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 다녀온 지인의 산행기를 접하고 이리저리 계획을 세워본다.
지인은 용장리->고위산, 금오산->북쪽 부처골->일천바위 능선->금오정->포석정->
삼릉-> 금오산->용장리로 원점회귀 산행을 하였는데
그와는 달리 삼릉서 금오산을 올라 용장골로 내려왔다가
고위산을 올라가 북쪽으로 내려가는 간단하고 널널한 코스로 잡았다.
(개념도)(누르� 확대됨)
남산__20131208_0716.gpx
건대입구역, 구의 방향, 막차(11;44)가 연착을 하여
11시 57분에 들어왔다.
강변역에 도착, 버스 출발하는 쪽 도로로 달려가
12시 정각에 출발한 경주행 버스를 세워 탄다.
금방 들어온다는 역원의 말만 믿고 기다리다,
어휴... 십년 감수했다.
새벽 4시,경주 시외버스 터미널 주위는 모텔 간판만 휘왕 찬란..
10여분 돌아다니다 유일하게 문을 연 24시 경주국밥집에 들어가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방 구석에서 잠시 눈을 붙힌다.
6시에 일어나 국밥을 먹고 터미널 근처 정거장으로 수소문하여 가니,
방금 버스가 떠났다 하는데 남쪽 멀리 여명속의 남산이 보인다.
일출이 7시 15분 정도이니 일찍 가봐야 어둠 속..하면서
30분 길에 서서 기다리는데
어제 밤이나 오늘 아침, 교통 운은 별로인 듯.
삼릉행 500번 버스는 대략 ' ㄷ' 자로 시내를 돌아 남산쪽으로 가니
터미널 서쪽, 남산과는 반대 방향 정거장에서 타야한다.
삼존불서 용장까지 서남산
(삼릉에서 용장까지 보물지도)(누르면 확대됨)
(불상의 명칭)(누르면 확대됨)
정거장에서 망월사 입구로 가서 북쪽 해우소 옆 으로 나가면 삼불사 주차장이다.
(배동 석조여래 삼존 입상)
새벽부터 신도분이 있어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며 사진을 찍어보나..
가운데 본존불은 장식적인 양쪽 보살과 달리 단순한 형식인데,
뚜렷한 백호와 구슬띠 같은 나발이 특징이라고한다.
(좌협시보살-오른손-설법인,왼손에는 정병..)
(우협시보살-세줄로 된 영락을 잡은 오른 손이 특징)
돌아다닐 곳이 많으니 맘이 콩밭이라..서둘러 망월사 입구를 지나
삼릉쪽으로 둘레길을 걸어간다.
(서쪽에 보이는 벽도산)
(공동묘지)
3릉은 아달라왕,신덕왕,경명왕의 왕릉이라 하는데
이른 시간인데도 삼릉부터는 간간히 사람들이 보인다.
(길가의 폐불,폐탑)
(냉곡 석조여래좌상)
계곡 땅에 묻혀있다 발견되어서 마멸이 없는
생생한 옷주름이 특징인데 특히 가사 매듭인 영총수실이 사실적이다.
(영총수실)
(삼릉계곡 마애관음불상)
여래좌상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나온다.
광배를 따로 만들지 않고 뒤쪽의 비스듬한 바위를 광배삼아
보살상을 조각한 노천불이다.
붉은 입술이 특징으로 비올 때 모습이 아름답다 한다.
(붉은입술)
다시 계곡쪽으로 돌아나와 2~3분 올라가면 육존불이 나온다.
(삼릉계곡 선각 육존불)
동쪽, 서쪽 두개의 바위면에 그림을 그리듯 선각으로 조성하였다.
(서쪽바위면의 아미타삼존불)
(가운데 아미타불 수인이 특이하다 한다.)
(좌협시보살,얼굴 부분)
(우협시보살은 연화좌대를 생략하여 바위속에서 나오는 모습)
(우협시보살,얼굴 부분)
(동쪽 바위면의 석가모니 삼존불)
동쪽바위는 마모가 너무 심하여 설법하는 석가모니 본존외에는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다.
(본존불 얼굴 부분,목의 삼도가 뚜렸하다.)
위로 올라가니 빗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파 놓은 배수로와
건물의 목재를 결구했던 흔적이 육존불 바위 윗면에 보인다.
바위 앞 전실안에 보호되어 있던 선각불인데
전실이 소실되고그냥 방치되어 마모와 훼손이 심하다.
육존불 바위위 등성이로 200m정도 올라가면
절벽바위에 여래좌상이 나온다.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
얼굴만 돋을새김이고 몸체는 선각인데
투박하게 조성된 얼굴의 소박한 위엄이 특징.
(부부가 안고있는 모습같아 부부바위)
여래좌상에선 서쪽 전망이 시원하게 터진다.
