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산[盃山] 255m 부산 연제 / 수영
산줄기 : 낙동황령단맥
들머리 : 수영구 망미동 망미중교
위치 부산광역시 연제구 / 수영구
높이 255m
[고스락엔 돌탑과 작은 통신철탑이 앉아있다.]
배산(盃山)은 술잔을 엎어놓은 꼴이라 한데서 유래된 것으로 해발 255m이다. 연제구 연산1,8동의 남쪽
산이되고, 수영구 망미동 북쪽산이 된다.『동래부읍지(1832)』에는 "동래부의 남쪽 5리에 있다.
황령산으로부터 뻗어내렸다. 겸효대가 있다"고 했는데 그 겸효대는 지금은 그 흔적이 없어졌다.
『동래부지(1740)』에 척산(尺山)이라 기록된 산이 이 산으로 보고 있다.
[고스락의 광안대교 조망]
이곳 고로들은 '절미산' 또는 '잘뫼산'이라고도 하고 있다. 부산시에서 1978년에 편찬한『부산의 역사』
에는 동래현이 지금의 동래로 옮겨지기 이전의 동래현의 치소(治所)는 배산의 망미동쪽(지금의 국군통
합병원 자리)에 있었다고 보고 있다.
이곳에 동래현이 있었던 시대는 고려시대 혹은 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배산에서 조망한 금련산]
[명소와 사적]
① 겸효대
겸효대(謙孝臺)는 연제구 연산동 산38-1 일대의 배산성지(시 기념물 제14호)가 있는 부근의 아름다운
경치가 있었던 곳이다. 겸효대에 대한 기록은『동국여지승람(1481)』고적조에는 "동래현 남쪽 5리에
있다 하고 선인인 김겸효(金謙孝)가 노닐던 바 있어 그리 이름하였다."고 하였다.
또『동래부지(1740)』산천조에는 "척산을 배산(盃山)이라고도 한다. 동래부의 남쪽 5리에 있는데 위에
겸효대(謙孝臺)가 있다."라고 하였다. 역시『동래부읍지(1832)』의 고적조에는 겸효대를
"동래부의 남쪽 5리에 있고 황령산에서 이어진 곳에 겸효대가 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옛 기록에 의하면, 오늘날 연제구 주산으로 연산1동과 6동의 남쪽 산인 배산에 김겸효라는 선인
이 기거했던 겸효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고려 때 좌사대부가 되어 1366년(공민왕 15) 정언(正言)
이존오(李存吾)와 함께 당시의 실력자 신돈을 탄핵했다가 살해될 뻔했으나 이색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
하고 동래현령으로 좌천되어 이곳으로 부임한 정추(鄭樞)의 겸효대 시(詩)가『동국여지승람』에 기록
되어 있다.
또한 정추는 선인이라 일컬어진 김겸효와는 친한 사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동래현령으로 있으면서 지금
의 배산 위에서 신선처럼 사는 김겸효를 자주 만나 가슴 터 놓을 교우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동래현령으로 좌천되어 온 정추로 보아서는 속세를 벗어난 김겸효의 신선 같은 삶이 그리워 현령 일을 보
는 여가를 타서 겸효가 있는 곳을 자주 찾았던 것 같다.
당시의 겸효대는 경치가 뛰어나 시인과 묵객들의 유상처로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겸효대가 있었던 위치
가 지금은 막연하게 배산 위라 했으니 실제로 가능한 곳은 여러 곳으로 보인다. 지금도 이곳 경치는 도심
속의 전원공간으로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② 배산성지
배산성지는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호('72. 6. 26 지정)로 행정구역상으로 연제구 연산동 산38-1∼6의
일원에 위치하며, 성둘레는 110m, 면적은 9.238㎡이다. 지금의 양정로타리에서 수영사이의 동북방향에
있는 산 정상에 자리잡고 있다. 이 성지에 따른 기록도 없고, 정식 학술발굴조사가 아직까지 실시되지 않
아 정확한 축조연대는 알 수가 없다. 연산동의 배산에 있는 고성지(古城址)는, 옛 지명인 거칠산국
(居漆山國)시대의 유적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삼국사기』거도열전에 보면, "신라 4대 탈해왕 때 거도(居道)라는 장수가 거칠산국을 정벌하여 신라에
병합하고 거칠산군을 두었다"고 하였다. 이 기록에 나타난 시대는 고증을 요하는 문제이지만 신라에 병합
되기 전에 부족국가시대인 것만은 추측이 가능하다.
