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한 우정 천도복숭아 ]
'초토의 시'로 유명한 시인 '구상'과 '소'를 그린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이중섭'은 오랫동안 우정을 나누어온 친구였습니다.
어느 날, 구상이 폐결핵으로 폐 절단 수술을 받았습니다. 몸의 병은 병원에서 의사가 고쳐주겠지 생각하였으나, 약해진 마음은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치료해야 하겠기에 구상은 절친한 친구인 이중섭이 찾아와 함께 이야기 나누어주기를 은근히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평소 이중섭보다 교류가 적었던 지인들도 병문안을 왔는데, 유독 이중섭만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구상은 기다리다 못해 섭섭한 마음마저 들다가 나중에는 이 친구에게 무슨 사고라도 생긴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다 죽어가는 상태에서 섭섭한 마음이 오히려 멀쩡한 친구에 대한 걱정으로 전환되는 순간, 둘도 없는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뒤늦게 이중섭이 찾아왔습니다. 심술이 난 구상은 반가운 마음을 감추고 짐짓 부아가 난 듯 말했습니다.
"자네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그 누구보다 자네가 제일 먼저 달려올 줄 알았네.
내가 얼마나 자네를 기다렸는지 아는가?"
"자네한테 정말 미안하게 됐네.
그런데 그냥 빈손으로 올 수가 없어서..."
이중섭이 내민 꾸러미를 풀어보니 천도복숭아 그림이 들어있었습니다.
"어른들 말씀이 천도복숭아를 먹으면 무병장수 한다지 않던가?
그러니 자네도 이걸 먹고 어서 일어나게."
구상은 한동안 말을 잊었습니다. 과일 하나 사올 수 없는 가난한 친구가 그림을 그려 오느라 늦게 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구상 시인은 2004년 5월 11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천도복숭아를 서재에 걸어두고 평생을 함께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갈구하는 우정이 아니겠습니까?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입니까?
가까이, 멀리, 그리고 때로는 아주 멀리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라도 눈에 아롱거리며 미소 짓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내가 정녕 살아있다는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당신이 내 곁에 있기에 마냥 행복합니다. 진정한 친구 한 사람만 만들 수 있으면 인생의 반은 성공한 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의 절반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그런 친구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고요? 제가 바쁘다는 핑계로 친구들을 잊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친구가 하나쯤 나타나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저 나의 가까운 친구, 이웃으로 비록 만나기 힘들더라도 기원과 묵상으로 그 다정한 얼굴을 잠시라도 마음에 품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내 마음에 품은 그 친구는 나를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이며, 언제나 내 곁에 머무를 것이라는 생각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 '내 서재에 책 있다" 중에서 >
임종 고백
구상
나는 한평생 내가 나를 속이며 살아왔다.
이는 내가 나를 마주하는 게 무엇보다도 두려워서였다.
나의 한 치 마음 안에 천 길 벼랑처럼 드리운 수렁
그 바닥에 꿈틀거리는 흉물 같은 내 마음을
나는 마치 고소공포증 폐쇄공포증 환자처럼
눈을 감거나 돌리고 살아왔다.
실상 나의 지각(知覺)만으로도 내가 외면으로 지녀 온
양심, 인정, 명분, 협동이나 보험에나 들 듯한 신앙생활도
모두가 진심과 진정이 결한 삶의 편의를 위한 겉치례로서
그 카멜레온과 같은 위장술에 스스로가 도취마저 하여 왔다.
더구나 평생 시를 쓴답시고 기어(綺語) 조작에만 몰두했으니
아주 죄를 일삼고 살아왔달까!
그러나 이제 머지않아 나는 저승의 관문, 신령한 거울 앞에서
저런 추악 망측한 나의 참 모습과 마주해야 하니 이 일을 어쩌랴!
하느님, 맙소사!
첫댓글 천도복숭아의 사연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늘 좋은글과 정보 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