크레파스 등 학습재료는 일일이 학년 주임교사에게 타서 써야 했다.”
임윤옥 한여노협 정책실장은 “이런 현실에서 사회적 일자리 사업은 실업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취약계층에 대한 적극적 고용정책이라기보다는 최소한의 기본생계를 유지시켜주는 한시적 정책”이라며 “고용의 질 개선과 시설 등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임 실장은 “방과후 교실 사업을 더욱 체계화시키기 위해 노동부에 찾아가 시설 확충 등을 요구하면 교육부 소관이라고 하고, 교육부는 예산이 없어 집행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등 정부의 준비가 부족한 것 같다”며 “저임금 문제 등으로 올해는 사회적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영 부산실업센터 사무국장도 “노동부는 올해도 1인당 67만원의 인건비만 지급하고 어떤 인프라도 제공하지 않은 채 심지어 퇴직금까지 모두 민간단체에만 맡겨놓은 상태”라며 “이런 조건에서 어떻게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사회적 기업으로 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사업 선정 추진위원회도 보완해야
노동부의 사회적 일자리를 선정하는 추진위원회는 각 지방관서 고용안정센터를 중심으로 학계, 지자체 공무원, 관련 단체 관계자 등 10여명 안팎으로 구성된다. 지원 단체들의 사업 신청서를 검토한 뒤 최종 결정을 내리는 역할인 만큼, 위원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추진위원회에 대한 문제 제기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지난해 3월 인천의 경우 심사위원들이 1주일 전에 50개 사업에 대한 신청서를 받은 뒤 단 한 차례 회의만으로 사업 선정을 완료했다. 평가를 하는데 물리적 시간이 상당히 부족할 뿐 아니라 특히 각 단체들에 대한 정보도 없이 ‘단체의 신뢰도, 재정여건’ 등 평가항목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이 사업에 관련된 지방관서 임직원, 수행단체 실무자, 추진위원회 위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교육프로그램도 마련돼 있지 않아 사회적 일자리에 대한 이해 차이로 종종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사정은 다른 지역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국실업극복단체연대 신명호 정책위원장은 ‘노동부 사회적 일자리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추진위원회를 상설적인 협의기구로 전환해 간담회 및 교육 등을 통해 관련자들에게 사업의 성격과 취지를 정확히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며 “심사의 기준 등을 공론화시켜 제도 정착이 탄력을 받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 위원장은 “추진위 구성을 내실화한 다음 지역 네트워크와 연결시킨다면 각 사업에 대한 지역적 편차를 줄일 수 있고 지역의 의견들을 모아내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의 수요 예측 등 정부 역할 중요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일자리 사업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정부는 4만개, 8만개 등 숫자 위주의 계획과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제대로 방향을 잡고 필요한 토대를 마련하지 않으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일자리 지원사업 등을 전문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이은애 실업극복재단 기획개발팀장은 “정부가 사회적 기업을 말하고 있지만 성공을 위해서는 환경이 함께 조성돼야 한다”며 “지금은 비영리단체들의 아이디어와 노력에만 맡겨져 있어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앞으로 10년, 20년 후 우리의 사회서비스 수요를 예측하고 객관적인 데이터 분석자료를 내놓는 등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며 “또한 협동조합, 자활기관 등 사회적 기업의 단초를 제공했던 기존 사업들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통해 실패요인들을 제거해 나가는 절차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덕순 노동연구원 연구위원도 “사회적 기업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실패할 경우 사회적 일자리의 질은 낮아지고 사회적 서비스 시장이 양극화될 우려가 있다”며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정책이 법적인 지위 부여, ‘보호된 시장’의 형성 및 세제 지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매 사업마다 제기되는 부처간의 유기적인 협조도 풀어야 할 현안 과제다. 한여노협 임윤옥 정책실장은 “실제로 정부 관계자를 만나보면 부처 내에서도 사회적 일자리에 대한 공감대가 제대로 없는 것 같다”며 “사회적 일자리가 여론 호도가 아닌 정말 충실한 정책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사업의 집행력을 담보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드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정부의 고용정책이 ‘양’이 아닌 ‘질’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올해 △사회적서비스 분야의 수요조사를 통해 전망 있는 수익형 사업 적극 개발 △각 부처에서 시행중인 사회적 일자리 사업 총괄할 수 있는 공통규정 제정 △사회적 기업의 제도화를 위한 법제정 검토 등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1인당 67만원 지원 외에는 마련된 것이 없다. 정부의 계획이 ‘장미 빛’ 구상으로만 끝나질 않길 기대해 본다. 김소연 dandy@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