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우연찮게 10년전 저의 글을 인터넷에서 발견하고 한동안 옛여행의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지금 생활이 안정되고 많이 편하긴 해도 그때 부족하고 수많은 고민을 갖고 여행할때가 그립네요. (아랫글은 당시에 모여행잡지에 소개었던 글입니다.)
뉴 질 랜 드 기 행 문
6개월 이상의 호주 여행경험을 바탕으로 그리도 가보고 싶어했던 뉴질 랜드로 떠나게 되었다
여행일정은 약 3개월 정확히 말하면 비자가 허용하는 마지막날까지 여행할 목적이다.
친구나 선배들의 15일간 10개국을 돌아보고 오는 그런 점찍기씩 여행은 여행이아니라
관광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호주 브리스베인을 힘들게 떠나 첫날 오클랜드 공항에 새벽 1시경에 도착..
무작정 시내로 들어가면서 부터 짧게만 느껴진 꿈속같은 동화의 나라 뉴질랜드여행은 시작 되었다 .
여행의 교통수단은 RENTCAR로 결정했다.
여행후 내가 외국에서 차를 몰고 다녔다니깐 오렌지족이니 낑깡족이니하며
친구들이 좋지않게 생각하는데 모르시는 말씀!!
일반적으로 포장마차가 왠만한 술집보다 질은 떨어지면서 가격이 비싸다는걸 아시는지..
..
내가 랜트를 고집한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어느 교통수단보다 경제적으로 유리하다.
특히 1개월이상 여행시
둘째 틀에 박힌 PACKAGE식의 관광명소 순레가 싫었다.
관광명소란 것이 사람들이 많들어 놓은것이 대부분이고 실제 그 문화나 생활을 느끼게하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도심이나 관광지에서가 아니라 시골의 한적한 숙소에서 숙식을 하고 싶었고
마지막으로 가장큰이유는 많은 짐 때문에 생기는 체력소모를 줄이고 하루라도 라면을 먹지않고는
힘을 쓸 수 없는 내체질의 특성상(?) 라면 몇박스를 차에 싫고 다닐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RENTCAR로 여행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즐거움을 가졌다.
히치하이킹족들과의 수많은 만남
생각나는데로 지도에 없는 길을 들어섰다가
길을 잃고 헤메다 형언할수 없이 아름다운 순수한 자연 경관들과 만나기도 하고
양들이 사람구경하느라(?) 차를 가로막을때의 느낌들
뉴질랜드는 양이 인구수의 15배라고 하니깐 인간보기가 힘든탓일것이다..후후
더니딘의 구릉을 넘어가다 어미를 따라 길을 건너는 새끼오리5 섯마리
아직도 그 때의 경이로움을 잊지 못한다.
약 일주일간 오클랜드시내를 걸어서 둘러보았다.
사실 여행에 필요한 물건과 정보를 얻기위한 기점으로 오클랜드는 그저 좋았을 뿐이다.
별달리 볼 것은 없었다
도시천체도 호주의 여타 도시들보다 깨끗해보이지 않았고 저녁7시쯤이면 거리가 텅비어버리는
그런 도시 아마 오클랜드를 하루이틀 방문하는 여행자는 뉴질랜드를 전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여행비자로 개설하기힘든 은행구좌를 10곳이상의 은행을 돌아다닌결과
겨우 개설(TRUST BANK. 참고 수수료가 다소 많이 붙음)할 수 있었다 .
그리고 2박스의 라면과 한국음식 조금그리고 같이 랜터카 비용을 분담할 여행자
(숙소에서 만난 마음 맞는 다른 배낭 족) 2명과 함께 여행 준비를 마치고
3주후 도착할 두 번째 기점인 크라이스트처치로 떠났다.
도시를 벗어나자마자 깨끗하고 푸른환경이 여행을 더욱 신나게 했다.
무엇보다도 융단처럼 깔린 잔디는 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요소 였다.
헤밀턴은 그야말로 예쁜 정원같은 작은 도시였다.
숙소 뒤에는 사람을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는 야생오리들이
수양버들 늘어선 집 아래에서 한가로이 헤엄치고 이름 모를 꽃들이 한얗게 페인트 칠한 집을 애워싸고 있었다.
