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알람시계소리에 눈을 떴다.
오늘은 용문산으로 산행을 가는 날이다.
보온도시락에 밥을 싸고, 물과 이동식을 베낭에 넣어 짊어지고 아파트를 나서는데
경비아저씨가 졸린 눈으로 바라보신다.
얼굴을 어루만져 주는 시원한 바람의 손길이 정겹다.
계단을 올라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평소에는 그렇게도 안 오던 버스가 바로 온다.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버스를 타고 전철역으로 향하는데 이른 일요일 아침이라서인지 버스가 텅 비어있다.
평소 밀리던 이 길을 과속이 염려될 정도로 달려서인지 버스기사님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운전기사님과 단둘이 드라이브를 하며 전철역에 도착하여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전철을 기다리는데 조바심보다는 여유로움이 나를 감싼다.
전철이 도착하여 전철 문이 열리고 나를 맞이 하려는듯 좌석 전체가 비어있다.
좌석 깊숙이 몸을 얹었다.
전철도 가벼운듯 산뜻하게 달려간다.
교대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고 신사역에 도착하여 약속장소에 와보니 앞 유리창에
햇빛산악회 용문산이란 문구가 적힌 종이를 붙인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서있다.
1호차부터...... 5호차까지.
군시절 사열을 하는것처럼 관광버스를 스쳐서 마지막 5호차에 승차하여 지정된 1번자리에
앉기 전에 옆자리에 앉아 계시는 여자분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앉아있는데 조금은
쑥스럽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잠시 후 뻥 뚫린 88대로를 거침없이 달려간다.
운영진이 용문산 산행코스가 인쇄된 개념도를 나누어준다.
용문산은 여러번 산행을 하여 등산로는 알고 있지만 이번 산행은 어디로 오르나 살펴보니
작년에 올랐다가 하산한 코스다.
일년이 흐른 지금 다시 용문산을 간다니 감회가 새롭다.
화창한 가을날의 정취를 가득 싣고 도시를 벗어나 시골길을 달리는 느낌이 좋다.
길가에 피어있는 꽃들이 우리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무잎들은 환영의 손을 흔들어준다.
이 시간 나는 자유인이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가슴 가득 산행의 설레임으로인해 가슴이 터질것 같다.
나만 그런가?
버스안은 폭풍전야처럼 조용하기만하다.
마이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가을의 품속을 쉼 없이 달려 휴게소에 도착을 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하늘을 봤다.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파란물이 들 것처럼 파란 하늘에 솜털구름이 여유롭게 흘러간다.
얼굴을 어루만지며 스쳐가는 바람이 햇살의 따듯함을 질투하는 것 같다.
가을볕이 차게 느껴진다.
여유로운 휴식이 끝나고 다음을 기약하며 버스는 또다시 가벼운 운행을 시작했다.
풍요로운 밖의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조용하기만한 버스 안......
버스안을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파리들의 비행에 왠지 숨이 막혀온다.
운전기사가 파리채를 들고 파리를 쫓는다.
운전이 위험해 보이고 딱히 할일도 없고 해서 파리채를 달라고하여 파리을 잡는데 뒷쪽에
앉아 계시던 여자분이 오시더니 파리채를 달라고 하더니 휘두르기 시작하자 줄줄이 사망하는 파리들......
기사분 앞 유리에 앉아있는 파리를 향해 이여자분이 파리채를 날렸는데 압사한 파리의
사체가 앞 유리에 붙어버렸다.
여자분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내공에 경악을 금치못했다.
운영진에게 자기소개를 하면 어떻겠냐고 건의했더니 노래를 부르라고한다.
쎈스있으신 기사분은 모니터를 켜주시고 노래책과 리모컨을 주신다.
나의 소개를 하고 나훈아의 '아담과 이브처럼'을 불렀다.
운영진이 노래를 부르고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자 버스안은 일순간에 분위기가 업되어 가고
연세가 좀 있으신분(닉을모름)이 나도 모르는 god의 노래를 깜찍한(?)율동과 함께 부를 때는 버스안은 웃음과 열광의 도가니로 변해버렸다.
여행은 누구나 쉽게 친구가 되고 친해지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느끼는
순간이다.
가수가 울고 갈 정도의 노래실력을 겸비한 일행들의 노래는 계속 이어지고 우리가 다가 가는만큼 용문산이 다가오고 있다는 기쁨은 점점 더 커간다.
