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한국시간 14일) 경기에서 통산 349승째를 거둔 '마스터' 그렉 매덕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과거 자신이 가진 최고의 무기가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어떤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 내가 가진 최고의 무기는 초구 스트라이크입니다. "
너무나도 매덕스다운 대답이다. 그러나 그것이 매덕스가 가진 전부는 아니다. 지금은 그 위력이 많이 감소하는 바람에 체인지업을 즐겨 사용하는 편이지만, 90년대 타자들이 꼽았던 마구 1순위는 매덕스의 꿈틀거리는 직구(투심 패스트볼)였다. 또한 전문가와 팬들은 그를 두고 '컨트롤의 마법사'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다.
하지만 매덕스 본인 스스로는 구위나 컨트롤보다,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는 것이 투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임을 항상 강조해왔던 것이다.
뛰어난 컨트롤과 초구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것은 비슷하면서도 약간은 다른 별개의 문제다. 좋은 컨트롤을 바탕으로 외곽승부를 즐기는 탐 글래빈 같은 투수도 있고, 상대 타자를 두려워해 도망가는 피칭을 일삼는 선수들도 존재하기 때문. 요는 타자에게 향하는 초구를 스트라익 존으로 찔러 넣을 만한 컨트롤과 배짱을 겸비했느냐는 것이다.
야구에서 타자는 공 두 개의 여유가 주어지고, 투수는 3개의 여유가 주어진다. 타자는 스트라이크 2개까지는 아웃되지 않는다는 뜻이고, 투수는 3볼 상황까지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스트라이크와 볼을 적절히 섞어서 상대 타자를 기만하는 행위를 우리는 '피칭' 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는 초구 스트라이크의 여부다. 이것은 타자에게나 투수에게나 너무나도 중요하다. 투수는 어떻게든지 타자를 향한 첫 번째 투구를 스트라이크로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으며, 타자는 그것을 막을 필요(치든가 아니면 볼을 골라내던가)가 있다.
데이터를 토대로 살펴보면 그 차이를 더욱 명확하게 알 수가 있다.
위의 표는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벌어진 2431경기의 모든 타석에서의 평균 성적과, 초구 스트라이크가 들어갔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즉, 볼로 선언되었을 때)의 성적을 비교해 놓은 것이다. 타율과 출루율 그리고 장타율까지 모든 면에서 너무나도 큰 차이를 보인다.
이 표의 데이터만으로도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초구가 스트라이크가 되었다고 해도 타자에게는 아직 승부할 수 있는 두 번의 기회가 남아있다. 투수는 첫 번째 투구가 볼이 되더라도 그 후 두 번 더 볼을 던질 여유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어마어마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1할이 넘는 출루율의 편차는 야구에 있어서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절대적인 차이다.
경기를 관람하거나 시청하는 입장에서야 공 하나하나의 중요성이 크게 느껴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막상 마운드와 타석에 서있는 선수들은 그게 아닌 것이다. 스트라이크 하나를 잡고 승부하면 볼넷:삼진 비율이 1:5에 달하지만, 볼을 먼저 허용하고 나면 거의 1:1에 근접하게 되어 버린다. 초구가 볼로 선언되었을 경우가 10000타석 이상 차이가 나지만 홈런 개수는 400개나 많다. 그만큼 타자가 편하게 타격에 임할 수 있게 된다.
메이저리그 전체 투수들의 초구가 스트라이크였을 때의 타율/출루율/장타율은 지난해 20승 투수였던 자쉬 베켓의 그것(.245/.286/.377)보다도 오히려 훌륭하다. 헛스윙을 유도하든 심판의 콜이든 그것도 아니면 파울을 유도하든지 간에 첫 번째 공으로 카운트를 잡을 수만 있다면 누구나 다 베켓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타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통산 0.333의 타율로 현역 메이저리거 가운데 1위에 올라 있는 이치로도 초구가 볼이었을 때(.343/ .424 /.465)와 스트라이크였을 때(.305/ .327 /.373)의 성적에 큰 차이가 난다. 볼 카운트에 상관없이 투 스트라이크를 허용하게 되면(.267/.299/.318) 아무리 이치로라 하더라도 3할을 칠 수 없다. 무엇보다 출루율이 하늘과 땅차이다.
이쯤 되면 초구 스트라이크는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다. 승리의 필수 요소가 분명한 셈.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수들은 타자와의 승부에서 첫 번째 투구를 과감하게 찔러 들어가지 못한다. 투수들이 승부를 어렵게 가져갈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기 때문이다.
블라드미르 게레로나 알폰소 소리아노 등 메이저리그에는 초구 승부를 즐기는 선수들이 있다. 굳이 그들이 아니더라도 어설프게 카운트를 잡기 위해 초구부터 한 가운데로 찌르다가는 장타를 허용하기 십상이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초구를 공략했을 경우, 그 타율은 무려 0.344에 달했고 장타율은 0.551이었다. '천재 소년' 미겔 카브레라의 작년 성적이 .0320의 타율에 장타율 .0565다.
타자들이 초구를 건드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웃이라도 되면 너무나도 허무하게 물러나는 결과가 되지만, 성공했을 경우 얻을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롯데 자이언츠의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적극적으로 초구를 공략하라고 주문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이러니 투수들이 섣불리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겠다고 덤벼들 수가 있겠는가.
적어도 초구를 맞이하는 모든 타자들은 일시적으로 미겔 카브레라가 된다. 먹이를 기다리는 사자와 같은 그들을 상대해야 하는 투수들이 느낄 중압감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용기 있게 뿌린 첫 번째 투구가 스트라이크로 선언되고 나면 모든 투수들은 자쉬 베켓이 된다. 실제 카운트의 득실에 따른 여러 가지 복잡한 요소들과 심리적인 요인이 얽히고설키면서 나타나는 재미있는 결과다.
초구 스트라이크는 투수에게는 승리를 타자에게는 절망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그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혹시 타자가 나의 초구를 노리고 있지는 않을까'라는 두려움을 떨쳐내고 타자가 지지 못할 공을 좋은 코스로 던져야 한다. 이래서 야구가 어려운 것이다.
어쩌면 매덕스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만한 구위와 컨트롤을 겸비하고 있었기에 그러한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김홍석(http://mlbspeci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