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대축일 교중미사에 다녀왔다.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는 바람에 2~3일전부터 부산도 다시 2단계 조치로 격상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이 참석했다. 의자 좌석배치를 한 자리씩 띄우고 다음줄은 비워 놓는 데도 자리가 모자라 2층과 바깥 통로에도 서서 미사를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미사시간도 평소보다 30분 이상 더 걸렸다. 사람인원수도 많고 합창단의 성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에 300여명으로 줄었으나 그렇찮았으면 미어 터져 나갈뻔 하였다. 주임신부님은 9시미사에도 300여명 참석했더라고 하셨다. 미사 마치고 나올 때는 계란 두 개를 선물로 받아왔다.
오늘 강론 말씀으로는 부활의 의미에 대하여 설명하셨다.
일반적으로 부활이라 하면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 또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3일만에 되살아 나신 것으로 안다.
나 역시 그런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인에게 부활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일까? 사후에 영적으로 구원을 받아서 하늘나라 주님 곁으로 가기 위해서인가?
그게 아니라 일상의 지친 삶 속에서 주눅들어 무가치하게 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도적인 삶, 신나는 삶을 찾는 것이 부활이라고 하셨다. 그러한 삶은 기도와 하는님께 은헤를 청해서 이루어진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어느 연예인 이야기를 꺼내셨다. 한 연예인이 방송국에서 주는 큰 상을 받고 사회자가 소감을 한 마디 하라고 하니까, 그는 마이크 잡더니, 먼저 자기자신에게 사과한다고 했다. 그는 남이 받지 못하는 큰 상을 받을만큼 대단히 능력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자기자신을 무시하며 살아왔다고 하면서 잘못에 대해 사과한다고 했다. 'Be proactive!'(자신의 삶을 주도하라)'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중 제일 첫번째에 나오는 습관이다. 우리의 삶은 누가 대신 살아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이끌어 나가야 한다. 그럴려면 자긍심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처리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미이리라.
가만히 듣고보니 맞는 말이다.
한편 '부활' 하면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부활'을 빼 놓을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부활을 읽어본 것은 아니다. 백수가 되기 전에는 바빠서 문학작품을 읽을 틈이 없었고, 백수가 되면 문학작품도 읽고 평소에 하지 못했던 취미 생활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백수가 되고 나서부턴 뭔가 해 보려고 발버둥 치다보니 더 바빴다. 몰론 핑게라면 핑게다. 하긴 '처녀가 아이를 봬도 지할말은 다 있다'고 하지 않던가?. 부활에 대해선 교과서에도 나오고 해서 줄거리는 대충 알고 있었다. 출판사의 리뷰는 다음과 같다.
1898∼1899년 발표작으로. 《전쟁과 평화》《안나 카레니나》와 더불어 그의 3대 작품 중 하나인 이 작품은 그의 친구이자 저명한 법률가인 코니에게서들은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며, 당초에는 <코니의 수기>라는 제목이 붙어있었다. 젊은 귀족 네플류도프는 하녀 카튜샤를 유혹하여 임신시킨다. 카튜샤는 그때문에 해고되어 매춘부가 되고, 끝내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배심원으로서법정에 나간 네플류도프는, 눈앞에 있는 여죄수 마슬로바가 바로 자신이 유혹했던카튜샤라는 것을 알고 놀라움과 함께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된다. 그는 카튜샤를구원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하여 유형수(流刑囚)가 된 그녀의 뒤를좇아 자신도 시베리아로 떠난다. 가는 도중 그는 여러 가지로 그녀를 보호하고, 형사범에서 정치범으로 옮겨 노동량을 줄여 주기도 한다. 어느 날 밤, 그는여관방에서 성경을 펴놓고, 그 복음서 속에서 자신의 갱생의 길잡이를 발견한다.
예술적으로 원숙하고 완벽한 심리묘사와 더불어 당시의 사회조직이나 법률의 허점을날카롭게 비판하였다. 이 작품에서 그리스 정교(正敎)를 비판한 것이 원인이 되어, 그는 1901년 종무부(宗務部)로부터 파문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