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뭔지
1016. 박카스 한 박스
내 점방 건물에서 청소를 하시던 할머니가 눈에 녹내장과 황반 변성이 생겨 일을 고만 두신지가 꽤 됐다. 가끔 점방에 오셔서 허리가 아프고 기운이 없다고 호소를 하셨지만 눈 때문에 눈이 잘 안 보여서 그런 거라 내가 딱히 해드릴 것도 없었지만 지난 번에 오셨을 때 사는 푸념을 들어 드리고 격려의 말 한마디를 해드린 것 뿐인데 고맙다고 오늘은 바카스 한 박스를 사오셨다. 더운데 드시라면서.. 순간 "내가 잘 못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번에 오셨을 때 허리 통증 주사를 놓아드리고 그냥 가시라며 진료비를 안 받았더니 할머니가 바카스 한 박스를 사오셨던 거다. "아니 청소 하시는 할머니가 무슨 돈 여유가 있으시다고 그러 걸 사오셨나?!" 하는 마음에 어찌나 미안 하던지.. 내가 괜히 진료비를 안 받아서.. 하기야 그저 하는 말로 "따님이 다 내셨어요!" 라고 해드렸었는데, 딸이 진료비를 안 냈다고 했다고 하시면서..
"나야 무심코 선의로 한 일이 상대방에게는 오히려 부담이 될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어찌나 그 할머니에게 미안 하던지.. 그리고 나의 성급하고 어리숙한 행동이 어찌나 한심해 보이 던지.. 다음에 점방에 오시면 마침 장마 철이기도 하니 지난 번 은행에서 받은 제법 비싸 보이는 우산이라도 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금방 생각을 고쳐 먹었다. 앞으로는 진료비도 나온 만큼 받고 뭘 드리는 건 말아야지! 하는.. "괜히 마음에 부담을 드리지 말자!" 라는 의도에서.. "그냥 날 믿고 찾아 오는 내 환자에게 선한 마음만은 늘 간직하자!" 하면서.. 후후!
글. 고 사리