이 고성지(古城址)가 있었던 부근에는 삼국시대 때 조영된 연산동고분군이 있어 성터와의 관련이 주목된다.
단 성지의 규모와 축조방법 등으로 보아 삼국시대, 혹은 그 이전에 축성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배산성은 배산의 허리 부분과 정상에 각각 성을 쌓은 쌍가락지 모양의 이중성으로서 토성이다.
지금은 토성의 기초 부분만 남아 있을 뿐이다. 성벽은 산 아래에서 나선형으로 돌아오도록 지형에 따라 성을
쌓았다. 산 정상 바로 아래는 폭 2m 정도의 웅덩이가 있는데 이는 그때의 식수원으로 추측하고 있다.
③ 연산동고분군
연산동 고분군은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2호('72. 6. 26 지정)로 연제구 연산동 산 70번지 일대에 분포해 있다.
배산의 북쪽으로 뻗어나온 50m 전후의 능선 정상부를 따라 대형성토분구를 가진 고분 10여 기가 일렬로 배
치되어 있고. 대형분들 주변의 구릉 경사면에는 중·소형분들이 배치되어 있다.
고분군은 일제강점기 때 철제갑옷과 투구들이 출토되어 고대 한·일관계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서 국내외
학계의 관심의 초점이 되어왔다.
이 고분군의 정확한 성격 파악을 위하여 1988년 경성대학교 박물관에서 8호분을, 부산여대(현 신라대학교)
박물관에서 4호분을 조사하였다. 당시 수습된 유물들을 살펴보면, 토기류로는 고배·기대·대부장경호·원저단
경호·뚜껑 등이 출토되었는데 모두 신라토기이다.
철기류로는 4호분에서 화살통·금동금구편·철도자·철촉·유자이기편 등이, 8호분에서는 주곽에서 철갑·대도편·
철촉·철부 등의 무구류와 금동장행엽·등자 등의 마구류 및 유리제의 경옥 등이 주피장자의 목부분인 남쪽에
서 출토되었고, 부곽에서는 다수의 판갑편이 출토되었다.
한편, 일제강점기 때 발견된 갑주류와 8호분에서 출토된 찰갑·판갑 등의 갑주류에서 알 수 있듯이 수장층은
무장적인 성격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권력과 군사력을 동시에 장악·행사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토기들이 같은 시기의 신라토기와 동일한 것으로 보아 이 지역이 신라의 영향권 안에 있었을 것으
로 생각되지만 이와 같은 고총고분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지방의 기존지배계층에게 상당한 자치권이 부여
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현재 남아 있는 부산지역의 유일한 고총의 원형서토분구 유적이다. [한국의산하]
#산행코스
*배산~황령산~금련산은 부산의 한가운데 솟은 산이라고 할 수 있다. 위치상으로 부산시내 대부분의 산을
시원하게 볼 수 있는 산행코스이다.
*연산로터리~감천사~멍에고개~배산(255m)~바람고개~부산여상~우암사~금련산(415m)~황령산(427m)~
사자봉~문현동 바람고개~경성대학교. 4시간 정도 걸린다.
[들날머리 연산동 혜원정사]
[경유지 우암사]
#들머리안내
*산행 기점인 감천사에서 직진하면 천지암 이정표. 작은 개울을 건너 파란색 물탱크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간다. T자형 삼거리에서 오른쪽. 능선까지 치고 나간다. 붉은 빛이 도는 흰 바위지대가 나온다. 녹슨 듯
이끼가 끼었다. 한 고개를 넘으면 멍에고개. 소 멍에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 멍에정이라고 현판을
단 정자가 있다. 장승이 두 개 보인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제법 가파른 계단이다. 10분.
산행의 시작점은 지하철 1호선 연산동역 10번 출구로 나와 바로 만나는 건널목을 건넌다. 직진해서 연일
시장을 지나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감천사 이정표가 보인다. 버스는 29, 29-2, 508번 등이 있으며 한일
아파트 정류장에서 내린다. 경성대 앞에는 지하철 2호선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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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산행기 : 배산-금련산-황령산 산행안내[국제신문]
- 산 벗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