(서쪽 전망)(누르면 확대됨)
(1=망산,2=벽도산,3=단석산)
선각여래좌상을 바라보며 바위 밑둥을 따라 우측으로 100m 정도가면
석조 여래좌상이 나온다
(삼릉계곡 석조여래좌상)
노천불로 추정되며 파손된 머리와 광배를 복원하였는데,
투박하게 팔각으로 만든 대좌의 하대석이 특징이라 한다.
대개 대좌의 하대석은 연꽃으로 장식하는데 그와 달리
불상이 바위에서 솟아 오르는듯 거칠게 팔각으로 깎고 말았다.
(팔각형 하대석)
(중대석의 안상)
여래좌상 앞에는 삼층 석탑이 있었는데
경주박물관으로 옮겼다고 한다.
(삼층석탑이 있던 자리)
여래좌상에서 개천을 건너 등산로쪽으로 가면 무덤이 한기 나온다.
무덤 근처에서 여래좌상 뒤의 바위를 바라보면 마애불상이 보인다.
(얼굴 부분만 선각으로 새겨졌다.)
(상선암)
상선암 마애보살 선각상은 부서진 바위에 선각된 하반신이 보인다 하는데
아무리 보아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상선암에서 30m 정도 올라가면 우측으로 길이 갈라지는데
50m정도 올라가면 석가여래좌상이 나온다.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주변 바위에는 낙석방지 공사중인데
건장한 몸체에 잘어울리는 네모난 얼굴이 인상적이다.
(중대석이 생략된 좌대,앙련의 연잎에는 화문이 장식되어 있다.)
낙석위험으로 더이상 올라갈수는 없다,
다시 등로로 돌아나와 전망이 좋은 바둑바위로 올라간다.
신선들이 내려와 바둑을 두던 곳이라 하여 바둑바위인데
신라때 옥보고가 거문고를 켜던 곳이라고도 한다.
서북쪽 서라벌 일대가 내려다 보인다.
(서북쪽 전망)(누르면 확대됨)
안내도가 있는데 다른 건 모르겠으나
포석정,선도산, 무열왕릉 표시는 잘못되었다.
(1=선도산,2=구미산, v=무열왕릉 부근)
바둑바위 옆 바위봉을 올라가면 금송정터가 나온다.
(건너편 상사바위)
(상사바위 근처서 내려다본 석가여래좌상)
(가로로 파인 홈)
바위동쪽 기도용 감실 옆에는 머리와 연화좌대가 소실된
석불이 하나있는데 남산에서 가장 작은 불상이다.
(석불)
등로는 비질이라도한 듯 깨끗하다.
금오산 정상을 지나 남산 일주도로를 따라가다,
삼거리에서 용장곡쪽 지능선으로 300m 정도 내려가면 석재 기단이 나온다.
탑의 기단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하는데
기단에서 조금 내려가면 석탑이 나온다.
(용장사곡 삼층석탑)
산의 바위 전체를 하층 기단으로 삼은 듯하여
전체적으로 주변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고 한다.
석탑부터는 비교적 가파르고 험한 바윗길이다.
3분여 내려가면 석조여래좌상이 나온다.
(석조여래좌상,오른쪽 바위에는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우리나라에서 유래가 없는 삼륜의 대좌가 특징으로
불상은 머리가 훼손되었다.
(하층 기단은자연석으로 되었다.수미산을 상징하고)
(두개의 둥근 반석은 제석천왕의 도리천과 야마천을,연화원반 대좌는 도솔천을 상징?)
석조 여래좌상 뒷편 바위면에는 마애 여래좌상이 있다.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얕은 돋을새김으로 되어있는데
연화대좌를 보면 가운데 꽃잎은 비교적 크고
양 가장자리로 가면서 차츰 작게하여
끝에서는 구름처럼 사라지게 해놨다.
(연화대좌)
다시 가파른바윗길로 3분 내려가면
석등과 석탑이 있던 자리가 나오는데 지금은 석등대석과 탑재들만 있다.
(탑재와 석등대석이 있는 곳은)
(거대한 바위산을 기단으로 삼은)
(삼층석탑을 올려다 보는 전망 포인트이다.)
설잠교를 지나 용장리쪽으로 내려가 절골로 간다.
(절골 입구의 안내판)
절골을 150m 정도 올라가면 축대위 절터가 나오는데
한가운데 움푹 파인 구덩이에 여래좌상이 있다.
(용장계 절골 석조여래좌상)
땅에 믇혀 있던 것을 발굴한 것으로
머리와 광배는 찾지못하고 몸체와 대좌만 발견되었다.
대좌는 3단으로 되었고 특이하게도 네모난 모양이라는데
불상 아래 묻혀있어 볼수가 없었다.
첫댓글 멋진 산행기 입니다
여기 한번 가보고 싶네요
문화재 관람 하신듯 좋은 산행기 입니다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