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종류와 가치
목차
- 너의 사랑과 나의 사랑은 다를 수 있다
- 부모와의 관계가 사랑의 방식에 미치는 영향
- 사랑이 변하는 이유
모든 생명체는 자기 보존 욕구와 종족 보존 욕구를 지닙니다. 자기 보존 욕구는 식욕이나 소유욕 등이며, 이 가운데 가장 근원적인 것은 아무래도 식욕입니다. 또 종족 보존 욕구는 이성 간의 사랑에 대한 욕구와 자녀에 대한 사랑의 욕구를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 보존 욕구와 종족 보존 욕구의 본능적 사랑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한다’는 말이 이 종족 보존 욕구의 보편성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본능적 욕구는 생식 기관과 호르몬 작용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동물들은 생식 기관을 제거당하면 이성에게 흥미나 관심을 표현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까 성욕 자체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남성의 고환이나 여성의 난소를 제거해도 얼마든지 이성에게 성욕도 느끼고 애정 표현도 할 수 있습니다. 동물은 완전히 본능에 예속되어 성선이나 호르몬에 불가항력적이고 그 압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반해, 인간은 본능적 압력을 받지만 반드시 그 노예가 되지는 않습니다.
1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인간의 경우는 인류가 원래 가지고 있던 원초적인 뇌에 새롭게 신피질계가 발달함으로써 이곳에서도 사랑을 관장하고 있습니다. 대뇌신피질계에서는 지성적인 행동을 관장하기 때문에 인간의 사랑은 의지와 관계를 맺게 되고 그 사람의 의지와 본능 사이의 어딘가에 그 사람의 윤리가 자리를 잡게 됩니다. 따라서 사람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의 사랑과 나의 사랑은 다를 수 있다
학계에서는 다음의 여섯 가지 사랑의 분류법(Hendrick, C. & Hendrick, S., LAS; Love Attitude Scale)이 대표적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열정적인 사랑(eros)은 첫눈에 반하거나 연인의 신체적인 매력에 끌리면서 사랑이 시작되는 유형입니다. 열정적인 사랑을 하는 연인들은 자기를 빨리 개방하고 쉽게 감정적으로 동화하고 신체 접촉도 빠릅니다. 이들은 어린 시절이 행복했었다고 생각하고(객관적인 사실은 중요치 않고, 그렇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유희적인 사랑(ludus)은 여러 명의 애인을 두고 그 가운데서 사랑의 관계를 즐기는 유형입니다.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갖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애인으로부터 얻어 내는 자신의 기술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사랑의 감정이 깊지 않고 쉽게 애인을 바꿉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평범하게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어른이 되어서 종종 좌절을 경험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동료적인 사랑(storge)은 처음에는 형제자매나 놀이 친구 같은 관계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무르익는 사랑의 감정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스토르게이(storgay)에서 비롯된 사랑의 유형입니다. 서서히 이루어지는 자기 개방으로부터 생기는 편안한 친밀감을 서로에게 느끼는 관계로서 가장 훌륭한 사랑은 오랜 우정에서 생긴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합니다. 이 동료애 유형에 속하는 사람은 보통 대가족이나 서로 격려해 주는 분위기의 가족 문화 속에서 자랐거나, 안정적이고 우호적인 공동체 안에서 성장한 경우가 많습니다.
논리적인 사랑(pragma)은 그리스어 ‘프래그머틱(pragmatic)’에 어원을 둔 사랑입니다. 논리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날마다 쇼핑 목록을 작성하듯 상대에게 원하는 실용적인 자질의 목록을 다소 의식적으로 작성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자를 구하고 두 사람의 관계가 잘 어울리는가에 가장 큰 관심이 있습니다. 어울리는 상대를 구하는 데 논리적이고 사려 깊으며 흥분보다는 만족을 추구합니다. 이들이 애인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만족시키고자 하는 이유는 자신도 애인에게서 그만큼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논리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무엇이든 자신이 노력한다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소유적인 사랑(mania)을 하는 사람들은 질투와 소유욕이 강하고 애인에 대한 사랑에 사로잡혀 있고 애인에게 의존적입니다. 사랑의 기쁨에서 슬픔으로 변하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항상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받으려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과 연인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사람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다고 회상합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외로워하며 자신의 일에 쉽게 만족하지 않습니다. 극도의 질투심을 보이고 상대방에게 더 많은 애정을 요구하는 유형의 사랑입니다.