이곳을 마지막 지상낙원이라 부르지 않을수 없었다
잔디에서 점심을 먹고 있자면 여러마리의 오리식구들이 다가와서 함께 식사를 하자며
꽥꽥거리고 멀리서 양떼의 울음소리 지나가면서 눈이 마주치면 순박한게 미소를 보내는 사람들
순수한 자연속에 묻혀살기에 사람들도 순박하고 야생동물까지도 순박한지 모른다.
그렇게 그렇게 뉴질랜드와의 만남은 기분좋게 깊어져갔다.
우리는 북섬의 상업적인 관광명소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에
다른곳 정말 키위(뉴질랜드에 살면서 천적이 없는 관계로 날개가 퇴화해버린 작은 새,
그곳 토박이를 부르는 애칭이기도하다.)들의 생활하는 시골 마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북섬여행을 요약하자면 지옥을 연상케하는 로터루아의 간혈천
지역에서의 신비감과 아직 눈이 수북히싸인 3게의 활화산등반,
국제도시 오클랜드와 수도 웰링턴에서의 숫한 사람들과의 많남...
..조금은 상업성이 짖다고 말할수 있었다.
하지만 남섬 여행은 북섬과는 또다른 경험들이 우리는 맞이했었다.
남섬여행은 약 두달간 여유있게 들어갔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1주일이상 있을 수 도 있었고 별루인 곳 (주로 알려진 관광
시설단지)은 그냥 몇장의 사진촬영만하고 지나칠수도 있는 일정이었다
남섬의 기점인 크라이스트쳐치에서 우리는 또한명의 일행과 합세하여 여행을 시작했다.
크라이스트처치는 내가 아직도 제일로 살 고싶은도시다 .
도시라는 말보다는 공원에 건물들이 있다고 말하는게 얼울릴정도로
평지에 잘가꾸어진 여러 정원과 굽이굽이흐르는 시내같은 에번강과 조화를 이룬
정말 예쁜도시.
난 거기서 2주를 보내게 되었다.
다시돌아올 종점이기에 나중에 돌아볼생각으로 우리를 기다리는 많은 것들의 기대하며 여행을
재촉했었다.
약2시간 내륙족으로들어서니 눈앞에 눈쌓인 남알프스산맥이 눈에 들어왔고 그 웅장함은
우리를 감싸며 천천히 다가오는 것 같았다.
철지난 스키촌에서 50개의 침실을 가진 큰규모의 숙소를 우리일행만이 묵게 되었다.
벽난로에 장작불을 피우고 그 지방 맥주를 와인잔에 채우고 낭만적인 영화에서 했던 그런 것들을
흉내내기도 했다.
다음날 밤새 비가왔는지 온 통 물을 먹음고 빛을 발하고 있었다.
지도에 없는 좁은 산길을 따라 산을 타고 4시간쯤 올랐을 때
신비에 싸인 꽤 큰 산상 호수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도 한국 사람중에는 내가 처음보는 것일 것이다.
아직 백두산 천지는 가보지 못했지만 해발 1500미터이 상되는 곳의 그산상호수는
오로지 하늘 빛을 받아 푸른빛은 발하고 있었다.
거대한 자연의 경치앞에서 인간은 그 속성상 두려움을 가지게 됨을 느낄 수있었다.
테카포우호수로 향하던길에 우리는 때아닌 폭설을 만나 봄속에서 하얀 눈꽃을 볼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고 부산이 고향인 나는 눈을 볼기회가 적은 탓에 눈을 맞은며 환희를 느꼈다.
앞을 가리는 엄청난 양의 눈 때문에 계획보다 늦게 테카포우호수에 도착했다.
그곳 숙소에는 내가 삼돌이 아저씨라고 불렀던 주인(너무도 순박한 미소를 지녔고 장난치기를 좋
아했기에 붇여준이름)이 있는데 숙박비를 깍아달라는 소리에 한국인아니냐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생이 틀림없다라는 것이다.
그곳을 방문한 한국 젊은이들이 똑같은 말을 한다기게 썩기분이 좋친 않았지만
빠듯한 경비로 알뜰하게 여행하려는 한국 젊은 여행자의 모습에서
앞으로의 한국의 모습을 점칠 수 있었다.
그러나 뉴질랜드를 여행하는 여행자중 최고의 소비율을 자랑하는 관광객은 한국인이라는 통계를 그
곳에서 듣게 되었다. 2,3일 일정으로 왔다가 하루에 평균24만원이상을 쇼핑한다는 것이다.
우스운일이 아닐수 없었다.
정말 부끄러운게 바로 이런 통계사실이 아닌가 싶다.
