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고도(古都)서울의 심장부 경복궁
박원명화
아직은 추위가 물러가기 싫은 듯 싸늘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날씨는 차가워도 봄기운은 어쩌지 못하는지 산천은 봄 잔치를 준비하느라 분주합니다. 따스한 햇살을 머리에 인 사람들의 발걸음도 한껏 가볍습니다. 꽃이 피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봄맞이 가기도 전에 후딱 도망갈까 걱정입니다.
햇볕 포근한 날, 몇몇 친구들과 경복궁 나들이를 했습니다. 30여년을 서울에 살면서도 아이들이 어렸을 때 두어 번 가보고는 늘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곳입니다.
조선 왕조 태조대왕이 수도를 한양(서울)으로 옮기면서 지어진 건물입니다. 선조대왕 때, 왜군의 침공으로 소실되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지만 고종황제 때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중건이 되었습니다.
경복궁은 조선왕조의 제1궁인 법궁(法宮)입니다. 법궁은 왕과 그 가족이 기거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왕이 만조백관을 거느리고 국정을 논의하고 다스리던, 말하자면 지엄한 명령이 군림하던 곳입니다. 법궁답게 근정전 주위에는 국보급 문화재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습니다. 근자에 새롭게 단장된 그 섬세한 위용은 숨 막히게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움에 취해 근정전을 한 바퀴 돌아오는데 잔디밭 사이로 철없는 청설모가 달음질을 합니다. 근정전 현판을 살펴보던 차에 역사학을 잘 안다는 분을 만나 한 많은 우리의 역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서울 거리의 지명들은 대부분 역사적인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합니다. 특히 사대문 안이 그렇다며 몇 가지 사례를 필름 돌리듯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역사를 조금은 안다고 자부하던 나의 상식은 침몰되고 말았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외견상의 껍데기에 불과했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나는 몰라도 너무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러고도 서울 시민이라 할 수 있는지. 아니 이 나라 국민으로 산다는 게 더없이 부끄러웠습니다.
경복궁은 인간의 욕망을 상징적으로 응집한 정화라 합니다. 사대문은 우리 육신의 구성과 일치한 오행의 철리로 가장 좋은 자리를 잡아 세운 것입니다.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면서도 누추하지 않는 그 모습은 방어 의지와 예술혼의 혼융 같은 것이라 할 것입니다.
박물관 전시실에는 청자 주전자, 백자 항아리, 청동 촛대 등 처음 보는 것도 있고 낯익은 것들도 많습니다. 고려시대 것 보다는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이 그 크기나 화려함이 확실히 다릅니다. 색 바랜 유물들에는 시간의 깊이가 그윽하게 스며 있습니다. 한참동안 흥분과 충격 속에 전시실을 돌아 다녔습니다. 조상들의 혼이 살아 숨 쉰 듯 하여 숙연해 지기도 했습니다.
물건들마다 시대적인 차이가 눈에 띄는 것을 보면 삼국, 고려, 조선시대의 특징이 그만큼 두드러진 탓이 아닌가 합니다. 고려자기에는 모란이, 조선자기에는 국화가 많이 그려져 있습니다. 박물관 진열장에는 전시품마다 그 시대의 숨을 따로 쉬고 있습니다.
오늘을 기념하기 위하여 무엄하게도 광화문의 어간에서 포인트를 잡고 ‘찰칵’기념 촬영을 했습니다. 왕이라도 된 듯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역사의 인식을 재발견한 벅찬 감동이랄까. 경복궁을 나와 그 비경을 되돌아보니 짧은 일정이 꿈만 같았습니다. 집에 돌아왔는데도 시간이 멈춰선 듯 마음은 줄곧 경복궁 뜰을 거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