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cefjRT-u7B0
등에 나무가 난 물고기
옛날 중국 동정호 가까이에 공부가 하늘에 닿은 도승 한분이 있었다. 중국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에서까지도 스님의 높은 가르침을 받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스님 밑에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한 제자가 공부를 하려는 뜻을 세워 스님의 제자가 되기는 하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점점 게으름이 나서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장난을 일삼았다. 스님은 여러분 좋게 타일렀으나 게으른 제자는 스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계속 방종한 길로만 흘러갔다.
할 수 없이 스님은 그 제자에게 벌을 주기로 하고 신통력을 부려 그를 물고기로 만들어 동정호 속에 던지고 말았다. 그리고 반성을 하면 다시 사람으로 되돌려 주겠으니 참회하고 근신하라고 말 하였다.
그러나 물고기가 된 제자는 반성은 커녕 물 속을 마음대로 헤엄쳐 다니며 처음보는 물 속을 구경하면서 더 재미있게 놀기만 하였고, 이를 안 스님은 물고기에게 더 무거운 벌을 주기로 결심하고, 물고기 등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등에 나무가 생기자 물고기는 헤엄칠 수도 없고 먹이를 잡아 먹을 수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풍랑이 칠때마다 등에 있는 나무가 흔들려 등의 살이 찢어지고 피를 흘려 뼈가 깍이는 듯한 고통을 겪었다.
그때부터 그는 참회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고달픈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난 후 마침 스승인 스님이 배를 타고 동정호를 지나게 되었다. 물고기는 이를 알고 스님에게 다가가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용서를 빌고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스님은 제자가 충분히 반성한 것을 보고 수륙제를 베풀어 다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물고기 등에 있던 나무로 목어를 만들어서 절에 걸어두고 아침 저녘으로 사람을 모을 때 치면서 많은 제자들이 경계심을 갖도록 했다고 한다.
또한, 목어를 더욱 작게 만들어서 늘 몸에 지닐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목탁이라고 한다.여러 가지 쾌목으로 만든 목탁은 모양도 예쁘고 소리도 청아한 귀중한 불구이다.

목어(木魚)--- 사찰에서의 물고기 의미는?
사찰에서 물고기는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절에 가면, 곳곳에서 물고기 문양을 보게 된다. 범종각에는 나무로 조각한 목어가, 추녀 밑에는 풍경끝에 금속제 물고기가, 건물 기둥에는 용이나 봉황이 물고기를 물고 있고, 외벽이나 천장에도 물고기가 그려져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독경을 하는 스님 손에도 물고기가 반드시 들려 있다. 목탁이 바로 물고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 사찰에서 여러가지 형태로 받아들여져 왔으며, 단순한 장식이 아닌 의미를 지닌 상징물로서 지금까지 존재해 오고 있다. 선종(禪宗, 선을 구도의 방편으로 삼는 불교의 한 종파. 우리나라의 조계종이 그 예이다)에서 사찰 규범의 지침서로 삼고 있는 「백장청규(百丈淸規)」에는,
" 물고기는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으므로, 수행자로 하여금 자지않고 도를 닦으라는 뜻으로 목어를 만들었으며,
또한 이것을 두드려 수행자의 잠을 쫓고 정신 차리도록 꾸짖는다. "
라고 실려 있다.
이것은, 물고기의 속성을, 잠을 자지 않고 공부에 열중하는, 이른바 “ 불면면학(不眠勉學) ”하는 수도자의 자세에 비유한 것으로서, 수행자들에게 항상 깨어 있으라, 즉 잠시도 마음을 나태하게 가지지 말고, 유혹에도 빠지지 말고, 깨달음을 얻는 일에만 모든 생각을 집중하라는 경계의 의미로 물고기 문양을 사용하는 것이다.
목어. 목어의 전통적인 모습은 전형적인 물고기(잉어)의 형상이었으나, 점차 용두어신형(龍頭魚身形), 즉 몸은 물고기의 형태이지만 머리는 용의 형태로 변형되어 갔다.

『 통도사 범종루의 목어』 초기 형태인 잉어의 모습을 하고 있다.

『 경주 분황사의 목어』 날카로운 이빨, 툭 튀어 나온 눈방울이 독특하지만, 초기 형태인 물고기의 머리이다.
물고기 머리가 점차 용 머리로 바뀌어 가는 것은 바로 “ 어변성룡(魚變成龍)”,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됨을 표현한 것이며, 이는 곧 “ 해탈(解脫)”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천 용문사 범종각의 목어』 물고기의 머리가 용 머리로 바뀌었다. 그러나 목덜미에 아가미처럼 보이는 지느러미가
붙어 있어 아직도 물고기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다.

『 불국사 자경루 옆의 목어』 머리 부분이 완전한 용 머리로 바뀌었다.
목어는 원래 부엌이나 공양간 등에 걸어 놓고 길게 두 번 두드려 공양하는 시간을, 길게 한 번 두드려 대중들에게 모이는 시간임을 알리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목적의 도구가 뒤에 가서는 물속에 사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시킨다는 의미로 바뀌어 종루, 종각과 같은 건물에 걸리게 된 것이며, 지금에 와서는 대부분의 사찰에서 종, 운판, 목어, 법고의 사물(四物)을 갖추고 있다.
종은 삼라만상을, 운판(雲板, 구름무늬를 새긴 금속판)은 날짐승을, 법고(法鼓, 북)는 땅 밑의 중생을, 목어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이다. 사찰에서 사물을 울리는 순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새벽 예불. 목어 - 법고 - 운판 - 범종
저녁 예불. 법고 - 운판 - 목어 - 범종

『 수원 용주사 범종각의 목어』 크기는 작아도 몸체는 물고기, 머리는 용인 목어.
아래의 그림은 불교 설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린 것으로, 수행자가 수행을 게을리하고 태만히 하자, 등에 나무가 자라나고 평생 동안 이 무거운 나무를 등에 지고 살아야 하는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경계를 삼도록 한 것이다. 어떤 이는 이 나무로 만든 것이 목탁의 유래라고도 하기도 한다.