이타적인 사랑(agape)은 무조건적으로 배려하고 제공하는 타인 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나’를 내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상대에게 사랑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와의 관계가 사랑의 방식에 미치는 영향
이렇듯 다양한 형태의 사랑 가운데 사람들은 자기 윤리나 가치관에 맞는 사랑을 하게 됩니다. 성인이 되어 이성과 나누는 사랑 유형이 어릴 때 양육자와의 애착 유형과 관계가 깊다는 연구가 나와 흥미롭습니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1)에서 어릴 때 부모와의 애착 관계가 회피 유형이었던 사람은 유희적인 사랑의 형태가 높은 분포를 보였고, 열정적인 사랑과 이타적인 사랑의 유형이 낮은 분포를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어릴 때 양육자와 회피 애착 유형을 형성하면, 자라면서 대인관계에서 타인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의지하는 것이 어려우며, 타인과 가까워지면 불편함을 느끼는 성인으로 자라게 됩니다. 또 이성 관계에서는 유희적인 사랑을 하기가 쉽고, 열정적이거나 이타적인 사랑을 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부모와 안정 애착 유형을 가졌던 사람은, 성인이 되었을 때 열정적이거나 이타적인 사랑을 하는 비율이 높았고, 유희적인 사랑을 하는 비율은 낮게 나타났습니다. 이는 어릴 때 양육자와 안정된 애착 관계를 형성하면, 타인과 비교적 쉽게 사귈 수 있고 타인에게 의지하거나 타인이 자신에게 의지할 때에 편안함을 느끼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버림받거나 타인과 가까워지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 인성으로 자라게 되어, 이성과 사귈 때 열정적이고 이타적인 사랑을 하기 쉽고, 유희적 사랑은 좀처럼 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영유아기 때 부모나 돌봐 주는 사람과 갖는 관계의 질이 성인이 되었을 때 애인과의 사랑 유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이성과의 사랑을 ‘성인기 낭만적 애착’이라고 부르며 영유아기의 애착과 비교하여 다루기도 합니다.
위에서처럼 사랑하는 형태에 대한 연구도 있지만, 최근에는 사랑이 일어나는 과정을 연구(KBS, TV의 감성과학 다큐멘터리 <생로병사의 비밀, 사랑 1;2005. 3. 15, 사랑 2;3.22, 사랑 3;3.29 등> 참고)하여 과학적으로 사랑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사랑이 변하는 이유
이 연구에서는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 커플의 뇌 사진을 조사하여 사랑에 빠졌을 때 대뇌의 미상핵 부위(1장에서 본능을 관장하는 시상하부로 언급된 부위의 일부)가 활성화되는 것을 과학적으로 밝혔습니다. 미상핵이 활성화되면 인간은 이성보다 본능에 충실하게 되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치 않고 애정 표현에 과감해집니다. 이때 흥분과 쾌감, 주의 집중을 일으키는 신경 전달 물질인 도파민 분비가 활발해집니다. 그러니까 사랑에 빠지면 도파민의 분비가 많아지는데 도파민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자주 미소 짓게 만듭니다. 애인의 단점은 보이지 않고 장점만 보입니다. 이것을 ‘핑크 렌즈 효과’라고 합니다.
만난 지 100일 정도 되는 연애 초기의 핑크 렌즈 시기를 지나 만나기 시작한 지 300일쯤이 되는 연인들의 경우, 겉으로 보기에 그들의 사랑은 변함없어 보일지라도 뇌 스캔 결과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습니다. 뇌의 활성화가 본능의 중추 미상핵에서 이성적 판단을 담당하는 대뇌 신피질 부위로 옮겨 간 것입니다. 6개월 전의 열정은 그 빛을 잃고 사랑에 상당히 이성적 측면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상대에 대한 열정이 식고 동료 같은 친숙함이 생기는 것 역시 필요한 일로 봅니다. 왜냐하면 열정적 사랑의 상태는 너무나 강력하여 그 기간이 너무 길어지면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아기가 생겨 몰두의 대상이 바뀌고 열정적 사랑이 이타적 사랑으로 바뀌는 것 역시 자연의 이치인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사랑의 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데 열정적 사랑을 느끼는 기간은 평균 18개월에서 30개월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흔히들 ‘열정적 사랑의 유효 기간은 900일’이라고 하나 봅니다.
열정이 급격히 약해지는 시기는 그보다 빠릅니다. 사귄 지 약 1년쯤 되는 때이며, 이 시기가 연인 사이에 가장 위험한 고비가 됩니다. 이때 열정의 농도는 대략 50% 떨어지는데 그 열정의 빈자리를 동료적 사랑을 위시한 다른 사랑으로 채우지 못할 때 이 연인들은 사랑이 식었다며 이별을 선언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열정만이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열정이 있는 동안에 사랑을 동료애나 정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두 사람의 역량에 달려 있습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이성을 존중하는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로 자라난 성인은 본능의 힘보다는 자유의지로 사랑의 태도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랑의 종류와 가치 (부모가 시작하는 내 아이 성교육, 2007. 2. 15., 백경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