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해저터널을 건너가요
하재일
우리는 이쪽 섬에서 출발하여
원산안면대교를 거쳐서
믿기지 않는 해저터널을 지나서
뱃길이 아닌 국도를 따라서
건너편 언덕에 닿고 싶어 해요
처음 수제비를 먹으러 갔는데
번호표를 받은 대기자들을 보면서
해저터널의 위력을 실감했죠
맛있어도 줄서서 먹는 일은 없어야지
단호한 친구의 주장 때문에
지프차를 그대로 돌려서
전혀 다른 인연의 식당가로 가서
한산한 바지락 칼국수를 주문했어요
왕만두 다섯 개도 주문했고요
해당화가 언뜻언뜻 보이는
서정적인 갯가를 따라서
튼튼한 남포방조제를 지나서
상화원 찹쌀떡을 먹으러 갔죠
섬 전체가 사유지라고
주인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머리가 일찍 깬 장사꾼인지
포부가 큰 사람인지 알 수 없지만
죽도록 경치가 좋다고 하면서
60세 넘으셨죠, 매표원이 묻길래
아직은 좀 멀었는데, 머뭇머뭇
질문에 무슨 이유가 있나 싶었어요
친구 한 명이 재빠르게 오, 예스
칠천 원 하는 표를 오천 원에 구매
고맙습니데이, 얼른 절하면서
커피 한 잔에 찰떡 한 개 받아서
각자 입에 물고 나무회랑을 돌아서
느릿느릿 섬을 한 바퀴 돌았지요
그늘 따라 파도 한 바퀴로 돌았지요
이름이 죽도라서 그런 것인지
시누대가 자주 나타나고
절경의 소용돌이가 나타나고
군데군데 머리 조심하라는
무문관(無門關)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연인과 가족과 즐거운 일행들이
의자에 앉아 담소하면서
압축된 풍경이 일생처럼 지나갔어요
우리는 누구를 만나러 간 것일까요
태양은 어김없이 서쪽으로 지고
해저터널은 절대 무너질 리 없어요
사람들은 매일 바다 밑을 지나
강 건너로 수제비를 먹으러 다니지요
삼경엔 노을도 터널 안에서 묵어가고요
우리가 평생 걸려 건너왔던 길을
단 18분 만에 다른 나라에 도착했어요
참 놀라운 해저터널입니다만
당신은 언제 해안선을 넘을지 궁금하네요
건너편 彼岸에 누구나 닿고 싶어 했지만
카페 게시글
신작시
우리는 해저터널을 건너가요 / 하재일
이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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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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