목탁(木鐸). 문헌에 의하면, 목탁의 시작은 중국 노나라에서 새로운 법령을 발표할 때, 목탁을 쳐서 사람들을 모이게 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오늘 날에는, 사찰에서 염불을 하거나 대중들이 모여 경전을 암송할 때 운율과 박자를 맞추고, 수행 중인 수도승은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자 번뇌와 잡념을 깨뜨리는 도구로도 사용하고 있다.

『초기에 사용했던 목탁』 지금의 목탁보다 5~6배 정도 크다.
사찰에서 사용하는 목탁은 아래 그림에 보인 바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목탁이 목어에서 진화되어 왔음을 보여 주고 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목탁의 재료는 100년 이상 묵은 살구나무 뿌리를 쓴다. 진을 빼기 위해 3년을 진흙 속에 묻어 두었다가 소금물에 적셔 가마솥에서 쪄낸 다음, 그늘에서 사흘 동안 말린 연 후에 작업을 시작한다. 일주일을 꼬박 깍고 파고 다듬은 다음에 들깨 기름을 7번 발라 완성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목탁 하나 만드는 데 3년 반이 걸린다.
예전에 가야산 두리봉 아래의 개금마을에, 이런 과정대로 목탁을 만드는 김종성이라는 이름의 장인이 있었는데, 성철 스님으로부터 성공(成空)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이 분은 여러 해 전에 타계했고, 목탁 제조 기능은 단절되었다.

풍경에 달린 물고기 뒤로 파란 하늘은 그대로 바다가 되고, 하얀 구름은 파도가 되며, 풍경 소리는 파도 소리가 된다. 물고기가 달린 것은 화재를 막아 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즉, 물고기가 사는, 온통 물천지이니 화마(火魔)는 아예 오지 말라는 뜻인 것이다.


구례 화엄사 각황전 옆 홍매』 물고기 대신 구멍 뚫린 방패가 달려 있다. 역시 화마를 막는
의미를 갖고 있다.
용이 물고기를 물고 있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중국에서는 물고기 魚(어)의 발음이 餘(여)와 같고 裕(유)와 유사한 것에 근거하여, 물고기를 풍요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또한, 魚의 발음이 如(여)와 비슷하여 여의(如意)의 상징물로도 인식을 같이 하기 때문에,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져다 주고 고통과 어려움도 해결해 준다는 여의주와 뜻이 같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물고기를 물고 있는 용은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또다른 표현인 것이다.
이 때의 물고기를 금어(金魚)라고 하는데, 부처님의 말씀을 금어(金語)라고 한 것과 같은 뜻으로 여긴다. 한편, 불화(佛畵), 불상, 사찰의 벽화를 조성하는 승려를 금어(金魚)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래 사진에서와 같이, 용면(龍面)이 물고기를 물고 있는 것은 화마를 막기 위한 벽사(僻邪)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용면을 두고 귀면(鬼面), 또는 도깨비 얼굴이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 예천 용문사 대장전』 불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장식된 것이다.
쌍을 이룬 물고기는 부부의 화합과 다산(多産)을 의미한다. 이는 물고기가 한번에 낳는 알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 경산 환성사 대웅전 수미단』 불교에서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물고기는 다산을
상징해서, 민화의 소재로 많이 그려졌다.

『 완주 송광사 』 부부 화목, 다산을 의미한다.
아래의 사진처럼 사찰 건물의 바깥 벽이나 지붕 처마 밑에 물고기를 그린 것은, 화재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그린 것이다. 즉, 사방에 물이 가득하므로 화마가 아예 접근할 생각을 갖지 못하게 한다는 발상이다.

『 제천 신륵사 극락전』 이곳의 물고기는 특이하게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 김해 은하사 법당 내 대들보』 역시 화재 방지를 위한 방편으로 그려진 것으로 법당 내부에까지
그려지고 있다.
아래의 사진은 부산 범어사 뒤편에 자리한 금정산(金井山)에 있는 천연 바위 구멍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바위 구멍 속에는 금어(金魚)가 살고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금샘, 즉 " 금어가 사는 우물 "이라는 이름이 생겨났고, 이 우물에 사는 금어는 범어사의 화재를 막아 준다고 전해 온다.
아래의 사진은 매우 특이한 예이다. 경북 상주의 남장사 극락보전 법당 안 포벽에 그려진 그림으로, 옆에 쓰여진 글을 판독해보니,
이백 기경 상천도 李白騎鯨上天圖
이다. 그 유명한 시인 이태백이 고래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뜻이다. 필시 무슨 곡절이 있어 그려졌을 터인데, 사찰 내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다. 이런 저런 자료를 헤매다 보니, 두 갈래 이야기가 잡힌다.
하나는 시선(詩仙)이자 주선(酒仙)인 이태백이 달밤에 채석강에서 뱃놀이를 하던 중, 강물에 비친 달을 건지려다 물에 빠져 죽자, 그의 혼백이 기어코 달을 따려고 고래를 타고 하늘로 향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물에 빠져 죽은 이태백이 극락으로 가는 반야용선을 놓쳐 하는 수 없이 고래를 잡아타고 반야용선의 뒤를 쫓아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