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진을 보면 제가 살았던 찌달라합 마을이 있습니다. 마을 주변이 차(茶)밭인데, 사실 그 자체가 밀림훼손이에요. 하지만 아주 먼 옛날에 일어난 일이고 덕분에 저희는 탁 트인 전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밀림에서 오랫동안 연구하는 사람들이 호소하는 괴로움 중 하나는 시야의 막힘입니다. 시야의 막힘을 오랫동안 겪으면 너무 괴롭습니다. 시야와 일조권이 확보되지 않고, 조용할 권리가 확보되지 않는 빌딩 숲에 사는 여러분 역시 잘살고 있는 것 같지만, 잘못 살고 있는 것입니다.
긴팔원숭이를 추적하는 데 필요한 준비물을 살펴볼까요? 모자, 장화, 물통, 무전기, 나무테이프, 정글용 칼, 나침반, 쌍안경 등이 있습니다. 가끔 ‘너, 정글 갔다 왔다던데 왜 이렇게 하얘?’라고 묻는 분들이 있는데, 이분들은 정글을 모르는 분들입니다. 정글에 있는 대부분의 식물은 생존을 위해 햇빛경쟁을 치열하게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햇빛이 식물로 가려집니다. 오히려 그늘이 많아요. 정글에서 모자가 필요한 이유는 벌레를 피하기 위함입니다. 장화는 뱀이나 진흙 때문에 필요하고, 정글에는 물이 많기는 하나 제가 마실 수 있는 물은 없으므로 물통이 필요합니다. 미생물 때문에 물을 꼭 끓여 먹어야 하는 거죠. 정글에서 저는 ‘자연이 참 좋기는 하나, 나는 문명에 기대야만 살 수 있는 양다리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외에 나침반과 쌍안경 등도 필요한데, 저에게 쌍안경은 가까이 가면 도망쳐버리는 동물과 만나고 그들의 세계를 관찰할 수 있게 해준 대단한 발명품이었습니다.
아리스, 누이, 싸리는 정글을 저와 함께 탐험한 이들입니다. 생물학도 그렇지만 고인류학에서 발굴을 할 때는 꼭 현지 전문가를 고용합니다. 특별히 고인류학을 공부하거나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아닌데도 말이죠. 자기가 속한 생태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그곳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현지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정글은 뒷동산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탐색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정글에서 인간세상의 끝 그리고 야생왕국의 시작을 보고 싶었습니다. 정글은 제가 생각하는 야생왕국의 원형이었기 때문에 저는 정글에 입성하게 됩니다. 정글에서는 바닥만 열심히 보고 다녀도 식물원에서 느낄 수 있는 감흥과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정말 보석 같은 생물들이 살고 있죠. 그런데 이들이 아무 때나 튀어나오지는 않고, 그들의 마음이 동했을 때만 알현할 수 있습니다. 긴팔원숭이는 정말 어쩌다 볼 수 있는 희귀한 동물입니다.
정글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뭔가 후다닥 내려옵니다. 이것이 동물과 조우하는 기본적 방식입니다. 초반에는 긴팔원숭이를 정글에서 일주일 내내 못 본 날도 많았습니다. 하루에 5초 정도만 만남이 이뤄져도 성공했다며 좋아할 정도였죠. 하지만 긴팔원숭이를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기 때문에 추적을 시작합니다. 긴팔원숭이를 만나야 하고, 제가 연구할 수 있는 수준까지 그들을 훈련시켜야 했기 때문이죠. 여기서 ‘훈련’이라는 것은 그들을 잡는 것이 아니라, 제가 쫓아오는 것을 포기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포기한다는 것은 쫓아오든 말든 도망치지 않는 것을 뜻하는데요. 영장류는 지겨워하는 성질이 있어 도망치는 것을 포기한 이후에는 사람이 접근해도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일을 합니다.
긴팔원숭이는 아침에 울음소리를 냅니다. 성량이 무지하게 커서 1Km 떨어진 곳에서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소리를 듣고 저희가 그들을 찾아낸 순간, 긴팔원숭이는 도망가버립니다. 나무에서 활동하는 포유류 중에 가장 빠른 긴팔원숭이와 제가 경주를 하니 게임이 안 되는 건 당연했겠죠.
저희를 따돌린 다음 ‘쟤네 아직도 따라오나?’라는 듯이 긴팔원숭이가 저희를 돌아보던 날들이 아주 여러 날 반복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들의 만남이 5초에서 10초가 되고, 10초에서 15초, 어떤 때는 1분도 됩니다. 우리는 승리감에 도취했죠. 그런데 집에 와서 우리끼리 이런 말을 합니다. ‘근데 어제 본 걔가 걔야?’ 만남은 이뤄졌지만, 초반에는 그들을 구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긴팔원숭이 각각을 구별하기 위해 애썼고, 결국 나중에는 구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멀리 있는 가족이나 친구의 뒷모습만 얼핏 봐도 알아맞힐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정글은 비가 오는 날이 많았고 습도는 항상 88% 정도였습니다. 제 가죽 시계에 늘 곰팡이가 피어있을 정도로 불쾌지수가 높았죠. 그리고 ‘라탄(rattan)’이라는 식물도 많았는데, 식물한테 정말 화가 날 수 있다는 것을 라탄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라탄은 야자과의 덩굴식물로 줄기가 질기고 길 뿐만 아니라 가시가 돋아있습니다. 라탄은 저희가 이동하는데 꽤 거치적거리는 불편한 존재였죠.
그런데 그 라탄이 사람이 미끄러지기 딱 좋은 장소에 살고 있습니다. 미끄러지는 순간 반사적으로 라탄에 손이 가는데, 아주 짧은 순간 내가 넘어짐을 선택하느냐 찔림을 선택하느냐 갈등하게 됩니다. 정글에서 이런 일은 다반사였죠.