기사분이 세차를 하고 가자고 하신다.
첫 번째 주유소에 갔더니 휴일이란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다음주유소에서는 세차를 할 수 있었다.
자동세차기가 시원하게 버스를 세차하는 것을 보니 속이다 시원하다.
깔끔하게 샤워를 한 버스는 아까보다도 더 신나게 달린다.
얼마나 달렸을까? 버스는 하이트맥주 홍천공장에 들어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우리들을
토해낸다.
덧버선을 신은 채 이쁜 가이드를 따라 공장 견학을 하며 이쁜 가이드의 미모에 뜨거워진
가슴을 시원한 한 잔의 맥주로 식힐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알딸딸한게 최고의 기분을 만들어준다.
강원도 홍천의 따듯함이 느껴진다.
용문산입구 주차장에 버스가 멈추고 같이 온 사람들 틈에 섞여서 매표소로 향했다.
드디어 용문산 산행이 시작된 것이다.
콘크리트길을 따라 용문사로 오르는 등산로 옆으로 시원스럽게 시냇물이 흐르는 모습이
정겹다.
초가을이라 푸르름을 간직한 초목들의 환영을 받으면 오름을 이어가다 작은 다리를 건너자
커다란 은행나무가 눈속으로 들어온다.
몇 번을 봐서인지 별 틀별함이 없을것이라 생각되지만 그렇지가 않다.
당당하게 땅을 딛고 서서 수없이 많은 세월을 비바람에 맞서 싸워 온 고목의 당당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나도 전쟁터 같은 삶의 현장에서 저 은행나무처럼 당당하게 살아가리라 다짐해본다.
마음을 가다듬고 가을바람에 땀을 식히며 터덜터덜 걸음을 옮긴다.
바쁠 것도 없고 누구를 기다릴 일도 없지 않은가.
삼거리에 이르러 마당바위로 오르기로 했다.
이길은 여러번 다닌길이라 익숙하기에 이곳으로 오르기로 하고 오름을 이어간다.
끝없이 이어지는 너덜길이 지루하다.
그래도 오름을 하는 내내 옆에서 흐르는 맑은 계곡물이 있어 외롭지 않다.
계곡 좌우로 펼쳐진 푸르른 녹음을 감상하며 오르는 지금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고 너덜길을 오르는 다리의 뻑뻑한 느낌이 좋다.
늘 산행때마다 뒤에서 당기던 배낭의 무게도 오늘은 전혀 느낄 수가 없다.
바당바위를 지나서부터는 너덜로된 깔딱을 올라야한다.
경사가 완만한 깔딱이라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올랐다.
주차장에서 수많은 햇빛식구들이 산행을 시작했는데 한명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정상까지의 산행을 포기하고 용문사와 계곡에서 천렴을 하고 있는것 같다.
회사에 출근을 하면 일을 해야 하는 것처럼 산행을 왔으면 산에 올라야 한다는게
나의 생각이다.
이런게 싱글산악회의 특징인가?
산행이 목적이 아니고 다른 목적이 있었단 말인가?
산행이 목적이든 아니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난 오늘 산행을 하기위해 산을 찾은 것이기에 용문산 품속으로 파고 들어가고 있는게
아니던가.
정상이 가까워 올수록 암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래도 골룡능선이나 응봉산, 월악산,두타와 청옥산,북한산의 숨은벽과 염초봉처럼 경사가
급하지 않고 길이도 짧다.
손과 발을 몇번 움직이면 오를 수 있는 작은 암벽들......
귀엽기까지하다.
정상에 올라 세상을 향해 가슴을 내밀었다.
유유히 파란 하늘을 헤엄치는 구름들이 손을 흔들어준다.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감동이 밀려온다.
이런 맛에 산에 오르는게 아닐까......
사실 여기는 진정한 정상이라고 할 수가 없다.
군기지가 정상에 위치하고 있어 정상에는 오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한번 분단의 아픔을 느끼는 순간이다.
쉼터의 의자에 앉아 배낭에서 보온밥통을 꺼냈다.
땀이 식어서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따뜻한 밥이 속을 덥혀주고 밥맛이 꿀맛이다.
이순간 세상의 그 어떤것도 부러울게 없다.
정상에서의 잠깐의 여유를 만끽한 후 하산을 시작했다.
