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쉬운 성경 시편 131편 1 - 3절
1 여호와여, 내 마음은 허황되지 않으며, 나의 눈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나는 커다란 일들에 관심을 두지 않으며, 너무 놀라운 일들에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2 그 대신 나는 잠잠하고 조용히 있습니다. 내 영혼이 어머니와 함께 있는 젖 뗀 아이와 같습니다.
3 오 이스라엘이여, 여러분의 소망을 여호와께 두십시오. 지금부터 영원토록 소망을 여호와께 두십시오.
<묵 상>
1. 본문은 <예배 드리러 올라가는 자의 노래>로 ‘성전 순례시’ 15편 중에서 12번째 시편입니다. 내용적으로는 순례자들이 다윗의 시편을 묵상하면서 성전을 향해 올라갑니다. 그러면서 신앙인으로 겸손을 다짐하며,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된 것을 노래합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은 허황되지 않으며, 나의 눈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나는 커다란 일들에 관심을 두지 않으며, 너무 놀라운 일들에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1절) 다윗은 ‘않다'라는 부정어를 4번 사용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굳은 결심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먼저 자신의 마음이 허황되거나, 눈이 교만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허황되다'는 '오만하다', '높다'는 뜻입니다. 자기 자신을 실제보다 더 대단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교만하다’는 단어 역시 ‘높다’는 의미입니다. 교만은 자신의 본래의 모습보다 더 높게 여기는 것입니다. ‘오만’과 ‘교만’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다윗의 삶을 드려다 보면 자신을 과대포장하지를 않습니다. 다윗은 온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던 골리앗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그는 백성들의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거들먹거리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군대가 블레셋 군대와 싸워 대승을 거두고 돌아올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렬히 환호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여인들이 사울 왕을 환영하며,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노래했습니다. 그 이후로, 사울 왕은 다윗을 시기하여, 군신관계가 아니라 정적으로 보았습니다. 장인과 사위의 관계가 아니라 왕위를 찬탈하려는 역적으로 보았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잡기 위해 전국에서 뽑은 특공대 3000명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을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2번이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다윗은 사울 왕의 자리를 넘보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한결같이 자기를 크게 여기고 허황된 마음을 품지 않고, 교만하게 행동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커다란 일들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들을 하려고 힘쓰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커다란 일’은 자신을 ‘위대한 사람인 것처럼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놀라운 일’은 ‘과도한 업적을 남기려는 일’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왕이었고, 가장 강력한 군주였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전 국토가 자기 업적, 자신의 소득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산업과 자신의 소득이 되신다고 말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 16:5-6) 하나님께서 자신의 몫을 지키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땅이 자신에게 기쁨이 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그 땅이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다스리는 땅이 지금보다 더 넓게 해달라고 억지를 부리지 않았습니다. 과욕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재어 주신 것만 해도 감당 못할 감사요. 만족이었기 때문입니다.
2. 다윗은 오만한 마음을 품지 않고, 교만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며, 과도한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지 않습니다. 그대신 자신의 영혼이 고요하고 평온하다고 고백입니다. "그 대신 나는 잠잠하고 조용히 있습니다. 내 영혼이 어머니와 함께 있는 젖 뗀 아이와 같습니다."(2절) 여기서 '잠잠하다'는 '고요하다', '중지하다', 가만히 있다'는 의미입니다. '조용하다'는 '평온하다', '평평하게 하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것은 곧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영혼이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를 젖 뗀 아이가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것 같다고 고백합니다. 젖 먹는 아기와 젖 뗀 아이는 약간 느낌이 다릅니다. 젖먹이 아기는 갓난아기로서 먹는 일과 자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아기의 먹는 모습과 자는 모습을 보는 것만 해도 그 부모에게는 큰 기쁨입니다. 젖 뗀 아이는 잠자리와 젖이 필요하지 않고, 그 어머니가 필요합니다. 잠자리와 먹을 것은 자신이 칭얼대지 않아도 어머니가 챙겨주는 것을 압니다. 젖 뗀 아이에게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곳은 어머니와 함께 있는 곳입니다. 어머니가 이러하다면 하물며 하나님은 두 말해야 무엇하겠습니까?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신명기 1:30-31)
3.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소망을 하나님께 두라고 권면합니다. "오 이스라엘이여, 여러분의 소망을 여호와께 두십시오. 지금부터 영원토록 소망을 여호와께 두십시오."(3절) 여기서 '소망'은 '바라다', '기다리다', '기대하다', '희망하다'는 의미입니다. 동일한 표현이 시편 130편 7절에서도 나왔습니다. "오 이스라엘이여, 여러분의 소망을 여호와께 두십시오." 두 말씀이 동일하지만, 그 적용은 정반대입니다. 130편에서는 시인이 ‘깊은 절망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고, 실패하지 않음을 알기에, 그 깊은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라고 권면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나라,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 되게 해 달라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다윗은 '깊은 절망 속'에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어머니와 함께'있다고 고백합니다. 거기에는 평안함이 있고, 만족이 있기에 하나님을 바라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오 이스라엘이여, 여러분의 소망을 여호와께 두십시오" 같은 표현이지만 다른 상황, 다른 의미의 고백입니다. 깊은 절망 속에 있든, 어머니의 품에 있든 영적인 긴장감을 풀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십시다.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십시다. 주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만남과 관계 속에서 오만하고,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마십시다. 육신의 욕망을 향하여 허황된 일을 좋아하지 마십시다. 내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또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을 바라는 사람이 되십시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되시는 아버지 하나님! 깊은 절망 속에 있을 지라도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기대하게 하옵소서. 어머니와 함께 있는 평안한 상황에 있을지라도 거기서 하나님의 평안과 안전함, 만족을 누리게 하옵소서. 나의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나의 눈이 오만하여 허황된 것을 일삼지 않게 하옵소서.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들을 하려고 동분서주 하지 않게 하옵소서. 육신의 육체가 정욕의 노예가 되어 경쟁하지 않게 하옵소서. 이를 좇아 살지 않게 하시고, 의를 좇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되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나의 영혼이 고요하고 평안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것 같게 하옵소서. 어디에 있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을 바라고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