가난한 한국 젊은이 화이팅...
다음날 마운트쿡에서 콘니찌와하고 인사하던 어느 서양관광객에게 반가워요라는 말이 동양인에게
더 익숙한 표현이라고 가르쳐주고 뉴질랜드 최고봉인 마운트쿡으로 가는길의 푸카키 호수에서 (한국에 돌아와을 때 이미 다른사람에게 떠나버린 )애인에게 그때의 감정을 함께하려고 정성것 옆서를 섰다.
사실 난 그녀와 9개월간의 수많은 경험과 배움을 맞빠꾼셈이 었다.
여행후 나자신을 되돌아 볼 때 정말 많이 커있다는 걸 느겼다.
여행후 그녀를 만났을 때 아픈 내 마음보다 그녀의 지난날의 외로움을 이해 할 수있었고
부담을 주지 않기위해 웃음으로 그녀를 위안하는 좀더 성숙한 모습을 보일수 있었다..
티마루에서 난 꽃을 사랑하는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다.
아주작은 숙소였는데 젊은 부부가 운영을 하고 있었다.
아침에 재일 먼저 정원을 다듬고 물을 준후 정원에 그냥 앉아서 차를 마시는 크리스라는 그녀는
주인아저씨의 와이프 였던 것이다.
저녁에 이 사실을 한 일행이 일르는 바람에 숙소가 온통 웃음 바다로 되었다.
다음에 장가 갈때는 꼭 그녀와같은 여자에게 장가 들 것을 결심하고 길을 나섰다.
"안녕 나의 꽃의 요정이여" 후후후 그녀의 사진을 보고싶은 분은 연락바람
그리고 어느 미국젊은이에게 더니딘에가거든 될 수 있으면 NEXTSTOP라는 호스텔에서는 머물
지말라는 충고를 무시하고 (사실은 다른 숙소가 없었기에) 그 곳에서 하루를 묵고는
다음날 후진하다 나무를 드리박고 스피트 티켓을 끊기고하는 불운이 따랐다.
후에 알고 보니 그 숙소는 옛날 교회건물인데 화제이후 호스텔로 개조한 귀곡산장같은 명성을 가
진 숙소였다.
여러분중에 더니딘을 가게 되면 한 번 묵어보는것도 재미 있을 것임 히히히...
남섬여행에서 격게 수많은 일중에 몇 사람을 만나면서 듣고 느끼게 된 것중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다.
태고의 고요함을 가진 밀포드사운드에서 만나 60을 넘은 홀로여행하는 인생의 선배를 만났
다.
평생을 사업에만 몰두하다 자신을 잃고 살아온 한 사람이 이제 과감히 일을 그만두고 일년의 긴
여정을 계획으로 자신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분이 내게 주신말 뭔가 꼭하고 싶을 때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면 즉시 행해라는 것이다.
젊은 시질 뭔가를 행할때닌 실패를 생각마라는 것이다.
그렇다 청춘의 실패는 실패를 두려워해서 시도도 해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일행중 한명이 아파서 윌링턴 북쪽 작은 어촌마을에서 일주일가량 머물렀는데
중간시험 준비중인 그곳 대학생과 많은 예기를 하게되었다.
이름은 피터 나는 피터가 스스로 만든 천문 망원경으로 매일밤 남반구의 하늘에 수없이 떠있는
별들의 좀더 가까이 접할수 있었다.
뉴질랜드 차기 총리선거가 있는날 서로의 국가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한국은 왜그리 시끄럽
고 환경오염과 사건사고가 많냐는 질문에 나는 대충 얼마무리고 자존심이 있어서 인지 몰라도
한국 자동차와 전자 제품 반도체산업에 대해 자랑한 후
너희 나라는 세계에 내세울수 있는 상표를 가진 기업이 있냐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우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산품은 전혀없고 자동차는 생산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연간천만명이 넘는 세계인을 끌어들일 수 있는 유명 브랜드 '뉴질랜드'라는 걸 가지고 있다 " .
정말 뉴질랜드는 국가가 하나의 무공해 브랜드다.
국토를 아름답게 꾸미이기만하면 타국에서 공해를 만들어가며
얻은 돈을 자기나라에 와서 쓰고가는 가장 혁신적인 사업인 것이다.
