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묵호의 거리를 걷다가, 연탄재를 가져와서 원룸 정원에 뿌리고 있다.
좁은 곳이라 몇 번 안했는데도 제법 가득차 있다.
연탄재는 비록 볼품없는 버려진 것이지만, 훌륭한 비료가 된다. 공해물질을 다 태워버리고 남은 것은 땅에 유익한 원소와 미네랄들이다. 비료로서는 최고인 셈이다.
나의 밭이 생겼다. 아니 너의 밭이다. 우리의 밭이다. 묵호의 밭이다.
원룸 작은 정원이 나의 놀이터가 된 순간 과거 어설픈 농부로서의 기질이 되살아났다.
버린 화분을 주워오다가, 드디어 내년의 농사를 대비해서 거름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연탄재, 게껍질, 커피찌꺼기 등. 모두 내가 묵호의 거리를 걷다보면 꽁짜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연탄재는 거리 쓰레기 더미에 항상 있고, 게껍질은 중앙시장 식당 주변에 가면 가끔 있다.
커피 찌꺼기는 24시간 무인카페 ‘봉자’에 가면 가끔 있다.
나는 모태 빨갱이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내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아내와 같이 살고 아이들을 키울 때는 어쩔 수 없이 사유를 할 수 밖에 없었으나 이제는 멋대로 할 수 있다.
나는 부동산, 동산을 제일 싫어한다. 내 눈앞에 보이는 것들, 재산이 되는 것들, 은행의 돈들 등.
그래서 ‘財테크’를 극도로 혐오한다.
일본을 망하게 한 ‘잃어버린 30년’의 주범 ‘財테크’를 그대로 수입해 와서 전국민들에게 유행처럼 퍼진, 어원도 불분명한 괴물이 ‘財테크’다.
공유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공유는 ‘같이’ 한다는 것이다. 같이 웃고 같이 노래하고 같이 먹고 같이 사랑하고 같이 아이를 키우고 같이 숨쉬고 같이 생각하고......같이 할 수 있는 것은 셀 수 없이 많다.
나는 이념을 싫어한다. 굳이 나의 정체성을 물어보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장자를 사랑하는 빨갱이 아나키스트’
원룸의 밭은 이제 나의 밭으로 시작해서 우리 원룸 사람들의 밭이 되고 그래서 묵호의 밭이 되길 희망한다.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가 생각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한번이라도 남에게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Don't kick me with briquettes.
Have you ever been a man of passion?”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중에서
비록 지금은 불 꺼진 연탄재지만, 얼마 전까지 사력을 다해 불을 내어 온기를 만들었기에 재로 남게 된 것이다.
연탄재는 숭고한 헌신이 맺은 열매이다.
우리의 삶도 그러해야 될 것이다. 타다 남은 연탄의 모습이 아니라
온전히 다 태워져 한줌의 재가 된 연탄재처럼.
이렇게 연탄재가 되도록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너무 몸 사리지마라. 몸도 망치고 일도 망친다.
오히려 죽을힘을 다 할 때 몸도 살고 일도 성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