발걸음이 가볍다.
발밑에 자연스럽게 피어있는 작은 꽃들이 웃으며 인사를한다.
무대의 핀조명처럼 참나무의 넓은 잎사귀 사이로 가을볕이 비춰지고 산등성이를 걷는
난 배우가 되어 가을이라는 작품을 이 순간 이 자리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림을 계속 이어가자 5호차에 같이 타고오신 분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계신다.
너무 너무 반갑다.
포도도 같이 먹고 사진도 같이 찍는 사이 정이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하산길에 동행이 생겼다는것 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행복감이 젖어든다.
닉을 모르는 여자분이 틀어 놓은 솔리드의 ‘천생연분’을 들으며 올라왔던 너덜길을 더듬어 마당바위쪽 계곡으로 내림을 계속한다.
계곡길을 자연스럽게 장식하는 다래나무의 퍼포먼스에 감탄을하며 내려오다보니 바당바위에 이르렀다.
바위위에는 여러명이 올라앉아서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식사를 하고 계신다.
너덜길을 조심스레 내려오는데 오른쪽에서 시냇물이 동행을 해준다.
시냇물의 물소리가 고마워 작은 웅덩이에 등산화를 벗고 살며시 발을 담궜다.
시원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아 돈다.
정신이 번쩍나고 산행의 피로가 일순간에 사라진다.
이런게 산행 후 탁족의 묘미가 아닐런지......
내림을 이어가자 하나둘 일행들을 만나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속삭이는사이 용문사에
도착을 했다.
산을 오를 때 보았던 은행나무가 여전히 당당하게 서있다.
이 시간 이후 나도 당당하게 세상과 맞서리라 다짐해본다.
둘레둘레 콘크리트길을 따라 내림을 하여 주차장에 도착을 했다.
닉을 모르는 남자분과 근처 식당에서 도토리묵을 시켜서 술을 못하는 관계로
도토리묵만 먹고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를 한 후 5호차에 올랐다.
출발할때의 어색함이 아닌 친숙함이 버스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혼자라는 외로움이 너무 커서일까?
씽글이라는 공통분모로 인해 금방 친해진 것일까?
늦게 도착하신 분들이 승차를 마치자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용문산 정상에서의 감동과 탁족의 시원함을 뒤로한 채......
휴일 저녁이라서인지 귀경길이 몹시 막히고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마치 용문산이 우리와 헤어지기 싫어서 뒤에서 당기는 것처럼......
심심하고 무료해서 올 때 노래를 못 부른 분들을 위해 마이크를 준비하려고 뒤을 돌아보니
주무시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살며시 눈을 감았다.
용문산의 오름과 내림이 영화필름처럼 스쳐지나간다.
입가에 웃음이 머물고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떠보니 차창밖으로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고 버스는 여전히 가다서다를 반복하고 있다.
주위분들과 산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다보니 어느새 이야기는 산행이 다이어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토론을 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어둠이 내린 88대로를 한강과 같이 달리면서 웃음과 함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다보니
어느새 신사동에 도착을 하여 고단한 버스는 우리들을 토해놓는다.
뒤풀이를 한다며 근처식당으로 가시는 분들을 뒤로하고 술을 못하는 난 아쉬움을 뒤로한 채 간단한 인사를 하고 아침에 왔던 길을 되짚어 집으로 돌아왔다.
산행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에 인사를 드립니다.
5호차 멤버님들 주무시는데 앞에서 너무 떠들어서 죄송합니다.
영원히 잊지못할 하루였습니다.
첫댓글 풀어놓으신 글귀들에 내공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혹여 작가나 소설가등 글을 쓰시는 분이 아니신지 모르겠네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기분좋아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초보자라 저는 마당바위까지 올라갔는데..쯤 아쉽네여^^노래도 잘하시공ㅋㅋ
음.. 정말 글귀들의 내공이 대단하십니다~~!! 우리도 도토리묵을 드시고 나오시는 분들과 아이스크림을 같이 먹었는데... ^..^
파리를 몰살(?)시킨 그 여성회원은 아마도...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하지 않았나 싶네여ㅋㅋㅋ~~~!!!더위사냥 잘 먹었슴다^^행복을 제대로 느끼고 오셨음을 추카 드려여~~~~~^^
저희 산악회 이름은 햇빛산악회입니다.
죄송~~~~수정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