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의 반격 “기말고사 챗GPT 쓰면 0점”
“중간고사 때처럼 안 당해”… 학생들은 “유료 버전 쓰면 못 잡을 것”
조재현 기자
조선일보 2023.06.12. 03:00
서울의 한 사립대 A 교수는 최근 기말고사를 앞두고 재무 관련 전공 과목의 시험 방식을 변경하겠다고 학생들에게 공지했다고 한다. 앞서 각자 집에서 온라인으로 중간고사를 보면서 각종 자료를 참고할 수 있도록 했더니 대화형 인공지능(AI) 서비스인 ‘챗GPT’가 알려준 내용을 그대로 답안지에 적어낸 학생이 상당수였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해당 시험의 평균 점수가 12점 만점에 7~8점이었는데 올해 갑자기 10점을 넘어서 의아했는데 그 배경에 챗GPT가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파악한 것이다.
다른 대학의 B 교수는 1학기에 강의한 코딩 관련 과목에서 10여 차례 쪽지 시험을 치렀지만 그 결과를 수강생 전원에게 같은 점수로 처리하기로 했다. ‘챗GPT를 이용해 답을 써냈더니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글이 학교 게시판에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에 B 교수는 기말고사는 모든 학생이 강의실에 나와 챗GPT를 이용할 수 없는 상태에서 보고, 그 결과만으로 성적을 내기로 했다. 이를 학생들에게 공지하면서 B 교수는 “그동안 강의에서 배우지 않은 내용까지 답안지에 적어낸 학생도 많았다. 기말고사에서는 시험 난도를 크게 높여 공부 열심히 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확실하게 구별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챗GPT를 사용한 답안이 적발되면 F 학점을 주겠다며 미리 경고하는 교수도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서 경영학을 강의하는 C 교수는 “학생 100여 명을 상대로 비대면 수업을 하면서 매주 강의 내용을 요약해 제출하라는 과제를 주고 있고 기말고사도 비대면으로 치를 계획”이라며 “학기 중에 ‘챗GPT를 사용한 흔적이 적발되면 과제나 기말고사를 모두 0점 처리하겠다’는 공지를 올린 뒤로 챗GPT에 의존하는 학생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챗GPT 세대’인 대학생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 소재 한 대학의 1학년인 D씨는 “과제가 너무 어려워 10시간 동안 구글을 검색하고 자료를 찾았지만 답을 구하지 못했다”면서 “챗GPT를 이용하지 않는 답을 팔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사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무료 공개돼 있는 일반 챗GPT보다 성능이 강화된 유료 챗GPT로 갈아타겠다는 대학생도 있다. 모 대학 2학년인 E씨는 “기말고사 기간이 다가오면서 매월 22달러씩 지불하며 구독하는 ‘유료 챗GPT’를 구매했다”며 “시중에 풀린 ‘무료 챗GPT’는 질문한 내용과 직접 관련 있는 정보만 요약해 답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유료 버전은 추가 정보까지 덧붙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준다”고 말했다. 유료 챗GPT로 다른 학생들과 차이가 나는 답안을 작성해 낸다면 교수에게 적발될 가능성이 줄어들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학에서 챗GPT 사용 기준과 활용 방법을 제대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챗GPT를 어떻게 사용하면 표절인지에 대해 명확한 기준이 먼저 제시돼야 할 것”이라며 “이미 존재하는 첨단 기술을 못 쓰게 할 수는 없고 이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결과물을 얻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게 대학의 역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