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3번째 편지 - 상춘곡
2025년 3월 17일 오늘부터 봄이 시작됩니다. 월요편지에서 몇 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저는 1년을 4계절이 아닌 6계절로 나눕니다. 4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입니다. 저는 여기에 <봄과 여름 사이>와 <가을과 겨울 사이>라는 계절을 넣어 1년을 6등분 하였습니다.
1년을 4계절로 나눈 것은 각 계절이 3개월이라는 도식하에 짜여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봄과 가을은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은 상대적으로 길어졌습니다.
기상청 기준에 따르면 서울의 평균 4계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봄은 3월 중순부터 5월 25일경까지 2개월이고, 여름은 5월 25일경부터 9월 말까지 4개월이고, 가을은 9월 말부터 11월 22일경까지 2개월이고, 겨울은 11월 22일경부터 3월 중순까지 4개월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각 3개월이라는 도식이 깨졌습니다. 봄과 가을은 2개월이고, 여름과 겨울은 4개월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름과 겨울을 2개월씩 끊어 새로운 계절을 2개 더 만들면 1년이 4등분이 아니라 6등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새로운 계절이 <봄과 여름 사이>와 <가을과 겨울 사이>라는 계절입니다.
그러면 기상청 기준으로 금년 봄은 언제일까요. 2025년은 12번째 주에서 20번째 주까지 총 9주이고 날짜로는 3월 17일부터 5월 18일까지입니다. 이 기간 안에는 24절기 중 4절기가 있습니다. 원래는 4계절 때는 각 계절마다 6절기가 있어야 하지만 6계절에는 각 4절기가 들어 있습니다.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춘분은 3월 20일이고, 4월 4일은 봄 농사 준비를 시작하는 청명입니다. 보름 후면 4월 20일 곡우입니다. 농사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또 보름이 지난 5월 5일은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입하입니다.
봄이 되면 어떤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벚꽃이 먼저 떠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상춘곡>이 떠오릅니다. 학창 시절 모두 다 배운 정극인의 가사입니다. 상춘(賞春)은 ‘즐기다, 감상하다’의 “상(賞)”과 봄 “춘(春)”이 합쳐진 단어로 ‘봄을 즐기고 감상한다’라는 뜻입니다. 7행부터 16행까지 원문과 번역본을 함께 읽어 봅니다.
<번역본>
7행-엊그제 겨울 지나 새봄이 돌아오니
8행-복숭아꽃과 살구꽃은 석양 속에 피어 있고
9행-푸른 버드나무와 향기로운 풀은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푸르도다.
10행-칼로 잘라냈는가? 붓으로 그려내었는가?
11행-조물주의 신통한 재주가 사물마다 야단스럽구나.
12행-수풀에 우는 새는 봄기운에 못내 겨워 소리마다 교태로다.
13행-물아일체이거늘, 흥이야 다르겠는가
14행-사립문 주변을 걸어보기도 하고, 정자에 앉아 보기도 하니
15행-이리저리 거닐며 나직이 시를 읊조려 보며, 산 속의 하루가 적적한데
16행-한가로움 속의 참된 즐거움을 아는 이 없이 나 혼자로구나.
봄의 아름다움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없습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순간을 화폭처럼 아름답게 펼쳐 보여 줍니다.
복숭아꽃과 살구꽃이 석양 속에서 만개하는 모습은 떠나가는 겨울에 대한 예를 갖춘 헌사이고, 푸른 버드나무와 향기로운 풀이 가랑비를 머금은 채 더욱 싱그러워지는 광경은 깊어지는 봄에 대한 환희의 찬사입니다.
자연과 내가 하나 되어 춘기를 즐기는 모습은 물아일체의 정수를 보여 주고, 이리저리 거닐다가 나직이 시를 읊조리는 시인의 삶은 세속에 파묻혀 경쟁과 불안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깊은 위안을 선사합니다.
"한가로움 속의 참된 즐거움을 아는 이 없이 나 혼자로구나."는 대목은 봄의 서정과 고독을 조화롭게 담아, 우리의 가슴속에 은은한 감동과 여운을 남겨 줍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시인과 술을 한잔 나누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5.3.17. 조근호 드림
<조근호의 월요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