우리 한국정부도 많지않은 투자로 연구적인 돈벌이를 할 수 있는 관광사업에 더많은 지원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남섬여행을 요약하면 스위스의 알프스의 아름다움을 가진 남알프스의 웅장함과 물감을 풀은 듯한
수많은 호수들 서해의 연간7000미리 강우량을 보이는 온대 우림과 해변가까이 뻗어나온 온대 빙하 스칸디나비아의 지형인 피로르드,남쪽 끝의 팽귄과 바다물개 오로라....동해안의 녹초지등 때묻지않은 자연에서 자연의 일부로서 그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기회의 여행 이었다.
남섬을 표현하는 단한미디말은 "순수" 라 말하고 싶다
긴 여정을 마치고 크라이스트쳐치에서 2주간 영어공부도하고 휴식도 취하기 위해 머물었다.
11월25일 초여름에 맞이하는 크리스트마스 한달전 축제는 사뭇 느낌이 새로웠다.
메일 도시락을 싸서 중심가에 있는 도서관과 성당앞광장을 찾았다.
될 수 있으면 여행중에 하지 못했던 많은 경험을 하기위해 나이트클럽도 가보고
성인 샵에 영화 구경,야외음악회 벼룩시장,교회의 예배,대학2년동안 동아리 활동 때문에 관심이 많은
연극공연을 볼때는 사뭇 느낌이 새로웠다.
떠나기 전날 에번강가 잔디에서 오리들이랑 점심을 먹고 나의 지난 몇 개월을 생각했다.
인간의 평균 수명을 70이라고 한다면 난 겨우 인생의 70분의 1일을 여행한 것 뿐인데
마치 생명이 때어나 자라고 성장하여 부모ㅋ을 떠나듯이 아쉬웠다.
또 뿌듯했다. 영어실력이 많이 는것도 아니고 다른 어떤것도 얻은게 아닌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득차 있었고 감히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을 해보자면 사는 방법에 대해 힌트를 얻은 것 같았다.
고대사회의 사람은 살기 위해 생존경쟁이란 목표아래 살았고 중세사람은 종교를 위해 살았고
근대에는 과학의 힘을 믿으며 살았다.
현대라 불리우는 지금 이 시간은 정보사회 라는 이데올로기 아래 애써 역사적 과도기라는
희생을 부정하는 듯 살고 있다는 생각이든다
절대적 가치의 부재는 내게 무척이나 힘든 숙제 중의 하나였다
미약하지만 뜨거운 젊음의 불길을 한곳에 집중할 수가 없었기에
닥치는대로 많은 경험을 하게 했었다.
많이 깨어지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는데 난 이곳 뉴질랜드에 머무는 동안
난 그안에서 행복할 수 있었다.
낯선곳에 혼자 떨어졌을 때 아무도 날 아는 사람이 없을 때 외로움 보다는 야릇한 환히를 나는 느꼈고 세상을 살면서 어떤 외부적 조건도 내부를 지배 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크라이스트쳐치에 있을 때 신문지를 이불삼아 트랜지스트 라디오를 끌어안고 다음날 내가 도서관
으로 향할때쯤에 일어나는 아저씨가 있었다 .
덥 수룩한 수염에 공원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배를 채운후 맑은 하늘을 보며 기지개를 켜는 그 사람의 눈동자는 맑았다.
아침 마다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정장차림에 고급승용차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의 눈에 보이는 인생에 대한 피곤함이 없었다.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을 주는 지금 이 기억들을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재산이 되었고 짧
지만 길었던 여행은 내개 가장 소중한 기억이 될 듯 싶다.
많은 매력을 가진 뉴질랜드 그때까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지만
전술의 전략은 바꾸지는 못한 다는 레닌의 말처럼 나의 24살의 여행은 내삶의 수단이었기에 남은 홍콩여행후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나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
첫댓글 감회가 새로우시겠어요 ^^
호주에 있었을때 못해본것중 가장 후회되는것이 뉴질랜드를 가지않았다는 겁니다 아아 이글을 읽고보니 더더더 후회되네요 ㅠ-ㅠ
저도 10년전에 제가 쓴글을 본 적이 있는데 참 그때의 글을 보니 부끄럽더군요. ^^;;
아..정말 좋은 글이네요.^^무공해 나라 뉴질랜드..꼭 가보고 싶네요.글 더 있으시면 또 올려 주세요~ㅎㅎ
간만에 들어와 뒤늦게 쥔장님 글 접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러나저러나 10년 전이라니 오호, 한창 젊을 때구려 -_-;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