저는 정글에 있는 동안 세 가지를 간절하게 원했어요. 첫째, 평평한 땅에 있고 싶다. 둘째, 근무환경이 건조했으면 좋겠다. 셋째, 모기와 파리 등이 나에게 1분이나 2분만이라도 휴식을 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식사도 쉽지 않았습니다.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데, 긴팔원숭이들이 식사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그들의 눈치를 보죠. 긴팔원숭이들이 점심을 먹은
후 털 고르기를 하면서 늘어져 있을 때가 있어요. 저희도 눈칫밥이 생겨서 그때를 기다립니다. 이외에도 뙤약볕 아래서 긴팔원숭이를 마냥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고, 산사태가 갑자기 일어나서 아예 길이 통째로 없어지는 크고 작은 위험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정글에 다시 들어가게 되더군요.
정글에는 다양한 식물과 동물이 살고 있습니다. 표범도 살고 있는데요. 진짜 잡아먹혀도 좋으니 한번 만나고 싶었지만,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제가 숲에서 누군가의 먹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 겸허한 두려움을 주더라고요.
우리가 자연을 우습게 보는 것은 모든 포식자를 없앴기 때문입니다. 힘의 균형을 제대로 유지하려면 표범 같은 최상위 포식자가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유럽 등지에서는 스라소니, 늑대 같은 같은 최상위 포식자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우리나라 ‘한국 범 보전기구’에서도 범을 복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인도와 같은 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호랑이나 사자와 같은 최상위 포식자를 수용하고 함께 살고 있습니다. 요즘에도 인도에서는 산책하다가 호랑이한테 물려서 죽는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호랑이를 모두 없애버리겠다고 난리가 나겠죠.
밴쿠버 북쪽에 노스밴쿠버라는 지역이 있는데, 그곳에는 곰이 살고 있어요. ‘일 년에 한두 명 정도 곰에게 물려서 죽는 일도 발생한다는데 왜 위험하게 곰을 그냥 놔둘까?’라고 처음에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 1, 2년 살다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그들은 처음부터 곰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응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곰이 나를 위험하게 할 수 있는 여지를 줄이면 공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드디어 역사의 순간이 왔습니다. 의미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는데, 저희도 모르게 뭔가 진행되고 있었나 봅니다. 제가 관찰하고 있었던 긴팔원숭이에게 새끼가 생긴 거예요. 그 새끼의 정확한 출생일을 알게 된 것이죠. 새끼가 어미의 허리를 발로 움켜잡고 있었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새끼가 어미를 꽉 붙잡지 못할 때였어요. 잘못하면 새끼를 놓칠 것 같아 저희가 2주간 쫓아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새끼가 어미를 꽉 붙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추적을 재개했죠. 2008년 2월 18일, 저만 보면 도망가던 녀석들이 항복했습니다. 저희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기 시작한 거죠.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과정이 정말 오래 걸렸지만, 마음을 받아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긴팔원숭이가 항복함으로써 저는 데이터를 모을 수 있었고, 어느덧 떠날 시간이 됐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의 모든 연구를 마무리하고 복귀한 후, 제일 먼저 논문을 썼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야생 영장류 연구 논문이었습니다. 이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중과 만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물을 무시하는 게 싫었기 때문에 생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었거든요.
우리나라는 어느 순간 자연을 쳐다보지 않는 나라, 제일 먼저 자연부터 제거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유명한 산에는 케이블카가 설치돼 있고, 아크릴판과 같은 인공소재로 실내장식이 되어 있으면 편안하지만 자연소재가 있거나 벌레가 들어오거나 창문이 더러우면 싫어하고, 심지어 가로수를 잘라달라는 민원이 속출하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공원에는 흙이 노출된 땅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를 더 이상 이렇게 놔둬서는 안 됩니다.
사실 우리는 자연과 잘 살았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횟집 수족관에 있는 대게는 먹을 것으로 분류되며, 물고기는 물건처럼 쌓여있습니다. 심지어 새우나 미꾸라지는 살아있는 채로 끓여지고, 바닷가재는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집니다.
우리는 ‘생명 존중이 우선’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너무 쉽고 근본적인 얘기지만, 뭇 생명을 존중해야 합니다. 다른 생명은 무시하면서 인간만 중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를 구분하게 되고, 나의 종교와 타인의 종교, 우리 고장과 다른 고장을 자꾸 구분하게 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점점 부분집합만 생각하게
되는데 인류 전체를 놓고 보면 확장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뭇 생명을 존중해야 인간의 생명도 존중하게 됩니다. 그것이 결국 인간을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다른 생명은 무시하면서 인간의 생명만 존중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생명 존중 사상은 모든 생명 안에서 체득되어야 합니다.
세계 최고의 침팬지 연구자이자 환경 운동가인 제인 구달(Jane Goodal) 박사님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에게 ‘왜 하필 침팬지를 연구했느냐’고 물었더니, 박사님은 ‘침팬지는 자연이 파견한 대사’라고 말하더군요. ‘영장류 중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를 만나면 우리가 얼마나 자연적인 존재인지 깨닫게 되고, 자연계 전체에 마음과 눈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자연이 저에게 파견한 대사는 긴팔원숭이가 될 수 있겠죠. 긴팔원숭이라고 하는, 처음에는 아무 관계가 없던 동물이 이제는 제가 연구하는 일이 되고, 여러분 역시도 관심이 생겼을 테니 말입니다. ‘무관(無關)’이 갑자기 ‘유관(有關)’이 된 것입니다.
자연에는 국경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지구의 자연인 것이죠. ‘내 것부터 먼저 챙겨야 해’라는 마인드 대신에 지구 전체를 생각하는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