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세유표읽기(12-4): 창름지저(倉廩之儲) 3, 부조리의 요량
‘요량(料量)’은 ‘되질하여 용량을 헤아린다는 뜻으로, 잘 헤아려 생각함을 이르는 말’이다. ‘되질하다’는 ‘곡식의 분량을 되나 됫박으로 헤아리는 일’을 말한다. 농경문화와 관련이 깊은 말이지 싶다. 인류세마저도 위협받을 AI 시대와는 먼 단어이지만, 잘 헤아려 생각하는 일은 여전히 중하다. 이미 지난 일이, 아무 일 없던 일이 되었지만 몇 가지 판결을 생각한다. 이재용, 양승태, 임종헌… 그동안 우리 사회는 무엇을 했던 것일까? 수사와 기소를 담당했던 이들이 권력을 잡았으나, 그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사면과 가석방제도도 생각한다.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분열적 시대가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권력자(힘센자)는 봐주고 내 편도 봐주고, 국민과 공동체에 대한 요량은 있었을까?
“곡식은 장차 백성에게 나누어줄 것이니, 먼저 백성을 요량함이 마땅하다. 백성을 요량하지 않고 곡식을 증가함은 백성을 보전하는 방법이 아니다(穀將頒民, 宜先料民. 不料民而增穀, 非保民之道也. 『여유당전서26』, 경세유표Ⅲ, 125쪽).”
“환자곡을 나누어줄 때 민호나 전결에 따라 하는데, 민호로 나누어주는 것을 통환이라 이르고 전결로 나누어주는 것을 결환이라 이른다. 그러나 민호가 있은 다음이라야 전결이 있는 것이니, 본래 백성이 없다면 빈 전지에다 나누어준다는 것인가? 그러므로 곡식을 다스리는 방법은 먼저 백성을 요량해야 한다. 백성의 수효가 이미 밝혀졌다면 그다음에 곡식 액수를 정할 수 있는데, 이것은 마치 짐을 실어나르는 자가 먼저 그 수레의 힘을 헤아리고, 채소를 심는 자는 먼저 그 전지의 넓이를 요량하는 것과 같아서 수레가 약할 것 같으면 곧 짐의 무게를 줄일 것이며, 전지가 좁을 것 같으면 곧 씨앗을 줄여서 심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민호는 경성 5부(3만 5천 800호)를 제외하면 대략 165만 호에 불과하니(옹정 기유년 호총임), 헛된 호와 홀아비, 과부, 떠돌이, 패잔한 호가 있겠으나 환곡을 나누어주어서는 안 되고, 또 그중에 서리ㆍ노예ㆍ역졸 등의 호도 있으니 실지로 창곡을 꼭 받아야 할 자는 150만 호에 불과하므로 이것으로써 율을 내면 이치에 맞을 것이다(還上之頒, 或以民戶, 或以田結, 以戶頒者, 謂之統還, 以田頒者, 謂之結還. 然有民戶然後斯有田結, 若本無民, 其將頒之於空田乎? 故治粟之道, 首先料民, 民數旣明, 穀額可定. 如輸任者, 先量其車力, 種菜者, 先量其田廣, 若車猶弱, 卽吾之輜重可減也, 若田猶狹, 卽吾之菜種可減也. 我邦民戶, 除京城五部,【三萬五千八百戶】大約一百六十五萬戶而已.【雍正己酉戶總也】雖有漏戶, 亦有虛戶, 鰥寡ㆍ流離ㆍ敗殘之戶, 不可頒穀, 又其中有吏奴ㆍ驛卒等戶, 其實應受倉糧者, 不過一百五十萬戶而已. 以此出率, 斯可以中理也. 같은 책, 1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